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모른척하지만 알고있다

by 문성훈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 내가 임마! 느그 서장이랑 임마! 어저께도! 어?! 같이 밥 묵고! 어?! 사우나도 같이 가고! 어?!...”

사회 생활하면 어쩔 수 없는 대인 관계, 인간이라면 맺게 되는 나 외에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과의 관계 설정은 무척 중요하다.
대인관계는 세속적인 성공과 좌절 심지어는 생과 사를 오가게까지 하는 삶의 중요한 요소다.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규정되기도 하며 내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을 규정하게도 한다.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이런 관계주의적 특성에 오랫동안 주의를 기울여왔다.
특히 한국인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유한 정서와 맞물려 이런 관계주의 특성이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 강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2012>를 통해 유명해지고 여러 버전으로 패러디가 된 최민식의 대사는 한국적인 관계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던 기회의 땅이었고 변신의 시대였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범죄자마저 누구와 어떤 친분을 맺고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격이 달라졌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후로 바뀐 세상이라지만 이런 관계 설정의 영향까지 약화됐을까.

우리의 이런 관계주의 성향을 엄격한 존대말의 체계와 다양성을 가진 한국어의 특성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이는 미약한 단서일 뿐이다.
존대라고 하면 적대적 관계에서 조차 “존경하는 ㅇㅇ의원님….”를 연발하고 빠트리지 않는 국회의원이나 일반인조차 지위 고하나 서열에 따라 높임말을 달리 쓰는 것을 보면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매번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들어야하는 ‘고객’으로서의 나는 늘 당혹스럽다.

반려동물이 천만을 헤아리는 시대다. 대통령조차 오랜 식습관이던 개식용을 공개적으로 거론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그만큼 중시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동물과 애정을 주고받고 교감한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해도 대화와 정서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반려동물을 권장한다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동물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됐다. 어쩌면 배신할 줄 모르고, 타고난 순수성을 더럽히지 않은 채 살다 가는 동물에게서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받는 현상은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생명현상을 감지하지 힘든 식물이나 생명력이 없을 것 같은 사물과도 교감하는 게 분명하다.
애정을 표현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작물의 성장이 빨라지며, 자신 밖에 모르는 사연을 간직한 소장품으로 길흉과 징크스를 점치고 경험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내게는 20세기 초. 정확히는 1918년 생산된 타자기가 있다.
흔하지 않는 포터블 타입으로, 접혀져서 휴대가 용이한 말하자면 출장용 타자기인 셈인데 나는 요즘의 노트북이나 테블릿 P.C의 과거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에서 건너왔는데 이 물건을 판 영국인 청년은 자신의 조부가 소장해왔던 물건이었다고 했다. 그의 조부가 쓰셨던 것인지 아니면 더 윗대에서부터 물려 내려왔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이 물건의 역사와 간직한 이야기를 덤으로 넘겨받은 셈이다.
그 청년으로서는 생면부지의 동양인에게 자기조차도 모르는 선조의 서사를 들려주게 된 것이다.

나는 자주 이 타자기와 대화를 나눈다. 이 물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아득한 과거의 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 그토록 행복할 수가 없다.
“ 중절모에 모직 코트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각진 가죽 가방 – 타자기의 낡았지만 원형이 잘 보존된 가죽 케이스까지 한 세트다- 을 든 채 기차를 기다린다.
이윽고 하얀 증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가 도착한다. 각자 분리되지 않은 무궁화호 좌석 같은 가죽을 감싼 원목 좌석에 앉은 그는 가죽 케이스에 든 타자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케이스를 테이블 삼아 누런 종이를 꽂고 한자한자 타이핑을 한다. 또각또각…. 가끔은 종이를 뽑아 읽어보기도 하면서.
그는 작가일 수도 회계사일 수도 있다. 그의 출장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인간은 말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것 같지만 실은 더 많은 비언어적인 것들로 더 정확히, 숨기고 싶은 자신의 내면까지 드러낸다. 반려견이 눈, 행동, 짖는 소리의 높낮이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용하는 복장과 소지품, 뿌리는 향수, 습관적인 동작, 자주가는 식당과 술집.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리고 관심과 주의를 얼마나 기울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상대방에 관해 훨씬 더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직접 만나지 않고도 누군가의 성향, 그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인테리어의 예를 들어보자면 상업 매장이 대표적이다.
고급 부띠끄 샾일수록 비싼 의류매장일수록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한 넓은 공간에 정작 내다 팔 옷은 몇 벌 걸려 있지 않다. 넓은 면적은 고객이 들어서길 꺼리게 만드는 요소다. 잠시 생각해 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살 물건이 있을까? 혹시 안사고 그냥 나오면 뒷통수가 뜨듯하지는 않을까?’ 매장 주인은 구매능력이 있는 고객을 선별해서 받겠다는 무언의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곳곳에 어쩌면 무관해보이는 값비싼 조명과 소품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를 알아보는 고객의 안목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작 옷은 몇 벌 전시해두지 않는 걸까? 직원의 안내를 꼭 받으란 거다. 고객서비스도 당신이 지불하는 옷값에 포함되어있다는 적혀있지 않은 안내인 셈이다.
그리고 막상 자신에게 맞는 컬러와 사이즈는 직원이 일부러 수고스럽게 스탁된 장소에서 꺼내온다. 그 아무렇지 행동에서 고객은 한층 부담을 느끼게 된다. 구매율은 상승하게 되는 이유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중저가 매장 혹은 중산층이 자주 찾는 아울렛 매장은 넓고 다양한 제품들로 꽉 차 있다. 한 제품에 사이즈별로 컬러별로 비치해 둔다. 누구든지 입을 수 있게 피팅룸도 여러 개 갖춘 곳이 많다.
오히려 공간의 인테리어에는 그다지 신경을 덜 쓰는 것만 같다. 눈이 가는 곳마다 다양한 제품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서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자유롭게 들어오라는 말이다. 가격대가 낮으니 쉽게 손이 가게해서 예정에 없던 쇼핑을 유도하는 거다. 꼭 있어야 하고 필요한 요건에만 포커스를 맞춘 박리다매를 위한 전형적인 인테리어 유형이다.

넓은 매장에 직원을 찾기란 힘들다. 인건비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가판매대에는 늘 가장 저렴하고 혹할만한 제품들로 채워놓기 마련이다. 나 역시 항상 놓치지 않고 먼저 들르는 곳이다.
유혹하는 것이다. 매장 안으로 이끄는 무언의 호객멘트이고 손길인 것이다. 고급매장에는 없는 가격표가 큼지막하게 할인율과 함께 친절하게P.O.P로 적혀있다. 굳이 직원을 찾아 묻지 말라는, 묻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인이 혹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 추구하는 목적을 인테리어와 매장 구성을 통해 중분히 알아듣고 읽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인간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조직간에 비언어적인 수단을 통해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무의식적으로 정확한 의미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공간과도 대화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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