갑자기 눈물을 훔친다. 쌓였던 것이었나 보다. 남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고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이었음은 익히 짐작이 된다.
그는 사회에서 만난 후배이자 살갑고 애린 동생이다. 사남매의 막내인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삼수를 해서 최고학부에 입학했고, 외국 컨설팅 회사와 국내굴지 기업의 임원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기업컨설팅을 한다.
오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로 심신이 피폐해져 그것이 피부건선으로까지 올라왔을 즈음 탈출을 종용한 사람중에 나도 있었다.
오후에 전화가 왔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프로젝트를 마감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겸해 닭도리탕과 막걸리를 마셨다.
최근 자신이 한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 딸이 자라는 모습까지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다보니 막걸리 세 병을 금방 비웠다.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으로 작심을 하고 온 모양이라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술자리를 이어갔다.
눈물은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보였다. 슬프고 마음 아파서이겠지만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아이처럼 씩씩거리면서 흘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아버님이 세상을 뜨신 후 그의 어머니는 그의 형 집에서 기거하신다. 언제부턴가 주중에는 맞벌이인 그의 집에 와서 아직 초등생인 손녀딸도 봐주시고 살림을 챙겨주신다고 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선생님이셨던데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지망했을 정도니 조손간에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딸의 피아노 실력이 부쩍 늘었다면 즐겁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형. 제가 어머니께 용돈을 매달 드리거든요…. 꽤 많이….근데…”
그의 형은 명문대와 대학원을 나와 달리 취업을 하지않고 지금껏 과외를 하고 있다. 한때 꽤 이름을 날렸었다는데 이전에 띄엄띄엄 들었던 얘기로 진취적이거나 생활력이 강한 인물은 아니라는 인상은 가지고 있었다.
“그 돈으로 당신이 안쓰고 형 생활비에 쓰시는 것 같아. 아니 쓰셔. 형 아파트 관리비며 뭐며…. 우리집에서 반찬을 해도 담아서 가시거든…. 엄마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예전같지 않으셔. 허리도 굽고 ‘언제 저렇게 늙으셨지’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야.”
그의 형은 쉬흔을 넘겼을 나이인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최소한으로 드릴까봐. 형이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나서게…. 안그러면 안되겠어. 요즘은 한명 가르친데…. 얼마되겠어? 내가 진작부터 이렇게저렇게 해보면 어떻겠냐해도 귓등으로도 안들어…” 그 대목에서 눈물을 보였다.
티슈를 꺼내 쓱 문지르고 난 그의 얼굴이 벌겋다. 취기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겠다.
“있잖냐. 니가 생각할 때 나이 쉰먹은 사람이 이제와서 바뀔 것 같니? 니 형이니까 더 잘알잖아. 나같으면 어머니께 용돈 드린 다음의 생각은 안할 것 같애. 너도 거기서 끊어. 그 돈으로 어머니가 뭘 하시든….
잘은 모르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까 안된 자식한테 더 마음쓰이는 건 당연한 것 같더라.
가령 니가 용돈을 줄인다고 해보자. 어머님이 너한테 더 달라고 하실까? 안하실껄. 그리고 마음 졸이시겠지. ‘쟤가 요즘 사정이 안좋은가? 그러면 안되는데…’ 괜한 걱정시켜드리는 거고, 니네 형을 보면서는 ‘이번달 아파트 관리비는 어떻게 하지’ ‘뭘로 장을 봐서 챙겨먹여야 할까.’ 전전긍긍하실거야. 설사 그런다고 니네 형이 뭔가 할 것 같지는 않고…. 그건 니가 더 잘알껄.
너는 형 때문에 그런 거겠지만 결국은 니가 그렇게 사랑하고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만 더 괴롭히는 결과를 낳게 되는 거야. 어머니가 다 감당하게 되는 거지. 너 그걸 바래? 그냥 니가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데까지는 최대한 용돈 많이 드려. 어르신들은 얼마나 더 사실지도 모르잖아. 니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해하고 감사해하면서… 아마 지금 어머니는 그러실지도 몰라. ‘그나마 이 놈이라도 온전히 버티고 있어서 내가 부모노릇을 하는구나. 저거 안낳았으면 어쩔뻔 했어….’
야~! 안그래도 복잡한 머리 쓸데없는데 쓰지마라. 딱 어머니께 용돈 드리는 순간 생각 멈춰. 알았냐?”
“응”
이후 그는 한결 홀가분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날 나는 버스 막차를 놓치고 결국 택시를 탔다.
‘내 이놈을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