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말을 건넬 때

by 문성훈

늦잠에서 깬 토요일. 아내가 칼국수가 먹고 싶단다. 칼 쓰는 스테이크도 아닌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취향이 촌스러워서인지 아니면 바닷가에서 자란 탓인지 나는 멸치 다시를 낸 칼국수를 좋아한다. 부부의 음식 선호가 비슷한 것도 축복이다. 아내는 성격처럼 식성이 까탈스럽지도 않지만 여러 면에서 나와 식성이 비슷한다. 내가 칼국수면 아내는 수제비를 조금 더 좋아하는 정도다.

언뜻 떠오른 칼국수 집이 두군데다. 부평시장 할머니 칼국수과 망원시장 홍두깨 칼국수. 사무실에 나가 볼 참이어서 망원동으로 가기로 했다.
주차하느라 시장 주변을 배회하다보니 줄서있는 가게들이 눈에 띈다. 대개 젊은 사람들인 걸로 봐서는 카페나 케잌 집이다.
최근들어 망원동 지역에 핫플레이스가 많이 늘었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망리단 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가로수 길’ ‘경리단 길’의 명성에 실려 가고픈 의도가 엿보인다.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노점의 씨앗 호떡이 유혹한다. 청년이 주인이다.
“저것도 먹고 싶네…. 아냐 일단 칼국수부터 먹어보고….” 중얼거리듯 스스로를 달랜다.
식당 앞에 이르렀다.
“아… 당신 현금 가져왔어. 나 차 안에 지갑 놔두고 나왔는데….” 늘 이런 저렴한 식당에 오면 현금으로 계산하는 걸 잘 아는 아내가 먼저 눈치를 챈다.
나 역시 깜빡하고 현금을 챙겨오지 않았다. “카드도 되긴 할거야. 걱정 마”
역시 카드로 계산이 된다.
“이건 내가 쏠께” 아내가 스마트폰 뒷면에 끼워 둔 카드를 꺼낸다.
‘착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현금을 부탁드린다’는 안내문구가 뒷통수에 꽂힌다. 4,500억도 소리 소문없이 삼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 법은 늘 착한 사람들에게만 엄격하고 가혹하다. 내가 현금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니는 이유는 그런 세상에 소심한 레지스탕스질을 하는 것이다.
맛은 변함이 없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시킨다. 4,500원 씩이다. 한그릇에는 다대기를 풀고 다른 그릇은 후추만 뿌린다. 두루 맛을 보고 싶은 우리 부부 나름의 룰이다. 다행히 아직도 맛은 변함이 없다. 국물까지 비웠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그토록 달콤하게 손짓하던 고로께며 부침개, 튀김들이 풀이 죽어있다.
그래도 호떡은 먹을 셈이다. 1,0000원을 더 주고 칼국수 곱빼기를 시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거의 튀기다시피하는 호떡 노점 옆 전봇대에 주인장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다행이다. 나는 씨앗호떡을, 아내는 아이스크림 호떡을 먹고 싶다고 한다. 주문도 하기전에 스마트폰 앱으로 3,500원 입금부터 시킨다. 아내의 호떡이 500원 더 비싸다. 그 정도 호사는 누릴 여유도, 자격도 충분하다.

중고딩처럼 종이컵에 싸준 호떡을 먹으며 걸어간다.
“이거 아이스크림 호떡 에스프레소하고 같이 먹으면 더 맛나겠다”
“그럼 커피 사줄까?”
“응”
주차하느라 돌던 골목에서 봐 둔 가게들을 복기하듯 돌아 본다.
“여기 갈까?”
“음… 인테리어가 별론데…”
아내는 밝고 환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서너군데 카페를 지나치다보니 EDIYA가 보인다. 프랜차이츠 커피숍이다. 알면서도 물어본다. “여긴 안 갈거지?”
“응. 저긴 싫어”
“그럼 저 위쪽으로 더 가보자. 거기가 많아”
앞서 걷던 아내가 오래된 돌타일을 입고 있는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건물 앞에 멈춘다. “여기 괜찮을 것 같지 않아?”
한쪽 구석에 치우친 입구의 세련된 유리 도어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바 카운터와 소품으로 쓴 쇼핑백을 투과하는 조명으로 장식한 미니멀한 벽면이 최근의 트랜드이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페다. “괜찮을 것 같은데….”

주문을 하려는데 직원이 안내를 한다. “먼저 2층에 좌석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시겠습니까?” 1층에는 주문과 대기를 하고, 2층에 좌석이 배치 된 구조다.
카운터와 작업대가 놓인 입구가 골목처럼 좁고 길게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 밖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곧 알게 된다.
다시 입구 맞은 편으로 난 유리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나가 외부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르게 되어있다. 2층 주택형 건물의 구조와 외관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그러다보니 외부 – 내부 – 외부 -내부로 이어지는 독특한 동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얼핏 부자연스럽고 불편할 것만 같은데 1층 마당에 놓인 2인용 테이블들이 이런 느낌을 상쇄해주고 마당을 통해 2층으로 오르는 외부 시멘트 계단이 안과 밖을 오가는 불편을 독특한 경험으로 만들어 준다.

외관과 구조 대부분을 살리면서 포인트가 될 만한 디자인 요소만 가미한 칭찬해주고 싶은 디자인이다.
2층 테이블 대부분을 먼저 온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다. 새로 끼운 게 분명한 큰 창가에 2인용 테이블 한 자리가 비었다. 테이블에 바짝 다가 선 채로 휘이 둘러본다. 내부 역시 화장실을 그대로 쓰고, 아마도 이전부터 방으로 쓰였던 구역의 문짝과 천장을 헐어 마치 뚫린 공간으로 연결된 노출콘크리트 느낌의 빈티지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1층에 있을 아내를 전화로 불러 올리고 나는 다시 주문한 커피를 받으러 1층으로 내려간다. 1층 마당 벽면에 작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 곳은 실제 병원입니다. 전 구역이 금연입니다”
그렇다. 1층 한쪽 귀퉁이만 차지하는 입구, 다시 외부를 통해 층으로 진입하게 만든 이유는 1층의 나머지 면적을 아직까지 소아과 의원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카페는 1층의 일부 그리고 2층 전체인 것이다.
문득 ‘그럼 원장이 카페 주인일까? 아니면 누군가 이런 제안을 해서 카페를 한 걸까?’
궁금증이 인다. 추측컨대 카페 이름이 ‘ㅇㅇㅇ 소아과’인 걸로 봐서는 전자가 유력하다는 혼자만의 판정을 내린다.

커피 한잔 가격은 4,500원이다. 공교롭게도 칼국수 가격과 같다.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음식과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음료의 가격이 전복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왠지 식대보다 식후 디지트 값을 더 치르게 되면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묵은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영업을 하지않는 1층 매장의 주차장에 댄 자동차 때문에 오는 연락이 없다.

아내는 대화에서 아이들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들과 했던 대화를 전한다.
“아이 참 얘기하는데 매너없게 나 얘기 안해”
얘기를 들으면서 폰을 만지작거렸더니 삐치려고 한다.
“아냐. 당신 얘기 듣다보니 생각나서….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 영상통화 시켜주려는 거야”
신호음 몇 전에 녀석의 얼굴이 바로 뜬다. 아내에게 폰을 건네준다. “아들~~~ 엄마야~~~ 오늘 아빠랑……” 그렇잖아도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고 있던 아내의 얼굴에 조명이 들어온다.
미주알 고주알 하더니 끊으려 한다. “나도 줘봐”
“아… 잠깐만 아빠가 바꿔 달라셔…”
‘내가 무슨 전화교환수인가? 전화만 연결해주게…’ 나는 할머니께 자주 전화드리란 당부만 하고 이내 끊는다.
“안녕~~~” 화면 속에 아들은 손을 흔든다. 큰일이다. 장대 같은 녀석이 무슨 손까지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을까. 이건 엄마를 닮은게 분명하다.

“그래서 ‘엄마가 다른 엄마만큼 늙어보이니?’라고 물었더니 ㅇㅇㅇ가 뭐래?” 내가 아들과의 통화로 끊겼던 이야기를 이어준다.
녀석이 그다지 아내가 듣고 싶었던 시원스런 답변을 안했던 모양이다. 내가 대신 해준다.
“아냐. 당신 이뻐. 당신 전혀 안늙어 보여. 녀석이 아직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만…. 당신은 원래 얼굴도 이쁘지만 스타일도 좋잖아. 키도 크고... 남들이 다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 또다시 아내의 얼굴에 조명이 켜진다.
“응. 그렇지? 뭐... 안그래도 밖에 나가면 있잖아. 다들 나보고…..”
나는 아내의 천진난만함이 좋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 때문에 내가 힘을 얻을 때가 많다.
“응. 당신 아주 곱게 늙고 있는 중이야. 아직까지 당신 나이대에 당신만큼 젊고 이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건 사실이고 진심이다.
“내가 올해 쉰 셋이잖아. 그래서….”
“아이쿠 그러세요? 젊어서 좋겠수”
“아. 그렇구나. 당신은 나보다 더 늙었지 호호”

얘기를 나누면서 마주앉은 아내의 사진을 찍는데 자꾸 손을 가린다.
“왜그래 가만 있어봐.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굳어있지 말고…. 당신은 꼭 사진 찍는 걸 의식하면 이런 표정이 되더라” 내가 자기 흉내를 내니 아내가 웃는다.
“내가 그런 표정을 지어? 호호”
“응. 그러니까 그냥 하던대로 자연스럽게 하던 얘기 편하게 하세요. 내가 알아서 찍을 테니….” 여러 장을 찍는다. 사진 속 아내는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

배경으로 잡힌 새것으로 갈아끼우지 않은 작은 창과 그 아래 나무로 짠 라디에이터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박스위에 오래된 선풍기와 빈 술병들이 가지런히 소품으로 놓여있다.

다시 그 쪽을 사진에 담는다. 얼마나 됐을까. 새롭게 카페로 단장하느라 손을 덴 벽과 창 그리고 테이블, 그것들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 멋스럽고 풍요롭게 해주는 오래된 라디에이터 박스처럼 우리는 가족과 주변을 데워주며 살아왔다.
더운 날에는 서로에게 선풍기가 되어줬고, 속상할 때는 술잔을 기울이며 술병을 비워 서로를 달랬다. 그렇게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길렀고 무너지고 헐은 곳은 다시 세우고 채워가며 지금 이 건물처럼, 카페처럼 우리의 삶을 리모델링하며 조금씩 세상과 뒤섞이며 잔잔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올해는 결혼 25주년이 되는 해다. 아내는 지나가듯 은혼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공교롭게도 올해 음력인 선친의 기제사와 결혼기념일이 한 날로 겹쳤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껏 결혼기념일을 딱히 챙기지 않았던 무심한 남편이었으니 은혼식이라고 별다를 게 없긴 했을 것이다.
고맙다. 무뚝뚝하고 무드 잼병인 가난한 남편은 이렇게 혼자만의 지나간 은혼식을 치른다. 고맙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당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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