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데이트

by 문성훈

○ 4월14일 저녁 6시경

아빠와의 저녁약속이다. 근 한달만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아빠는 요즘 바쁘다. 친구와 함께 만나기로 했다. 자신에게 그랬듯 아빠는 친구까지도 직원들에게 일일이 인사시키고 소개할지도 모른다. “우리 딸 ㅇㅇ이 친구야”라면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직원분들께 여쭤보니 좀전까지 계셨단다. 다들 아빠와의 저녁약속을 안다. 얼마전부터 인근 맛집을 탐문하느라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을 딸바보 인증을 하셨단다.
핸드폰으로 여러 번 전화해봤지만 받지 않는다. ‘무슨 급한 일이 생기셨나?’.

약속시간에서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전화를 안받으신다. 혹시나하고 주차장에 가본다. 화장실은 이미 직원들이 살펴봤다.
아빠 차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운전석에 앉은 아빠 모습이 보인다. 주무신다. 많이 피곤하셨나보다.
“아빠~!” 곤히 잠드셨나보다. 차문을 연다. 깨워야겠다.
“아빠~!” 아빠 손이 차다. 이런 적이 없었다. 투툼한 아빠 손은 언제나 따뜻했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아빠가 작별인사도 없이 이런 날 이렇게 떠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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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15일 오전 12시18분

징크스는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겹친 우연이 아니라면 일부러 만들 이유는 없다.
내게 있어 밤에 오는 문자는 불길하다.

그것도 자정을 넘긴 시각이다. 집 앞에 다다랐을 즈음 문자 한 통이 왔다.
친구에게서 온 문자다.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해를 몇 번 넘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몇 주전에도 통화를 했다.
“<부고알림> 故김ㅎㄱ님께서 별세…….. 김ㄷㅇ”
김ㅎㄱ은 친구의 이름이고 ‘김ㄷㅇ’은 그의 외동딸 이름이다.

이날따라 퇴근이 많이 늦었다. 내가 나를 알고있으니 시작을 안했어야 했다.
이틀 전부터 찜해뒀던 미드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다. 꽂히면 학창시절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하듯 밤을 새면서 몰아서 본다. 이날도 늦게까지 보다가 막차를 탔다.
<뉴 암스테르담>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병원의 에피소드다.

시한부 암선고를 받은 어린 딸이 죽는 게 어떤 건지 묻는다. 부모는 대답을 주저한다. 의사가 말한다 “어머니로만 계세요. 의사는 저니까 제가 말할게요. 얘기해 줄께요”
그리고는 침대에 누운 어린 환자에게 멀리 떨어진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등 뒤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면 엄마랑 아빠를 볼 수 없게 될거야. 엄마랑 아빠도 널 볼 수 없을 거고 하지만 두 분은 항상 저기 계실거야.”
어린 소녀가 묻는다. “그리고 전 항상 여기 있는거예요?”
“그래 항상 서로를 생각할거고 항상 서로 얘기할 거야. 그냥 방의 반대편에 있는 것뿐이지.”
어린소녀가 등 뒤에 있는 부모를 부른다. “엄마 내 목소리 들려요?”
엄마가 말한다“그래. 아가야 들린단다.”
아빠가 대답한다. ”꼬마 아가씨 나도 들려요.”
대사가 잊혀지질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 의사처럼 말하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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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15일 오후 1시20분

일부러 조문객이 적을 시간을 선택했다. 새삼 누군가와 어색한 인사나 안부를 묻고 싶지는 않다. 가는 내내 다짐했다
‘위로나 격려는 하지 않겠다. 감상에 젖어 지난날을 추억하지도, 아픈 상처를 건드려 눈물 짓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담담하게 들어주고, 머물다 올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친구의 아내와 ㄷㅇ이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ㄷㅇ이가 응대했다. 우리집 아이보다 한 살 어린데도 더 어른스럽다. 아이들은 고통을 통해 훌쩍 커 버린다. 기억 못하겠지만 어릴 때 둘은 사이좋은 자매 같았다. 한시도 내 앞에서 자리를 뜨지 않는다.
들려주는 아빠와의 마지막 장면이 한 편의 드라마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부고가 늦었다고 했다. 잠깐 마스크를 벗은 ㄷㅇ이의 얼굴에서 친구를 봤다.

나는 시종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전공이 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를 물었고 앞으로 이보다 더 큰 어려움과 난관이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전화번호를 묻고 입력했다. 한국 IT수준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순간이다.
“ㄷㅇ아. 삼촌이 그동안 주지 못했던 용돈 막 보냈다. 조의금은 따로 했으니 이건 널 위해 써라. 그리고 이제 삼촌 번호 알았으니까 언제든 전화하거라”
내가 건넨 위로라고는 헤어지며 꼭 안아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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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15일 저녁

오후 내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릴없이 멍하니 영화 두 편을 봤다.

톡이 왔다. ㄷㅇ이다.
"감사합니다. 아까 하신 말씀 새겨넣을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답장을 썼다.
《 ㅇㅇ아.
내 기억이 맞다면 너를 대여섯살 때 본 것 같구나. 가족끼리 만나 노래방도 갔었는데 그땐 나도 네 아빠도 젊었었지.
오늘 만나서 기뻤고 반가웠다. 물론 오랜 시간을 건너뛰고 23살의 아가씨가 된 친구의 딸을 만나기엔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그리고 네게서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단다. 니 아빠는 늘 침착하고 무거운 사람이었지. 유쾌하기도 했고 말이다.
너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내 걱정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렴.

두 번. 장례식장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니 아빠이자 내 친구의 사진을 봤단다. 나올 때 본 사진이 조금은 웃고있더구나.
돌아오면서 우리는 딸에게 무엇을 물려줬을까 생각해 봤단다. 전부였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부모인 우리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제한된 시간 안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니 아빠는 보여줬을게다. 니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항상 최고였을 지는 모른다만 언제나 최선를 다했고, 다행스럽게도 너는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더구나. 그래서 반가웠던 거야.

아까 네게 해 준 말.
“돌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떨어진 낙엽을 보는 것처럼 그제서야 슬퍼지는 거란다.”라고 했었지.
그런데 미처 못한 말이 있네.
“그 낙엽 중에 이쁜 것만 골라 너의 책갈피에 꽂아 말리렴. 그렇게 슬픔이 천천히 증발하고 나면 자주 꺼내보려무나.”
내가 이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빠가 시켜서 한 말일 거야. 아니라면 떠오르지도, 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이 그림 사진은 니가 아직 어릴 때 회사 니 아빠방에 있던 걸 가져왔던 거란다.
직접 그렸다길래 달라고 했지. 돌아보니 아주 잘한 일이었어.
그런데 그때 “이게 뭘 그린거냐?”고 묻질 않았지 뭐니. 그것도 잘한 일이었어. 가끔은 중얼거리듯 혼자 묻고 대답하겠지. 그 대답 중엔 분명히 니 아빠의 목소리도 있을 거라고 믿는단다.
너도 그렇게 하렴. 아직 너는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은 책이란 걸 알겠지. 이제 시작이야. 너의 인생책 갈피마다 아빠가 주고간 낙엽이 꽂혀있길 바랄께. 그럼 말해주실 거란다. 이 말도 니 아빠가 전해주랬어. 오늘……》

경황이 없을텐데 ㄷㅇ이가 또 답장을 보내왔다.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요”
목구멍이 콱 막힌다. 눈두덩에 뜨거운 팩을 올려놓을 것 같다.

한참을 뭐라고 해야할 지 몰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아빠는 지금도 보고계셔. 우리가 못 볼 뿐이란다. 좀 불공평하지. (이어서 ‘^^’를 썼다. 지웠다를 몇 번하다가 그냥 지웠다.)
그런데 ㄷㅇ아. 우리 조금만 슬퍼하고 오래 그리워하지 않을래?
아빠는 니가 행복하길, 너무 아파하지 않기를 바랄 테니까.”

이내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그렇게 어른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돼. 녀석이 끝내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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