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광장은 서구에서 시작된 도시의 산물이다. 서양에서 광장은 그리스 Agora에서 시작되어 로마의 Forum, 중세도시의 Place로 계승되어 왔다.
그리스에서 광장을 뜻하는 아고라는 시장 혹은 광장이란 의미다. 그리스어로 ‘나는 물건을 사러간다’는 아고라조 Agorazo와 ‘나는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아고레우조Agoreuzo는 모두 아고라가 어원이다. 시민 사회의 열린 장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광장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청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큰 길'이나 '넓은 공터'의 의미가 더 강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광장으로 꼽히는 광화문 광장은 실은 조선시대의 육조거리다. 육조관청이 몰려있던 ‘너른 길’이었다.
오히려 백성들은 높으신 양반들과 마주칠까봐 피맛골로 돌아서 다녔다. ‘피맛골’은 ‘양반 행차의 말을 피해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다. 정도전이 백성을 배려해서 만들었단다. 그러니 우리나라 시민들의 광장 역할은 뒷골목이 맡았던 셈이다.
역사 이래로 우리나라 광장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20세기 중반, 근대의 일이다. 그것도 피흘리는 아픔의 현장으로 시작된 것이다.
빈 곳만 있으면 가만 내버려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일 때도 있고 조직일 때도 있다. 지방자치제 이후로는 앞다투어 지방 정부가 공공부지에 개발사업을 하든 조형물을 만들든 무언가 채워 넣으려 안달이다.
일산에는 지금은 문화광장으로 개명된 미관광장이 있다.
지하철 역과 호수공원을 잇는 교통 요충지인데다. 백화점, 미술관, 도서관등의 문화시설과 근접한 입지나 규모면에서 고양시를 대표하는 광장이다.
많은 행사나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벼룩시장, 자유로운 버스킹과 스케이트 보드와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숨통을 틔워주는 휴식 공간이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넓었었다. 최근 정확히는 2018년에 ‘고양독립운동기념탑’이란 조형물이 세워졌다. 그 뒤쪽으로는 '일산관광문화센터' 건물이 들어섰다. 원래부터 이 광장에는 호수공원 방향으로 그러니까 독립운동기념탑 맞은 편에 번뜩이는 스테인레스 재질로 만들어진 오뎅꼬치 모양의 건설기념탑이 있었다. 1997년 신도시 건설을 즈음해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문화광장에는 높이 30m가 넘는 두개의 거대한 탑이 마주보고 서 있는 형국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에 나오는 샤우론의 탑이 연상된다.
자주 가는 서점이 광장을 가로질러 있다. 오늘도 서점을 가면서 ‘고양독립운동기념탑’을 흘겨보면서 지나쳤다. 이 탑과 문화센터 자리는 원래 잔디밭으로 비워져 있던 공간이었다.
독립 100주년 기념도 좋고, 3.1절을 의미하는 31m의 높이까지 어떻게 납득해보려 하는데 그게 잘안된다.
지방단체장의 얄팍하고 속보이는 치적 쌓기처럼 보이고, 공무원들의 빈약한 아이디어, 구태의연한 행정처리의 상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그냥 두질 못할까? 내가 일산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에 첫번째는 녹지공간이 많아서다. 전체면적의 22.5%에 달하는 신도시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출근길에 가끔 지나치는 안산공원에는 보건소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문화광장의 고양독립운동기념탑 예산이면 굳이 공원을 잠식하지 않고도 다른 부지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내가 광장을 잠식한 고양독립운동기념탑과 일산관광문화센터에 낯살을 찌푸리는 이유 중에는 15억이상의 예산을 들여서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한 의의나 활용도가 없어보인다는 주관적인 견해도 한몫을 한다.
탑 아래 안쪽 둥근 대리석 벽면에는 고양출신 독립운동가 74인의 이름, 바깥쪽에는 조악한 부조가 새겨져 있다. 탑을 오르는 잔디언덕을 조성했는데 언제나 접근금지여서 올라가보지 못했다.
이렇듯 어느 도시에서나 마주치는 기념탑은 전국 중고등학교의 교가처럼 비슷하다. 혹시나 지방단체장들이 앞다투어 스스로 세우는 공덕비라면 너무 크고 비싸다.
독일 베를린의 거리를 걷다보면 발에 걸리는 명판을 발견하게 된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이 살던 집 앞에 가로, 세로, 높이 10cm 되는 구리로 된 '슈톨퍼슈타인 Stolpersteine’이란 명판을 박아놓은 것이다. '슈톨퍼슈타인'은 ‘걸림돌’이란 뜻이다.
진정으로 고양시가 배출한 역사적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라면 크기와 규모로 압도할 게 아니라 시민들 가슴에 그 정신과 역사를 새길 참신한 방안을 강구했어야 한다.
사회나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해왔고 늘 하던 방식으로 눈에 띄고 표나는 사업에만 열중해서는 혁신도, 발전도 있을 수 없다.
나는 이 기념탑이 누구를 위해 건립됐는지 의심스럽다. 혹시나 명절이나 기일에 독립운동가 조상을 찾는 후손들의 편리한 방문을 위한 납골당의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기엔 탑의 규모에 비해 너무 왜소하고 초라한 몇 글자에 불과하다.
일산관광문화센터 건물만 해도 그렇다. 바로 앞에 동구청, 아람미술관, 아람누리 도서관등의 시설과 호수공원안 건물들이 있는데 이렇게 광장을 점령하듯 들어서야 했을만큼 긴요하고 기존 건물들의 공간을 그 만큼 잘 활용하고 있어 도저히 빈 자리가 없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뉴욕의 명물 '뉴욕공공도서관'안에는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한 직업정보센터가 있다. 뉴욕 시민들이 도서관 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사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랑 받는 이유다.
뭐든 비어 있으면 채우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에 있어서도 서양화와 달리 한국화는 여백을 중시한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비어있는 꼴을 못본다.
나는 이것이 일본 식민지 지배의 영향이 아닐까 의문을 가진다. 일본의 인테리어를 보면 벤치 방석 밑, 침대 아래에도 서랍장을 만들고, 다락을 선호하며 뭐든 쟁기고 채워서 작은 면적에서도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거기에 한국의 치솟는 부동산 값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빈 공간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냥 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파트의 베란다 확장은 이제 옵션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 버렸다.
광장이 도시의 숨통을 틔워주는 여백의 공간이라면 집이나 회사 같은 주거 공간에 있어 비어있는 공간도 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나는 인테리어를 하며 아주 작은 공간이라도 비우는 설계를 지향하는 편이다.
훌륭한 디자인은 더 이상 채울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어서 무엇 하나라도 덜어내면 무너질 것만 같은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강남에 있는 어느 디자인회사의 사옥을 설계한 적이 있다. 디자인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의뢰했다는 뜻이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유리로 된 출입구를 지나면 각 방과 사무공간으로 접근하는 작은 홀을 뒀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무집기와 각 방으로 진입하는 동선이 겹치는 위치다.
아무래도 무언가 들여놓을 것만 같아서 대표와 관리자에게 완공 후에도 아무것도 두지 말 것을 당부했다.
얼마 지난 후 방문했을 때 그 곳에는 개업식 때 들어온 화분들로 채워져 있었다.
여백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백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