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도 귀가 있을까

부산

by 문성훈

밤새 열어놓은 창으로 파도소리를 들었다. 파도도 거세지 않았는데 너무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아침 철길을 따라 조성한 산책길을 걸었다. 흩뿌리듯 비가 내렸는데 그마저도 상그럽다. 해변카페에서 아이스 커피 한잔과 바게트 버거로 요기를 했다. 이미 바다는 젊은 서퍼들이 장악했다. 바람 부는 날이 그들에겐 장날인듯 싶다.

점심 때 맞춰 선배님이 오셨다. 생물 갈치가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굵은 천일염이 달콤하기까지 한 갈치구이와 어느 해장국보다 갈치찌개다.
참을성 없는 내가 "아무래도 저는 막걸리를 시켜야겠습니다. ..... 저기요 여기 막걸리 2병"라고 했다. 낮술이지만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다시마에 멸치가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젓갈을 싸먹는 맛은 이루 형용하기 힘들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해초들이지 않은가. 서울 압구정에서 나고 자란 동생에게 이것저것 이렇게 저렇게 해서 먹으라고 권했다. 동생도 처음 먹어본 것인데 맛있다고 했다.

온라인 강의가 있는 친구를 숙소에 내려주고 나와 동생은 또다시 카페를 물색한다. 바다전망이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큰형 집에서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낸 선배님의 추억담을 되새겨본다. 조카 넷과 학교를 다니던 시절. 점심, 저녁을 도시락 하나로 해결하던 얘기며 친구집에서 기숙하던 시절의 시린 사연이 절절하다.
자식 공부에 도움될까해서 자식 친구인 선배님을 집에 들인 친구 아버님은 성정이 꽤나 거칠었던 모양이다.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선배님을 보고서는 이미 잠자리에 든 자식에게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혁대를 풀어 매질을 했단다.

공부는 해야겠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고 했다. 대문을 두드려 식구 중 누구라도 깨우면 친구 아버지가 깨셔서 그 사단이 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봇대 어두운 등 밑에 책을 보고 하염없이 서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바짓단이 젖는지도 모르고 멀거니 서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방을 쓰고 있는 친구집으로 찾아갔다고 했다. 속모르는 친구는 바지도 벗지않고 이불로 배만 덮고자는 선배님께 추운데 다 덮지 왜 그러냐고, 바지는 왜 안벗냐고 했단다. 며칠째 입은 낡은 팬티가 부끄러워 바지를 벗지 못하고, 바짓단이 젖어있어 이불을 적실까봐 덮지 못하는 선배님의 속도 모르고.....
나는 작고한 선친의 에피소드로 추임새를 넣었다. 선배님은 2주전에 자신의 방을 내어준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아 식사를 했다고 했다.

그래도 당신 자식 넷과 동생을 건사한 큰형 내외분이 고마워서 은인처럼 평생 잘하셨단다. 오죽하면 남편을 먼저 보내고 두해전 세상을 버린 큰형수가 "작은 아버지께 잘해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얘기를 듣다가 내가 여쭤봤다.
"그런데 선배님 이런 얘기 평소에 자식들한테 하셔요?"
"안하지.... 걔네들도 듣고 싶지 않을테고.... 원래 부모가 되면 그래 지난 아픈 얘기는 안하게 되거든....."
"그러시죠. 아마 제 또래가 이런 얘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젯밤 내가 들었던 그 파도는 지금 젊은 친구들이 타고 넘는 이 파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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