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서

by 문성훈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다루는 작업이 인테리어다. 쓰임새에 따라 나누거나 합치기도 하고 허물거나 새로 만든다. 사용자의 의중을 파악해 최적의 분위기와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뭐가 전문이세요? 어떤 게 작업하기 제일 어렵습니까?"
내가 하는 일을 알게 된 상대방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들이다. 하기야 전문가집단 예컨대 의사도 전공과목이 있고, 변호사도 전문영역이 있는 시대이니 이상하지만은 않은 질문이기는 하다.
그런데 나는 난감하다. “꽤 오랫동안 일을 해와서 다뤄보지 않은 공간은 드뭅니다만…. 어려운 작업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집이지요”

나는 지금도 주택 인테리어가 어렵다. 그런 대답에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주택 인테리어가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갓 입사한 직원이나 경력이 짧은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업종은 단연코 카페나 레스토랑, 호텔, 쇼핑몰, 오피스, 병원 같은 시설이다. 주택을 우선해서 다뤄보고 싶다는 초급 디자이너들은 그다지 만나보지 못했다.
아마 획일화된 아파트주거문화가 일반화된 한국적 특성이거나 주택이라고 하면 모두가 늘 먹고 자고 생활하는 친밀한 공간이라 쉽고 단순할 거란 생각을 해서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 흔히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주택이야말로 인테리어의 종합판이다. 그런데 왜 다들 쉽게 생각할까.
나는 지물포나 철물점 간판이나 유리마다 붙어있는 ‘인테리어, 집수리, 종합인테리어’ 문구에서 해답을 찾는다. 벽지만 새로 도배해도, 장판만 다시 깔아도 인테리어인 것은 맞다.
그런데 인테리어란 말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장식을 바꾸거나 기성 자재로 대체하는 기술적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간을 유의미하고 새롭게 디자인하고, 어쩌면 이를 통해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의 삶까지도 디자인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인테리어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써도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나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책 속에는 작가의 오랜 사유와 성찰 그리고 철학이 담겨있다.
하물며 사람을 담는 그릇인 공간을 창출하는 작업이다.
의뢰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서 컨셉을 잡고 한정된 여건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내야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같은 경우에는 의뢰자나 사용자의 성별, 나이, 직업 심지어 성격과 자라온 환경, 미래 계획까지 파악해야만 스케치를 할 수 있을 때가 많다.

하물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중심. 가족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들의 추억과 역사 그리고 정서의 토대가 되는 공간이 집이다.
그래서 집을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작업은 쉬워보이지만 최고난이도인 게 분명하고 그걸 깨닫게 되면 비로소 프로페셔널이 된 것이다.
집은 그 어떤 공간보다 친밀하고 접촉이 많으며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보게 된다. 사무실 천장에 물 떨어진 자국은 무심히 지나쳐도 거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가 눈에 띄는 공간 그것이 집이다.
그만큼 사람에게 지대한 심리적 영향을 끼치고 삶의 질을 좌우하는 공간을 담은 곳이 집인 것이다.

그렇다면 집을 인테리어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작업은 뭘까?
디자이너마다 애로사항이 다 다르겠지만 내게 묻는다면 벽지와 페인트 컬러의 선정이라고 말하겠다. 공간을 구성하고 가구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그에 비하면 쉬운 작업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또한 의아해할 수 있는데 유수의 기업들이 해해년년 쏟아내는 다양한 색상과 무늬 거기에 질감까지 더해진 수많은 벽지 중에 하나를 고르는 작업은 사막에서 사기조각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

평범한게 가장 어렵다는 말처럼 무난한 벽지를 고르는 게 더 힘들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얀색 벽지라고 하지만 하얗다고 표현할 수 있는 벽지만 해도 수십가지다. 컬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난감한 점은 작은 샘플조각으로 넓은 벽면에 발라졌을 때를 정확하게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늬가 이어졌을 때, 그리고 채광이 있을 때와 조명이 켜졌을 때, 그리고 방안을 채울 가구의 색상과 대비될 때의 상황까지도 연상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오류는 이 작은 샘플만으로 판단하는데서 생긴다. 밝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배하고보니 어둡다거나 짙다고 정했는데 완료 후에 보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벽지회사에서는 이미 완료된 실내 사진을 제공하는데 이를 믿었다가는 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아무래도 이럴 때는 오랜 경험이 주효해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주택을 전문으로 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는 전화번호부보다 두꺼운 벽지샘플집에서 의뢰인이 고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의뢰인을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은 일종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사후에 발생할 문제점을 인테리어업계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벽지나 페인트 컬러, 타일, 마루등 의뢰인에게 선택의 기회를 많이 준다는 숨은 의미는 숙제를 고객에게 넘기고 사후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판단과 선택을 요구받는다.
어느 논문에서 일반인이 하루에 맞게 되는 선택의 순간이 수백번이 넘는다는 글을 읽었다. 안구의 움직임으로 측정했다고 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뛰어가서 이번 신호에 건널목을 건널까 말까?' '점심은 뭘로 먹지?' 등등
거기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의 사건, 사고, 정치적 이슈, 사회 현상까지 더해지면 하루 온종일 판단과 선택을 하면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택인테리어를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것에만 의존해 판단하고 익숙하고 친근한 것을 우선하거나 이끌려서 선택하는 경우를 본다. 작은 벽지 샘플로 쉽게 완료 후의 모습을 단정짓는 것처림 사소한 단면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실수도 자주 저지른다.
집을 인테리어 하는 경우처럼 정치, 경제, 법 같은 전문적인 영역은 세밀히 파고 들어가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 사고를 대하는 자세는 자신이 작은 벽지 샘플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다. 벽지가 넓게 펼쳐졌을 때를 연상하듯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면 섣부른 판단과 선택으로 예기치 않은 실패를 초래한다.

난감하고 어려운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당장 눈 앞에 놓인 작은 조각 그것이 사소한 이해 관계든 일시적 감정이든 그것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잠깐 한 숨을 돌리고 머릿 속으로 전체 전경을 그려보는 자세야말로 이 혼돈스럽고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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