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감각을 요구하는 디자인의 세계에서 여성 혹은 여성성은 분명 우수한 자질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 최고급 명품브랜드의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외국회사 그것도 특히 세계적인 명품회사와 함께 일하면서 비즈니스와 무관하게 느낀 사적인 감상은 디자인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여성이거나 여러모로 여성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여성용 명품 가방으로 시작한 회사여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인테리어 디자인 부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여성적이라고 표현했지만 내가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미리 눈치 채고, 나중에 가까워진 그 회사 직원에게서 직접 들은 바로는 남자직원 중에 상당수가 게이였다.
패션, 헤어, 인테리어 등 디자인 업계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낸 지는 오래됐다.
그런데 비슷할 것만 같은 사진이나 그래픽, 에니메이션 디자인 분야는 그에 미치지 않다는 게 내가 평소에 느끼는 점이다.
추측컨대 고된 신체적 활동과 시간을 요하는 분야여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기술적이고 이과적인 해결 능력이 수반돼야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까지 토목이나 건설, 자동차, 우주항공 산업의 디자인 영역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거라는 짐작을 하게 되는 데 이는 남성과 여성의 타고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심리학계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주로 문제중심적 사고와 대화를 하고, 여성은 정서중심적 사고와 대화를 한다고 한다.
이는 일상에서의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데 나 역시 아내와의 지나간 연애사나 지금의 부부생활에서 잘 극복되지 않는 다툼의 원인을 제공한다.
간혹 아내가 과거에 서운했던 내 행동과 말 혹은 현재의 자기 심정을 얘기하고자 할 때. 나는 긴장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머릿 속을 거쳐 정제되지 않은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거야?” “그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돼”
아내는 내게 해결과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 받고 싶을 뿐인데 나는 원인을 분석하고 정답을 찾는데만 골몰한다.
아내는 자신의 정서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어하는데 나는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에만 골몰하는 것이다. 언제나 난감하고 어려운 문제다.
방금 전에도 나는 ‘문제’라는 표현을 썼다. 그대로 심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문제화한 것이다. 참으로 건너기 힘든 남녀 사이를 가로지른 얕아보이지만 깊은 개울처럼 보일 뿐인 강이다.
이런 남녀간의 성향은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자연 환경과 천적이나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사냥과 채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자식을 낳아 기르기위해 자기 표현이 서툰 자식과 소통하고 반응해야 하는 심리적 기능이 훨씬 발달한 데서 기인한다.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혹은 사냥감을 추적하고 생존을 위해 주거지를 옮기는 판단을 해야만 하는 남성이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적 소통에 익숙하고,
미성숙한 자식의 심상를 읽어내고 감성적인 교류를 통해 소통하는데 익숙한 여성이 상호반응의 소통법에 탁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과학 기술의 발전, 산업사회로의 진입은 현대를 특정 짓는 요소들이다.
자연 생태계가 아닌 인공적인 환경과 생산품들이 넘쳐나는 세상인 것이다. 옷, 집 심지어 먹거리까지 이전에 보지 못하던 없던 것들이 넘쳐난다. 홈쇼핑에 중독되었다가는 포장박스로 집을 짓고 속지로 이불 대신 덮어야 할 지도 모른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와 생산품들에 있어서 디자인은 예전에 없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상이고 사실이다.
디자인의 세계는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 창출이 목적이다. 같은 기능과 용도를 가졌더라도 더 눈에 띄고 아름다워서 인간의 욕구와 감성을 자극해야지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이성적이고 기술적인 문제 해결 능력보다 감성적인 접근과 인문학적 자질이 더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는 디자인적인 재능이 대체적으로 더 뛰어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디자인 분야가 아니더라도 원인과 결과, 사실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한 세상으로 바뀐 것만 같은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여성의 본능에 가까운 선천적인 능력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상호 반응하고 감성적으로 소통과 교류를 하는 정서중심적 사고와 대화법은 점점 메말라가는 인간관계나 사회발전에 거의 유일한 돌파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참과 거짓이 뒤섞여 진실을 더욱 분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언어의 기술적 기능은 이제 퇴락한 지 오래다.
그보다는 언어와 몸짓에 담긴 호소력이나 진심을 읽어내는 인간의 탁월하고 고유한 감각에 더 의존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미 인간의 지적능력은 컴퓨터에 뒤쳐졌고, 사고의 속도는 정보의 속도를 쫓을 수 없게 됐다. 진리나 진실은 행방불명이 된 지 오래인데다 더 이상 중요하게 취급되지도 않는다.
인간의 완력과 돌도끼가 사라진 시대.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보다 맥락과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더 가치있는 삶을 사는 지혜인 것이다.
우리가 더 나아진 사회, 모두가 바라는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사회진출은 더 증대되고, 여성적 사고는 더 중요시되고 높이 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