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 스승이다

by 문성훈

연휴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왠 푸짐한 인상을 지닌 나이 지긋한 강사의 강연이 내 예리한 직관에 포착됐다.
배경인 흑판에는 그의 솜씨인듯한 그림인지 낙서인지 모를 지렁이 비스무레 한 것이 여럿 꿈틀댄다. 아니나 다를까 풍수지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렁이는 산이고 흘려 쓴 한자다. 무슨 박사인가 교수라고 자막에 나왔는데 정확한 전공이나 소속은 적혀있지 않았다.
조금 듣다 시원찮아서 돌리려다 남은 인내심까지 짜내서 마지막 인사말까지 들었다.
왠만하면 내 평소 습관대로 검색을 통해 그 인물에 대해 찾아봤을텐데 하지 않았다. 그만큼 형식과 내용이 형편없었다는 의미다.

세상이 하수상하면 별별 요상한 인물과 사상 심지어 점술가와 예언들이 출몰하는 건 시대를 막론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먼 고려시대에는 신돈이, 최근에는 최태민과 그의 여식이 있었다. 가까운 러시아에서는 왕조를 끊어놓은 라스푸틴이라는 희대의 인물이 있었다.
특히 최태민은 주한미대사관 문서에서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딸 최순실은 아비의 유지를 계승발전시켜 한동안 우리나라를 주무르는 권세를 누렸다.

그래서일까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사람의 임금 왕(王)자를 쓴 손바닥을 TV에서 목격하고, 그가 따르는 도인 코스프레하는 듯한 스승으로 불리는 인물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거론되는 요상한 세상이다.
우주 만물의 이치는 커녕 바로 몇 초 후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사는 범인인 나로서는 그저 막연한 걱정만 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삶과 오랫동안 밀착된 ‘풍수지리’라면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바 있어 아는 바가 있다. 적어도 내가 본 그 강연의 인물보다는 좀 더 설득력과 논리에서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산은 아버지, 바다는 어머니다.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물에게 생존의 터전을 제공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는 산은 아버지의 풍모를 닮았다.
바다는 어머니다. 우리가 익히 배운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태어났다. 무한한 먹거리를 내어주는 것은 물론 깊고 그윽한 품을 내어주기도 하고, 가끔은 따끔한 회초리를 들기도 하는 바다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궁에서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고, 당신의 콩팥으로 태아가 배출하는 오물을 걸러준다.
나는 갯벌을 바다 어머니의 드러난 자궁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갯벌은 자연의 콩팥으로 불리기도 한다.
갯벌은 셀 수 없는 무한한 생명을 품어 키우는 인큐베이터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기도 하고 일용할 양식을 내어주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뭍의 인간들이 배출하는 온갖 오물과 독성은 콩팥인 갯벌이 없다면 걸러낼 수가 없다. 이렇듯 자연은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이자 생명체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음택과 양택을 따지기 전에 이런 상식적이고 과학적이며 일반론적인 접근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의문은 이런 것들이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우거진 숲을 베어내고 넓은 묘자리를 만드는 문화를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과 인간이 층층히 포개져서 사는 고층 아파트 주거문화에서 수맥과 배산임수를 따지는 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갯벌을 메꾸고, 온갖 오물과 쓰레기를 그대로 쏟아내어 갯벌을 죽게 만들면서 풍수지리를 거론하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까?'
21세기에 풍수지리에 달통한 사람이 있다면 지남철 대신에 피켓을 들고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환경론자여야한다.

사회학과 심리학 거기에 공간심리학까지 날로 발전해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고 영향을 데이터화해서 보여주는 세상이다.
굳이 풍수지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도인의 설법을 듣지 않아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점집을 찾지 않아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배운 상식과 기본에만 충실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하수상한 시절에는 우리의 근원적인 불안과 조바심을 먹이로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이 같은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한 괴물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차단하는 용기와 지혜를 먼저 구해야 한다.
오죽하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보다 남의 관상과 사주를 보고 앉았을까. 얼마나 궁색하면 정보통신 발달에 기댄 유튜브에서 세속을 벗어난 도인 흉내를 내며 별풍선이나 잡으려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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