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시민생활

by 문성훈

익준이와 송화의 알사탕 녹이는 장난도, 정원이와 겨울이의 남몰래 하는 사랑도 그리고 준완이와 재학이의 브로맨스도 다 그 곳에서였다. 율재병원의 중정(中庭. courtyard)

중정은 ㄷ 자나 ㅁ 자 구조로 지어진 건물 내부에 들어앉은 정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찰서, 법원만큼이나 가고싶지 않은 곳이 병원이다. 병문안으로 방문을 했어도 왠지모를 가라앉은 기운이 느껴지고 소독약 냄새가 스믈스믈 피어오를 것만 같은 곳이 병원이다.
거기에 링켈을 매달고 엉거주춤 걷는 환자와 수시로 비켜줘야 할 것만 같은 휠체어가 엉겨 있는 곳. 그 곳 어딘가에서는 사랑이 꽃을 피우고 우정이 영글며 사제간의 정이 오간다.

요즘은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중정이란 공간은 한국의 전통적 주거형태에는 없었다.
오히려 해외여행을 다니다보면 유럽 제국시대의 건축물이나 중국 고대 건축양식에서는 자주 마주치게 된다.
아무래도 중정은 적지않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규모가 어느정도 이상일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구조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한옥에서 중정과 비슷한 공간이라면 마당을 들 수 있을텐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중정은 건물의 안 혹은 바깥채와의 사이라도 건물 진입로와 별도로 나뉘어져 있다. 한옥의 마당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바로 만나게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최근들어 중정이 들어선 주택, 중정이 있는 건물들이 늘어난다.
주택 안의 중정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고. 병원이나 큰 건물에 들어선 중정은 크고 활용성도 늘어난다. 주택이든 건물이든 중정이 늘고 각광받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건물 중앙이라는 중정의 위치상 건물 사용자의 이목이 집중되는데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주변의 정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주변을 살피며 몰래하는 사랑의 대화가 가능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여견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중정은 외부에 노출된 공간이다보니 폐쇄된 공간이 주는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난 주의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공기를 흡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골몰하던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옥죄던 문제에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뇌사 상태에 빠진 오랫동안 헤어졌던 부친의 장기 기증을 고민하던 병원직원이 중정에서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송화가 익준이와의 야릇한 이성적 감정을 느끼게 되는 장소도 그곳이다.
이렇듯 중정은 외부와 차단된 밀폐된 내부에서 숨통 역할을 하는 게 분명하다.
바닷속 깊숙히 유영하던 고래가 한번씩 수면에서 물을 뿜어내듯 그렇게 몸 속 공기를 토해내고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우리들 현대인의 상당수는 도심에서 살아간다. 숨막히는 도심 건물 어딘가 문과 창 그리고 벽으로 가둬놓은 공간에서 대부분의 사간을 보낸다.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밖으로 뜷린 공간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향상되면서 세상으로 뚫린 중정 하나를 열어놨다.
SNS로 대표되는 사이버 공간이다. 가늠하기 힘든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내보이기도 하고 그 많은 사람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사이버 중정에 좌판을 펼쳐기도 하고, 메가폰을 들고 소리높여 외치기도 한다.
세상사가 늘 그렇듯 편리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원한다면 자신을 숨기고 남들만 관찰할 수도 있고, 차단과 외면이라는 수단으로 교류와 소통을 제어할 수도 있지만 자칫 세상으로 난 창으로 온갖 쓰레기와 오물을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집안에 내 공간이지만 햇빛을 들이고 신선한 공기가 머무는 외부 공간인 중정이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알고 있거나 설계한 중정을 가진 주택의 주인 대부분은 중정을 가꾸는데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린다. 여러 사람이 쓰는 큰 건물의 중정은 건물의 가치를 올릴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정서에 도움을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중정을 그저 내버려두지 않고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이버 공간 상의 중정이라고 할 수 있는 SNS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올리는 글, 오가는 대화를 보다보면 뒷뜰 대나무 밭에서 혼자 내뱉을 만한 험담이거나 측간에 싸질러 놓는 그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욕설과 다름없는 것들일 때가 많다.
때로는 중정에 심은 대나무 사이에서 솟은 죽순을 보는 것처럼 감동스런 글도 있고, 어디서 날아와 싹을 틔웠는지 모르는 들꽃처럼 앙증맞은 댓글도 보이지만 이런 무자비하고 포악하며 이기적인 사람들이 내다버리듯 던지는 쓰레기들만 쌓인다면 언젠가는 하얀 모래대신 깨진 병조각과 오물들로 가득 찬 해변처럼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사랑의 대화도, 새로운 아이디어나 좋은 생각이 머물 수 없다. 우리가 원하고 꿈꾸는 세상은 신선한 공기가 들락거리고 사람들의 좋은 생각, 밝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중정들이 많아질 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도 고래처럼 숨을 쉬어야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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