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유

by 문성훈

땅, 땅, 땅 땅이 늘 문제다. 부자는 땅땅거리며 살고, 가난한 사람들이 통곡할 때도 땅을 친다. 누군가는 땅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땅으로 세상을 호령하는 세상이다.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도, 징기츠칸도 드넓은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수천 병마용의 호위를 받으며 잠든 진시황조차도 마지막에 차지하고 누운 자리는 우리네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땅에 웃고 땅 때문에 운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전쟁도 결국은 땅을 차지하려는 탐욕에서 비롯됐고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들을 봐도 땅의 넓이와 무관하질 않다.

땅은 물리적 넓이와 높이 그리고 부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지금 내가 내 것으로 인정받고 차지한 땅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별, 밟고 있는 흙, 창출되는 부 그리고 누리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과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땅으로 불리는 공간과 장소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돈으로 환산되는 부동산에만 촉각을 곤두세울 뿐이지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관심은 소홀한 것이다.

나 역시 지난 30년 간 누군가의 장소가 될 공간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을 내가 배우고 익힌 현학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 의존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좀더 세련되고 다듬어진 성과를 보인 것은 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결론에 이르러서 아쉽고 부족했던 것은 자금의 문제나 기술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류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공간과 장소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가 부족했던 영향이 크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심지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학교가 정해준 범위,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어야 할 이 문제에 대해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 문제를 언급함에 있어서도 어쩌면 나조차 핵심을 관통하지 못하고 주변만 어루만지고 더듬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잡히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공간 그리고 다분히 관념적이고 개인적일 수 밖에 없는 장소에 관해서는 지극히 무지하면서도 물욕과 주변의 시선에만 의식해 집착만 하고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혼재해서 쓰게 마련인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실은 다른 말이다.
비어있는 상태의 물리적 환경을 의미하는 공간이 ‘사람’을 수용할 때 비로소 ‘장소’가 된다. 사람이 없다면 공간은 공간으로만 존재하지 장소가 될 수 없다.
사람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체이다. 공간에 우리의 기억과 경험 그리고 삶이 스며들 때 비로소 장소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건축과 인테리어는 가치있고 유용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쓰게 될 누군가의 장소로 만드는 유서 깊고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얼마전 오랜만에 캠핑을 다녀왔다. 한국의 캠핑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캠핑장을 잡기가 어려웠다. 수도권 근교일수록 상황은 더 어려웠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캠핑을 시작하던 20년 전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주택보급률은 높아지고 생활 환경은 더 좋아졌는데도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돈다. 고작 열 평도 안되는 맨 땅에 텐트를 치고 일상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아파트로 상징되는 한국의 주거문화와 관련성이 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공간에 대한 소유 개념을 느끼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쿵쾅거려도 이내 인터폰이 울리고, 조리를 위해서 연기를 피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분명히 내 것이지만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조차도 허공에 떠있는 가상의 땅인 경우가 많다. 경계가 불분명한 땅이자 딛고 있지만 실은 떠있는 허공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파트 시세에는 민감해하면서 전통적인 집 개념에서는 멀어져간다. 격벽으로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사생활은 지키면서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얘기하는 자리는 줄어든다. 집안 구석구석에 애틋하고 친밀한 감정이 배여들기가 쉽지 않다. 가족 구성원의 삶이 수렴되는 종착지가 아니라 머물렀다 떠나길 반복하는 기착지로서 역할에 더 충실해지다보니 집보다는 숙소의 의미가 더 부각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의미를 내포한 장소로서는 빈약해지는 것이다.
이런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은 아파트를 둘러싼 환경도 한 몫을 한다. 현관 문을 나서는 순간 복도,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의 공유 면적은 니것 내것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아파트 단지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상가와 빌딩, 공원등의 수많은 인공 구조물들은 자신이 차지한 공간을 삶의 중심이 아닌 그저 주변 부속물이나 소품처럼 찌그러뜨려 작게 만든다.

그런데 비록 기한을 정하고 잠시 머무는 공간이지만 캠핑은 빈 땅에 텐트를 쳐서 공간을 만들고 간단한 가재도구를 들여놓으므로써 손수 자신과 가족이 머무는 삶의 중심지를 가꾸는 원초적인 기쁨을 안겨준다. 머물 곳을 구축하는 경험이 장소가 갖춰야 할 의미를 가지게 해주는 것이다. 이미 획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지어진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차원과는 다른 감흥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과는 다른 공간의 확장성을 경험하게 된다. 주변의 나무와 산 계곡이 자신이 만든 집을 더 풍성하게 받쳐주고 향유해주길 바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별과 계곡에 흐르는 물, 몸에 한층 더 밀착한 땅, 원래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자연이 마치 잊고 지내던 어머니의 품처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향수, 추억, 애착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던 간에 감상에 젖어 든다는 것 자체가 공간을 장소로는 전환시키는 스위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느슨해졌던 가족간의 유대감, 희미해졌던 친밀감이 격벽이 사라진 한 공간 안에서 더 단단해지고 끈끈해지기도 한다.
이렇듯 캠핑은 현대인이 미처 깨닫지 못하던 공간과 장소의 의미를 잠시나마 체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 정체성, 유대감을 높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