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마력

by 문성훈

잿빛 고양이가 지나간다. 잿빛으로 보였지만 실은 검정과 누런 털이 뒤섞인 얼룩배기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뒷발 한 쪽을 절름거리는 것같아 유심히 보니 그 발만 누런색이라 그리 착각했던 것이다.
좁쌀 알갱이 흩뿌리듯 내리는 비에 편 것도 그렇다고 접지도 않은 어정쩡한 우산만큼이나 상그런 아침 출근길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가로질러가는 고양이를 보면서 한동안 수입한 젖소로 착각했던 노랫 말 속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던 “얼룩배기 황소”를 떠올리고, 우리집 출세한 유기견 ‘망고’가 생각나기도 한다.

얼룩배기 황소는 한국 토종의 ‘칡소’의 다른 이름이다. 일제시대 우량화작업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는데 지금에서야 관계기관이 혈통보존에 나선 귀한 소다.
길고양이가 사진에서 본 칡소의 무늬와 흡사하다. 그런데 누군가 집으로 들여서 키울 엄두는 내지 않을 것 같다. 애묘가들이 그리 호감이 가질만한 털 색깔이 아닌 것 같아서다.
우리집 망고는 깜둥개다. 추측컨대 잡종이어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집에서 키우는 동물의 검정색을 선호하지 않는 한국적 정서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망고의 가슴팍 수북한 털은 유난히 하얗다. 왜 망고를 버린 주인은 오리털처럼 부푼 하얀 가슴털을 유심히 보지 않았을까?

나는 검정색을 좋아한다. 모든 색을 품은 마지막 색이고 어쩌면 세상의 때를 덮을 수 있는 마력을 지닌 색이기도 하다.
검은 동물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한 <캣 피플 1982>에 나온 흑표범이다. 이후로 나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눈부신 미모만큼이나 신비하고 오묘한 검은 동물에 대한 호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검정(Brack)이라는 컬러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강렬하면서 차분하고, 깊으면서도 단정하다.
우리는 쉽게 검정색에서 어둠이나 그림자 혹은 죽음을 연상한다. 미망인의 검정드레스와 보디가드들의 검정 슈트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오랜 관습에 따른 전통 상복은 검정색이 아니라 흰색에 가까운 누런 삼베였다는 걸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보디가드나 007의 검정 슈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선택인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검은 동물을 집안에 들여놓길 꺼리는 인식은 조작되거나 학습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
검정 상복은 죽은 영혼이 산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간다는 서양인의 미신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백인은 검은 칠을 하고 흑인은 흰 칠을 해서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고 했다는 것이다.
흔히 검정색인 저승사자의 복장도 본래는 흰색이었을지도 모르고 죽음을 연상한다면 천사의 날개도 흰색이란 걸 동시에 떠올려야 한다. 천사가 흑인인 그림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시대를 선도한 인종들의 편견이거나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백색가전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얀색 냉장고, 하얀색 세탁기, 에어컨, 식기 세척기까지 정결을 강조하고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백색처럼 주효한 컬러는 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양한 컬러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총천연색 컬러의 가전들이 선보이는 가운데 가전회사들의 프리미엄급 모델 중에는 블랙 컬러가 드물지 않다. 블랙이 아니면 알미늄이나 스텐등 소재 자체가 지닌 고유한 색상을 표면 가공한 것이다.
바야흐로 블랙 컬러의 고급스럽고 그윽한 품격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오래전부터 고급 차종 특히 세단의 도장 컬러는 블랙이었다.
때가 묻어도 표가 잘 나지않는 블랙이라고 해서 관리하기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블랙 컬러의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자주 세차를 해야 하는지. 먼지 한톨까지도 거슬리게 하는 블랙의 강렬한 파워를 실감하는 것이다. 이렇듯 블랙은 다른 컬러를 받쳐주기도 하지만 도드라지게도 해서 민감한 컬러이고 유지하기에 까탈스런 컬러이기도 하다.

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면서 검정이나 무채색 게열을 즐겨 쓰는 편이다.
아내의 타박을 받아가면서도 이런 색상의 옷을 즐겨입는 것을 보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검정색에서 불안과 공포 심지어 죽음을 떠올릴 수 있는 반면 깊고 그윽하며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검정색(BLACK)은 스스로의 표정이 없다. 단지 우리의 문화적 인식, 학습되고 기억된 이미지로서 연상하고 느낄 따름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 블랙은 더욱 사랑스러운 컬러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존재를 부각시키고, 주인공으로 만드는 고귀한 컬러인 것이다.

나전칠기장이 더욱 빛나는 것은 전복 껍질의 오묘한 천연의 컬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받쳐주는 짙고 검은 옻칠 때문이다. 미망인의 형용하기 힘든 신비스러운 분위기, 함부로 접근해서 말을 붙이기 어려운 이유는 그녀의 슬픔을 오롯이 전달해주는 상복의 검정색 드레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루기 힘들지만 질감(Texture)으로 다양한 표정과 감성을 전달하는 블랙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대상이다.
인테리어에 있어 블랙 컬러 또한 결국 빛나게 하는 것은 그 공간 속에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사람이 아름다울 때 블랙은 자신의 값어치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표정이 없는 검정색(BLACK)이 현대에 이르러 각광받는 것처럼 언젠가는 검정색 띠를 촘촘하게 두른 호피무늬가 부의 상징이나 고귀한 색상의 조합으로 빛을 볼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때쯤이면 비를 맞고 아파트 화단으로 몸을 숨기던 얼룩배기 잿빛 고양이가 ‘얼룩배기 황소’처럼 귀한 대접을 받고 길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될 거란 시덥지 않은 상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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