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다 좋은 건 없다

by 문성훈

예약이나 팁이 몸에 배지 않은 나 같이 오리엔탈적인 사람은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여행을 할 때도 서비스를 받을 때도 이제는 예약이 필수가 됐다.

2020년부터 자동차 정기검사가 예약제로 변했다. 머리 디밀고 가서 기다리면 어떻게든 받을 수 있던 시절은 끝난 것이다. 검사기간으로부터 앞뒤 한 달씩 두 달간의 검사 가능기간을 준다. 긴 편이다. 아내 차의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무슨 납부라든지 검사 같은 일들은 치과치료처럼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이 임박해서야 처리하게 된다.
올해도 역시 마지막 날 예약이 잡혔다. 예약마저 미루다 느즈막히 하는 바람에 공단 검사소가 아닌 민간 출장소에서 받게 됐다. 통지에 쓰여진 “예약이 조기마감 될 수 있으니 꼭 미리 예약하시기 바랍니다”는 안내가 아니라 경고였던 것이다.

출근시간을 피해 11시를 선택했는데 그래도 차가 밀린다. 10분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접수를 위해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 직원이 그대로 타고 있으란다. 그제서야 예약하면서 접수와 수납을 끝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편리해진 세상인 건 분명하다.
내 차례가 되어서야 대기 장소로 가 있으라는 안내를 받는다.
민간공업사고 규모가 작다 뿐이지 공단 검사소와 과정이나 절차가 다를 게 없다. 대기사무실에는 최종 결과지를 출력해서 알려주는 직원 한 사람과 몇 명의 대기자가 있었다.

드디어 내 차의 검사순서다. 내심 걱정도 된다. 상태는 아주 양호하지만 이제 8년째 접어드는 경유차라서다. 작년에는 지레 겁먹고 엔진세척제를 먹여서 데려왔었는데 올해는 그것마저 빠트렸다. ‘불합격이면 정비해서 다시 받지 뭐’ 미련과 후회는 짧을 수록 좋다.
아내의 차는 코란도 스포츠다. 캠핑용도로는 최적이었다. 화물차라서 신차 구입후 2년 후부터는 1년마다 받아야 한다. 일반승용차는 신차 구입후 4년 후부터 2년마다 검사를 받는다.

1년은 항상 금방 돌아온다. 창밖으로 검사장면을 보다가 직원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데 1년은 너무 짧은 것 같지 않아요? 너무 빨리 돌아오네”
마치 내 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직원이 대답한다.
“왜 그런지 아세요? 저 차 1년에 자동차세 얼마 내세요?.....”
길어지는 설명에 괜한 얘기를 꺼냈다는 후회가 들기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화물차는 돈을 버는 영업용으로 취급해서 자동차세는 적게 걷는 대신 이렇게 자주 검사를 받게 하는 것으로 부족분을 회수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버스는 6개월마다 검사를 받는다니 왠지 위로가 된다. 사람마음이 이리도 간사하다.

긴 설명 끝에 마지막 멘트는 “그래도 불만이시면 국회에다 요구해서 법을 바꾸는 수 밖에 없죠 뭐. 근데 제 생각에는 안될 것 같네요.”로 끝낸다.
“그런데 여긴 공업사인데 큰 정비는 안하는 것 같네요?”
“네. 여기 사장님이 그건 안하시나 보더라구요”
“어 그럼 여기 직원이 아니세요?”
“네. 저는 공단에서 파견 나온겁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공업사 직원인 줄로 알았다. ‘아 그래서 설명이….’
“그럼 저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아뇨. 저 사람들은 여기 직원이고. 파견나온 건 저 혼자죠. 그래서 여기 사장님도 제 일에 전혀 터치 못합니다. 전혀요”
왠지 자긍심보다는 모호한 우월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검사가 끝났다. 합격이다. 안심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받는 검사는 합격을 원한다. 건강 검진이든 차량 검사든 불합격은 나쁜 징조이고 듣고 싶지 않은 결과다.
그런데 불합격을 간절히 원하는 검사가 있다. 공동주택의 안전진단이 그렇다. 재건축연한(30년)만 지나면 안전진단을 의뢰해 불합격(D이하)을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공동주택 즉 아파트의 안전점검 주기는 짧다.
16층 이상일 경우 반기에 1회 이상 ‘정기안전점검’을 받고 안전등급에 따라 2~4년 주기로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하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의 안전이 걸린 문제여서 그렇다.

그런데 재건축 연한인 30년이 지나부터는 다들 재건축을 갈망한다.
안전진단에서 불합격이 떨어지기만을 기원하는 것이다. 불합격이 좋은 소식이고 합격은 불운이다. 내가 사는 곳이 안전하다는데 실망한다. 물욕은 안전까지 도외시하게 하는 마법의 힘을 지녔다.

대부분의 아파트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200년이 내구연한이다. 유럽은 대부분 100년정도를 내구연한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30~50년이다. 무척 짧다. 개발도상국 시절부터 시작된 날림이나 부실 시공의 영향이 크다.
시멘트, 물, 모래,자갈 범벅인 우리가 흔히 ‘공구리’라 부르는 콘크리트는 꽤 오랜 역사를 지녔다.
B.C5000년 피라미드도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콜롯세움도 콘크리트가 없었다면 지어질 수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대리석이나 벽돌의 접착재로서의 용도로 쓰였다.
결합재로 쓰여진 것은 1800년대부터인데 당시에는 철근이 없어 말총을 대신 섞어 사용했다.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철망으로 시작해 철근을 콘크리트와 함께 쓰게된다.

콘크리트는 단단하다. 누르는 힘 즉 압축에는 돌덩이처럼 단단한데 당기는 인장에는 취약하다. 철근이 인장력을 보강해주는 역할을 한다.
철근은 약도 되지만 독도 된다. 콘크리트에 묻혀있던 철근이 어떤 이유로든 수분과 접촉해서 부식을 하게되면 팽창한다. 콘크리트는 인장에 약하다고 했다.
철근의 팽창으로 콘크리트에 금이 가고, 금이 간 틈으로 또 물이 들어가면 철근은 더 팽창하는 악순환이 연속되면서 급격한 노후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철근이 없던 로마시대의 콜롯세움은 몇 천년동안 건재한데 우리는 30~50년으로 수명을 산정하는 이유다.
세상에 만사형통, 만병통치는 그리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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