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뵙는데 오늘에서야 일흔아홉이신 걸 알았다. 친구도 놀랐다고 했다. 아무리 많아봤자 육십대 중후반 정도로 뵌다. 여전히 현역이셔서 그런가...
약속장소는 이전에도 갔었던 송정시장 안 허름한 횟집이다. 약속시간까지 송정해수욕장이 바라다보이는 카페에서 서울에서 좀 늦게 출발한 동생과 먼저 만나 한담을 나눴다. 친구와 선배님은 횟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든이 내일모레인 친구의 선배님은 뵐 때마다 과분한 정을 나눠주신다.
회가 나오면 먼저 큰 대접에 초장과 막장, 청양고추 다진 것, 마늘, 참기름을 당신만의 배합비율로 섞어 양념장부터 만들어주신다.
전어회는 고소하고 다른 회도 물론 맛있다. 금방 동이 났다. 아나고를 더 시켜주신다.
그렇게 다들 배가 꽉 차 더이상 들어갈 데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이 집 매운탕이 기막히다고 굳이 맛을 봐야 한단다.
도저히 못먹을 것 같았는데 첫 술을 뜨니 밥 반공기를 비웠다. 어째 이럴 때는 생체신호와 장기가 따로 노는 것 같다.
직속 후배인 친구도 그랬지만 오늘 만남에서 선배님에 관해 새롭게 안 사실이 많았다.
여든의 연세도 그렇지만 11년전 암선고를 받았는데 기공으로 극복하셨단다. 발병 사실조차 자식들도 모르게 당신과 형수님 두 분만 알고 비밀에 부치셨다고 했다.
공직에 계시면서 청와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세번이나 거절했고 그래서 선배님으로 예정된 자리를 채운 다른 이는 10.26때 희생됐던 이야기는 드라마틱했다. 만약 그때 청와대로 갔었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다시며 당신은 이제 떠날 모든 준비를 마치셨단다.
최근엔 금정산 어디께 농장을 가꾸는데 재미를 붙이셨나보다. 5~6년전 부터 옮겨다 심은 편백과 맹종죽 얘기를 하실 때는 그리 해맑으실 수 없으셨다. 그 말씀을 듣다 내가 농을 건넸다.
"아니 선배님 이제 선산도 정비가 끝났고 주변 정리까지 마치셔서 떠날 준비가 됐다고 하시더니 지금 그 나무들을 옮겨다 심으시면 최소 30년은 더 정정하셔야 말씀처럼 키우시는데 앞뒤가 안맞으신데요."
"뭐. 일단 사는 날까지 키워본다는 거지." 빙그레 웃으신다.
첫번째는 물욕을 버릴 것, 두번째는 미워하지 말 것.... 당신이 체득하신 심신 건강법이자 편안한 삶의 조건이라고 하셨다.
이 대목에서 짖꿎은 동생이 기어이 한마디 거든다.
"근데요. 선배님.. 저도 그렇지만 이 두 형들은 제가 아는데 물욕과는 멀어도 너무 멀어서 문제거든요. 다만 성훈이형은 미워하는 정치인이 많아서 탈입니다. 윤ㅇㅇ, 홍ㅇㅇ...ㅎ"
"야... 아니라니까 사적으로 미워하는 게 아니라...."
"아무튼 맞잖아 형. ㅋㅋ"
(아무래도 이 녀석을 차단하든지 해야지 원)
우리는 횟집 주인이 무척 죄송한 표정으로 영업종료를 알리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맥주 한잔씩을 더 권하시는데 우리가 극구 말렸다. 정작 당신은 맥주 반잔도 안드시면서 뭐든 더해주시려 하신다.
숙소로 가는 길. 우리는 어디가 숙소인지 모른다. 내려오기 전. 미리 예약을 하려했지만 선배님의 서슬에 꼬리를 내렸다. 이 일대는 당신의 영원한 나와바리다.
"여기가 제일 깨끗하고 전망이 좋아. 저기로 내려가면 옛기차길 산책로가 시작되지"
굳이 우리들을 밀쳐내고 가장 전망좋은 방으로 이틀치를 기어코 계산하신다. 그것도 1인 1실로...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테니 기막히게 맛있는 전복죽을 먹으러가자신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각자의 핑계를 대고 점심부터 뵙기로 타결을 봤다.
이런 날, 이런 경우 당신께는 황공하다는 말 외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다.
나란한 방 세개는 이 호텔에서 최고의 오션뷰를 자랑하는 최고가의 방인게 분명하다. 침대에서 고개만 돌리면 바다다. 내일은 우리끼리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한 숨 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