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그 (The Dig / 2021)

by 문성훈

“무슨 영화야?”
“더 디그”
“파다? 판다고 뭘...?”
"음. 유적 발굴하는 건데… 이제 나도 시작하는 걸 보는거니까. 봐봐”
영화 한편을 같이 보자던 아내는 이내 잠이 들었다.

깔리는 음악만큼이나 무료하게 간간히 내리는 비처럼 척척하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튀는 플롯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다. 그저 맹숭하게 그럭저럭 예상 가능하게 흘러간다.
나는 좋은 영화의 요건을 모른다. 비평할 만한 식견도 갖추질 못했다. 나만의 느낌,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숱한 인생이 그런 것 아닌가. 아무 맛 없고 무엇과 섞이지 않으면 무슨 색깔인지도 모르는 맹물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물만이 생명을 살리고 우리를 살찌우며 흘러간다.

무릇 세상을 움직이고 요동치게 하는 것은 대다수 이름없는 민중들의 삶이었고 땅 속 깊은 데서 마르지 않고 흘러가는 지하수였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 중 하나로 생성되고 소멸한다. 보이지 않는 점으로 생성되어 여럿이 모여 선을 그리다. 마침내 면이 되어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다. 거기에 주석으로도 새겨지지는 못할 망정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남은 자들이 별을 이어 별자리 이름을 붙이고 페이지를 넘길 뿐이다.

나는 두 영화에 탐닉한다. 보고나면 어떤 줄거리였는지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는 그저 천둥벼락이 내려치듯 쾅하니 번쩍이다 이내 사라지고마는 액션이 가미된 블록 버스터이거나 장면 하나하나가 아로새겨져 의미를 묻게 되고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계속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짚게 만드는 드라마다. 더 디그는 후자다.
제목처럼 미망인의 사유지에 있는 유적을 발굴하는 줄거리다. 관련된 인물들의 양태는 지금도 다를 바 없는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명예, 욕망, 위선, 사랑이 뒤섞이고 장인기질과 허위의식이 충돌한다.

영화는 진실과 삶의 의미를 묻는다.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 전쟁과 영원히 잠들지 못한 고대 유물의 발굴이 상징하는 바를 통해 인생과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를 우리의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일찌감치 정규 교육과는 멀어졌고 학위도 권위도 없지만 남다른 열의로 지식을 쌓고 경륜을 갖추게 된 발굴자 바질 브라운과 불치의 병으로 죽음을 앞 둔 고고학에 관심과 식견을 가진 미망인 이디스 프레티가 주인공이다.

어머니의 고통을 목격한 어린 아들이 자신이 어머니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를 잃을 듯한 두려움에 대해 절규하듯 울부짖자 브라운이 이렇게 말한다.
“모두 실패한단다. 매일 실패하지. 절대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거든. 아무리 노력해도 말이야. 듣고 싶은 말은 아니겠지…”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에 실패를 거듭한다. 인간으로 되돌릴 수 없고 해낼 수 없는 것들이 있음에 겸허하게 무릎 꿇고 낮은 자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위대함은 빛을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미망인 프레티는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는 죽어요. 결국에는 죽고 부패하죠. 계속 살아갈 수 없어요.”
브라운은 발굴자답게 하지만 그 어느 철학자보다 통찰이 담긴 위안을 건넨다.
“제 생각은 다른데요. 인간이 최초의 손자국을 동굴벽에 남긴 순간부터 우린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됐어요. 그러니 정말로 죽는 게 아니죠.”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실타래에 꼬인 눈에 띄지도 않는 한 올의 실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것의 일부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부질없는 것에 목을 매어서도 안되고 허투루 사는 것이 죄악이 되는 이유다.

명성에 집착하는 고고학자인 남편과의 권태로운 부부관계에 회의를 품고있던 고고학도 페기에게도 느닷없고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이 휘몰아친다.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이디스 프레티는 이렇게 조언한다.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일을 하시지만 그거로는 부족해요. 인생은 덧없이 흘러요. 그렇더군요. 붙잡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영원을 꿈꾸지만 순간으로 살아간다. 끊임없이 자신을 이성으로 추스리지만 어느 순간은 감정과 느낌에 충실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끔은 취한 것처럼 흔들릴 때도, 감각과 본능에 모든 걸 내맡기기도 해서 인간은 인간이란 이름으로 불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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