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공간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은 반만 맞는 얘기다. 누리호가 찾아 간 우주 공간도 우리가 만들 수 없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 환경도 원래 있던 것이다.
우리는 아주 협소한 그리고 필요에 의해 구획된 공간만 조성하고 사는 것에 불과하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어느모로나 맞는 명제인 것 같다.
오래전 사면이 거울로 채워진 박스같은 공간에 사람을 가두면 얼마지나지 않아 정신줄을 놓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교도소 수감자에게 가장 혹독한 형벌이 독방인 것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그래서 아무도 불편함을 못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지하철의 좌석 배치다.
지하철 7호선의 좌석 배치는 창가쪽이 아닌 중앙에 놓여져 등을 맞대고 앉는 구조다. 즉 서서 가는 승객은 창측 벽을 기대게끔 되어있다.
어느 방식이 더 좋으냐 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7호선이 최근에 건설되었고 차량도 신형이니 이런 방식을 도입하게 된 이유를 추정해보는게 디자인적으로 의미 있을 것 같다.
지하철은 조금은 특별한 운송 수단이다. 밀폐된 지하터널 속을 운행한다.
과거 엘리베이터의 발명이 주거공간을 수직으로 확장시켜 허공에 띄웠다면 지하철의 등장은 주거공간을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지하철이 없었다면 지하상가를 비롯해 도심 곳곳을 거미줄처럼 이어주는 생활 영역의 확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개미집처럼 복잡한 미로를 지하철이 오가며 우리를 집에서 직장으로, 도심에서 교외로 끊임없이 실어나른다.
필연적으로 지하철이 오가는 대부분의 구간은 폐쇄된 공간인 터널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버스를 타고가다 실내등이 꺼진 상황과 지하철에서 실내등이 꺼진 상황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어쩌면 인위적으로 만든 가장 불안한 공간 속을 뚫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하철 승강장과 지하철 내부는 무척 밝다.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지하공간에 짧은 시간을 머무는 승객과 달리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기관사의 경우는 인위적 장치나 조도와 상관없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 악영향을 받는다.
기계적이고 반복된 운전 조작, 변화 없고 지루한 터널만을 오가는 반복된 일과, 안전과 관련된 집중력의 요구 무엇보다 좁고 폐쇄된 근무환경으로 인해 기관사들은 다양한 정신적 질환과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래전 같은 동에 살던 아파트 이웃주민 중에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칭송이 자자하던 아빠의 직업이 철도 기관사였다. 평일에 쉬는 날이 가장 많아서 가능했다.
지하철 승강장과 지하철 내부는 지하라는 이점 때문에 냉난방 조절이 용이하다.
내가 어릴적에만 하더라도 은행이 여름 피서의 최적지였다면 지금은 지하철과 관련된 공간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폐쇄된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같은 특정한 시간대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일어나곤 한다.
소매치기나 성추행 같은 사건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신용카드 결제의 활성화와 CCTV는 이런 범죄양상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더구나 개방된 공간이 아닌 폐쇄된 공간, 입구과 출구를 차단하기 쉬운 지하철에서의 범죄행각은 현격하게 줄어들어 최근 10년간 소매치기 건수는 80%가 줄었다고 한다.
가장 급속하게 사라진 직업이 소매치기라는 우스개소리는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많은 사람이 일시에 몰려 밀착해있는 상태에서 카메라도 포착하기 어려운 성추행은 은밀하게 자행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런 상태에서는 고의성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억울한 용의자가 되는 경우도 상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 7호선처럼 좌석을 실내 중앙에 배치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승객을 창가로 양분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데 뭉쳐 있을 수 밖에 없는 인파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의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다.
더구나 좌석에 앉은 사람과 서있는 사람 간에는 상호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서로에게 결례나 공중도덕에 위배되는 행위를 자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이제껏 앉은 승객의 등받이로만 쓰이던 좌우측 창측 벽을 서있는 승객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간의 효율성 확대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게 중앙으로만 몰린 동선을 양쪽으로 분산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차량간의 오가는 출입구는 중앙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분산된 동선은 양측 개방문을 기점으로 다시 중앙 동선으로 수렴되게 좌석배치가 되어있다. 이로써 노약자를 위한 좌석은 별도의 안내문구 없이도 구분되는 것이다.
안내나 지시문구 혹은 좌석 컬러로 구별짓는 방법보다 세련되고 자연스럽다.
이렇듯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고 디자인하므로써 인간의 행동이나 의식을 거부감없이 콘트롤하는 방식은 유용하고 바람직하다. 거기에 과학적인 테이터까지 추출해서 표준화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편리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하철을 타면서 하게 된다.
사상과 이념을 비롯한 인류가 향상시켜 온 모든 문물을 비롯해 자연과학과 기술이 탄생시킨 갖은 물건들이 완벽할 수는 없다.
지하철의 편안한 천으로 된 좌석보다 스텐으로 만들어진 좌석이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실내 먼지와 질병을 일으키는 각종 미생물의 번식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세상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