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 2017
와인은 좋아하지?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가족애를 느끼고 지난 날을 회상하게 되는 삼남매의 이야기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지만 프랑스 와이너리의 사계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 영화다.
나 역시 삼남매다. 순서도 똑같다. 다르다면 장남이 네게만 유난히 엄격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좀더 일찌감치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다는 것이고 일년 반 투병하실 동안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다변스러운 대화는 없었지만….
그러고보니 한가지 다른 점이 더 있기는 했다. 나는 주인공 장처럼 침실에서 아버지의 임종 사실을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임종을 지켜봤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뭐 그다지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혼자 떠나시는 길, 다시 오지 않을 길을 나서시는데 배웅을 할 수 있었다는 건 남은 사람들에게 축복이다. 언젠가 그곳에서 다시 뵙게 되겠지만 그날은 생각보다 멀다.
영화는 삼남매 각자의 시선을 쫓아 갈등과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톡톡 귀에 박히는 대사가 있어 소개한다. 와이너리를 처분해야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운영자인 줄리엣(줄리 아니다. 줄리엣이다)이 오랜 직원 마르셀에게 묻는다.
“아저씨. 여기를 다 팔면 어쩌실 거예요? 여기 전부를…”
마르셀은 아버지대부터 와이너리에서 일한 충직한 일꾼이다.
“너도 알겠지만… 난 일기예보도 3일 이상은 안보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족히 수십년간 가지를 치고 열매를 따며 비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지켜봤다.
나는 마르셀의 지난 삶을 장의 독백으로 대신했다.
“잊고 있었다. 프랑스의 겨울에는 끝이 없다는 걸… 땅을 계속 일구고 돌보다 보면 내 소유가 된 듯 느껴진다. 꼭 땅문서나 재산 이야기가 아니다. 땅이 내게 속한 느낌이 들 때면 나도 땅에 속했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르셀은 이미 그것을 마음으로 느꼈고 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며칠 뒤를 염려하기보다 오늘에 충실할 수 있었고 누구의 소유인지를 따지기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했을 것이다.
정신노동을 하는 나는 육체 노동을 숭상하는 사람이다. 계산보다 감각에 더 의존하고 이성보다는 감성과 느낌 그대로의 순수성을 신뢰한다.
나는 밭 매는 아낙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망치질하는 목수의 불거진 팔뚝 근육에 경의를 표하고 그들의 손에서 싹을 틔우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결과물에 경외심을 갖는다.
반면 나는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에 나온 민주노총 간부의 불룩 나온 배에 혐오감을 느낀다. 그들이 비정규 노동자의 처우와 열악한 근무조건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국민이 총력을 기울이는 방역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모는 그들의 속내에 구역질을 느낀다.
나는 현장에서 삼십년동안 지켜 온 고집이 있다. 직접 일하지 않는 오야지를 두지 않는 것이다. 사장이 직접 일선에서 일하지 않는 협력업체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고집이다. 수주한다며 술자리를 순회하거나 책상머리에 앉아 주판알만 두드리는 사람은 신성한 노동을 말할 자격이 없다.
왜 재벌을, 그들의 2세를 욕하는가. 찐득하고 굵은 땀방울을 흘려보지 않아서다,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셈할 자격도 없으면서 과한 대가를 가져가고 턱없는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그들을 흉내내는 데 급급한 노동자 대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대사에 몰려있다.
“사랑도 와인 같아. 시간이 필요해. 숙성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시간이 변한다고 상하지 않거든….”
가족. 그 풀리지 않는 따스한 미스터리, 아련하고 깊숙한 향수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