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이야

by 문성훈

음식은 장맛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우리 조상들이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해도 여러가지 좋은 장이 있으면 반찬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 <증보산림경제. 유중림1766>”고 했을까.

입맛 까탈스럽기로는 추사 김정희만한 인물도 없었던 것 같다. 멀리 떨어진 아내와 오간 서신에 “장맛이 소금꽃이 피어 쓰고 짜다.”는 투정을 적어 보낼 정도였다, 여간 입이 짧고 성가신 남편이 아니셨으니 요즘 시대 사셨으면 아내의 눈총과 면박에 배겨나지 못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이토록 우리 식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장맛이고 보면 그에 관련된 속담이 많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집안이 망하려면 장맛부터 변한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집안을 보려면 장맛을 보면 된다” 유난히 장맛은 집과 연관되어 있다.
어느 지역의 장맛이기보다는 누구네 장맛인 것이다. 교통이 지금같지 않은 과거에는 인근에서 나는 재료로 비슷한 일조량으로 만들었을텐데 집안마다 장맛이 다르다는 건 좀 의아스럽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전통음식에는 종갓집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유명한 김치 상표도 종갓집이다. 그 집의 장맛이 맛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말 하나가 더 있다. “음식은 손맛이다”란 말이다.

지금은 발길을 끊었지만 자주 가던 기계우동집이 있었다.
해질 무렵 문을 열어 다음날 새벽 4시가 넘어야 문을 닫는 전형적인 심야식당이었다. 택시기사와 음주나 회식후 귀가하는 인근 주민들이 단골이었다. 그 식당의 각별한 우동 국물만큼이나 옛날짜장 맛도 좋았다.
가지않게 된 것은 주인이 바뀐 후부터였다. 단골이었던 나는 그 사실을 진작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젊은 새 주인에게 인수인계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6개월 정도의 수련과정을 거쳐 똑 같은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그런데 분명 옛맛이 아니었다. 내 입맛이 바뀌었나 싶어 아내에게도 물으니 나와 같은 의견이다.
궁금한 걸 못참는 성격이라 물어봤다. 재료도 같은 데서 받고 레시피 그대로 우러내거나 불조절까지 어김없이 지킨다고 했다. 그런데 우동도 짜장도 맛이 변했다. 무어라 꼭 집어낼 수 없었지만.
한가지 단서는 있다. 언젠가 새벽 파장 무렵이었다. 손님은 나 뿐이었다. 주인은 웍에 남은 짜장을 큰 플라스틱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 걸 봤다. 아까워서 저러나 궁금해서 물었더니 전날 썼던 짜장을 다음날 새로 만드는 짜장에 반드시 섞어 쓴다고 했다. 그래야 맛이 똑같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씨짜장’이다.
100년된 혹은 200년된 ‘씨간장’ 얘기는 들었어도 이런 ‘씨짜장’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분명 그 방식까지 전수했을텐데 맛이 변한 건 분명했다.

나는 장남이다. 요즘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그래서 아내는 맏며느리다. 아내가 시집오자부터 인정했지만 어머니의 음식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나물 무치는 것에서 국 간맞춤까지 시어머니께 전수받았다. 심지어 중요한 양념이나 젓갈 산지까지 말이다.
그런데 약간 다르다. 눈을 감고 먹어봐도 맞출 자신이 있을 정도다. 희한한 일이다. 오이나 콩나물 무침을 봐도 분명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인데 맛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요즘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물론 정설이 아닌 나만의 추정에 불과하지만. 음식은 장맛이고 손맛이 분명하다. 씨짜장을 같이 써도 맛이 틀릴 수 있다.
인간은 미생물과 함께 산다. 인간의 몸은 미생물의 집인 셈이다. 미생물 없이 인간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우리 몸 안팎에는 밝혀진 것만 4만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은 소화관에 살지만 콧구멍, 입몸 등 드러난 곳에도 산다.

그 중 몸 바깥이라고 할 피부에는 약 200종의 미생물이 산다고 한다. 그런데 연구를 위해 검사한 사람들 모두에게 있는 미생물은 4종류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단 4종에 불과하다는 사실. 나는 손맛과 장맛이 다른 이유는 그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직립하는 인간이 무언가를 만지거나 만들 때는 반드시 손을 사용한다. 미생물이나 세균을 옮기는 것도 주로 손이다보니 의사들이 그토록 손을 열심히 씻는 것이다.
음식도 손으로 만든다. 특히나 한국음식은 조리기구보다 손이 많이 가고 발효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그러니 사람의 손이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왜 종갓집 음식의 맛이 잘 변하지 않고 전승됐을까? 그 비밀도 손에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거의 몇 십년을 한 집에 살며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생물까지 옮겨졌을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안마다 장맛이 다르고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씨짜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재료를 다듬거나 조리하며 다른 손의 미생물이 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해보인다.

프랜차이즈 기업의 인테리어는 대부분 해오던 인테리어업체가 한다. 매뉴얼이 정해져 있고 작업이 손에 익어서다. 손에 익었다는 말은 비용과 효율면에서 유리하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본사는 일정한 비율의 이익을 인테리어 업체로부터 받는다.
유명한 베트남 쌀국수 프랜차이즈의 인테리어 작업을 했었다. 본사가 정한 업체가 맡아 진행하려다 내가 하게 됐다. 주인이 도저히 마음에 안들고 완성도를 믿을 수 없다해서 내게 부탁한 것이다.
내 조건은 한가지였다. 주방과 간판만 매뉴얼에 따르고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디자인하겠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걸 바라던 주인은 흔쾌히 허락했고 본사의 동의까지 받아줬다.
강남 최고 비싼 입지에 가장 고급 주상복합 건물 상가였던 탓에 본사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전과의 전혀 다른 인테리어의 식당이 탄생했다. 첫날부터 대박이 터졌다.
나로서는 한시름 놓고 지냈는데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식당주인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스파이를 잡았다는 것이다.
‘왠 스파이?’ 사연은 이랬다. 얼마전부터 몇 사람이 돌아가며 식사를 하러 와서는 몰래 실내 사진을 찍더란다. 한두차례는 무심코 넘겼는데 이상하다 여겨서 잡고보니 프랜차이즈 본사의 직원과 인테리어 업체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다혈질의 주인은 흥분해서 소송을 걸자고 했다. 아마 그의 부친이 유명한 검사출신의 변호사였던 탓도 있었지 싶다. 사연을 다 듣고 난 뒤 내가 그랬다. “소송은 무슨 소송입니까? 몇 년은 걸릴텐데….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저야 한 두번 겪은 일도 아닌데” 주인이 되려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다. 아무리 그대로 흉내내고 따라해도 같을 수는 없다는.

그 주인이 얼마나 대단하고 끈질긴 사람이었냐면 그 후로 오픈한 그 프랜차이즈의 가맹점까지 찾아가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정말 똑같던가요? 아닐텐데요. 사장님같으면 같은 음식이면 어디서 드시고 싶으시던가요?” 자기 가게일거라고 했다. 눈에 띄는 조명, 자재, 형태까지 비슷한데 무언가 아닌가 같다는 것이었다.
“그겁니다. 안심하세요. 그런데 쫓아다니지 마시고 사업에만 열중하시면 됩니다. 요즘은 매상이 어떠십니까?”
내가 인테리어 작업한 매장은 그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전국 최고 매상을 갱신하며 쾌속 행진 중이다.

나는 못 한번 박지 않고, 페인트 붓 한번 쥐지않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아직까지 CAD가 아닌 스케치로 구상하고 설계하는 구식이라면 구식인 사람이다.
손 스케치에서 컴퓨터에 의해 종이로 옮겨진 도면이 현장에서 거의 그대로 실현된다.
설계도서에는 위치도, 재료도, 가공방법과 형태까지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 인테리어 전문가라면 완성된 현장사진을 보고 그대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설계도나 자재 구입처까지 알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완벽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게 내 결론이다. 같은 재료라도 다루는 사람의 솜씨와 태도, 현장 관리자의 컨셉 이해도와 순발력, 마감과 완성도에 들이는 정성 이런 많은 사람들의 손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기에 말맛도 추가된다. 이왕이면 같은 시간에 같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데 기분 좋게 일한다면 능률은 배가 되고, 그 효과는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든다. 감독자마저 미처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디테일에 드러난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명시했다가는 도면은 전화번호부 두께가 되고만다.
그런 수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나는 같은 도면으로 인테리어를 해도 그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1인치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문구에만 그치는 말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미생물말고도 아우라라는게 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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