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와 덩치

by 문성훈

내 주변에는 참한 신부감이 많다. 이런저런 인연이 얽혀 알게 됐다. 주로 30대이상 40대, 간혹 50대까지도 있는데 아무리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라지만 다들 혼기를 살짝 넘긴 나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훌륭한 재원이고 빠지지않는 인물들이다.

그 중에서 20대초반부터 40대까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여성이 있었다. 직장생활부터 내가 회사를 차린 이후에도 함께 한 직원이었다. 아래로 둘이나 되는 여동생들이 시집을 간 후에도 미혼으로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결혼의사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주변에 남자가 없었냐하면 직간접으로 호감을 보이는 미혼 남성들이 내가 알기에도 한둘이 아니었다. 서른 넘어서는 집안을 통해 선도 자주 보곤 했는데 지속되질 못했다. 이럭저럭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을 때 내가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도무지 모르겠네. 왜 한결같이 마음이 안드는건데? 저번에 선 봤다는 공무원은 얼핏 듣기에도 괜찮은 것 같던데…”
이유는 살짝 머리 숱도 부족한 게 아저씨 같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만나던 모델 핏의 보안회사 직원은 학력이, 또 다른 상대은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매번 이유는 달랐다. 우리 대화가 들렸는지 언니 동생하며 가깝게 지내는 여직원이 안타까운듯 한마디 거들었다. “ㅇ과장님은 눈이 너무 높으세요.”

최고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물, 집안, 학력, 직업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신랑감도 있었다. 학교 후배였다. 유난히 여성의 외모를 따지다가 혼기를 놓친 케이스였다. 무관한 사이기도 해서 술자리를 빌어 이렇게 충고를 했었다.
“너 강남 룸싸롱 술 마시러 다니지? 거기 아가씨들 다 한 공장 제품처럼 다 미인이고 스타일 좋잖아. 너 그 중에서 신부감 구해. 아니면 니 정신머리을 뜯어고치든지 아니면 니 눈을 낮추든가.”

우리는 흔히 눈 높이를 말한다. 여기서의 '높이'란 수준, 격, 지위를 의미하는 말이다.
남자들이 입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에 ‘상방 15도’가 있다. 턱은 당기면서 눈은 정면에서 위로 15도를 향하라고 한다. 한마디로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하란 것인데 주눅들지 말고, 전투의지를 보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반대로 “눈 안깔아?”라며 으름장을 놓는 것은 굴복을 강요하고 승복하라는 말이다. 눈은 기선을 제압하기도, 제압당하기도 하는 위치나 높이를 가늠하는 신체의 기준이 된다.
흔히 외모를 따질 때에도 “그 사람 키는 어떻게 돼?” 라고 묻지 “그 사람 허리 둘레(혹은 몸무게)가 얼마야?” 묻지는 않는다.

이렇듯 우리는 높이에 대해 무심코 많은 말을 하며 살면서도 실상 사물을 대하는데 있어서 높이에 대한 자각은 둔한 편이다.
물건이나 건물을 크기를 가늠할 때 그 경향은 더 두드러지는데 일상에서 주로 쓰이는 단위가 면적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시선은 자주 접하는 TV, 컴퓨터, 책상, 가구등을 마주보는 상태 즉 평면적으로 가늠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에 익숙해있어서다.
TV나 모니터를 볼 때는 정면을, 책상을 볼 때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설계의 기본은 평면이다. 대지나 건물도 평면의 크기 즉 주로 면적으로 산정한다.
그런데 높이는 인간의 감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면적에 비해 크게 따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높이가 일반적인 사람의 키에 적절하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문의 높이, 집과 건물의 층고, 창과 가구의 높이 등은 예외적이지 않으면 거의 일률적으로 맞춰져 있다. 문은 2100mm, 층고는 2300~2500mm , 가구는 1800~2100mm 라는 식이다.

그런데 이보다 조금이라도 낮거나 높으면 누구든지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한다.
일반적인 층고보다 높은 성당이나 교회에 들어서게 되면 대화 톤이 저절로 낮아지고, 옷깃을 여미게되는 것은 정면에 십가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높이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그러니까 20대에 자주 가던 경양식 집 상호가 ‘알타미라’였다. 데이트장소로 각광받았었는데 특별히 돈까스가 맛있어서도 커피 향이 진해서도 아니었다. 상호에 걸맞게 동굴처럼 꾸며진 내부의 층고가 아주 낮아서 키 큰 사람은 수그리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사람은 층고가 낮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따라서 이성간의 대화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그래서 호감도도 올라간다.

그렇다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유럽의 높은 성채안에서 생활하던 왕족과 귀족들은 불안하고 허전한 높고 넓은 강당 같은 침실에서 어떻게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라고 유난히 키가 컸을리 만무하고 감각이 유별났을리는 없다.
비밀은 그들이 사용했던 침대에 있다. 모서리에 장식 기둥을 세우고 페브릭 휘장으로 천장을 만들고 때에 따라서는 모기장처럼 침대 주변을 둘러칠 수 있는 이른바 '공주침대'를 주로 사용했던 것이다.
왕실의 위용을 자랑하고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높은 층고를 유지했지만 가장 원초적인 잠자리에 있어서만은 인간인 그들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전통의 한옥구조에서는 문의 높이가 지금보다 더 낮다. 1800mm정도다.
일반적인 선조들의 키가 더 작았다고도 볼 수 있고, 문살과 창호지로 만든 나무 문짝의 비틀림, 강도를 감안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방으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머리를 숙이게해서 예의를 갖추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시의 문갑, 장등의 키가 한결같이 낮게 만들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들여넣기 수월하게 만든 것이다.

누구나 서 있는 상태에서는 수평보다 약간 낮은 각도를 유지하는 게 편안하다.
눈꺼풀은 위에서 아래로 셔터처럼 내려온다. 속눈썹 또한 위의 것이 차양처럼 더 길게 뻗어있다.
세상사를 바라보는 시선이든, 지식과 교양의 수준이든 조금은 아래로 바라보는 게 평상심을 유지하고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군인처럼 턱을 당기고 상방을 주시하는 자세는 경직되고, 오래 유지할 수도 없다.

대신 눈보다 높은 위치에 뇌가 있지 않은가. 뇌 즉 육체보다 정신의 키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성장기를 지났어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높이의 세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유의 시선이 높아지는 걸 경험한다면 우리의 눈이 자연스럽게 머무는 곳을 더 명확히 그리고 조감하듯 내려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게 분명하다.
눈을 낮추기보다 키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고 삶을 풍요롭고 가치있게 만들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안구는 입체와 원근을 카메라보다 훨씬 잘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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