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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여정
우리들의 블루스
by
문성훈
Jun 16. 2022
소설과 드라마를 안본다.
한편 이 말은 틀린 말이다. 감동깊게 읽은 소설책이 몇 권 되지 않고 드라마는 완결되어서야 골라 본다. 그래서 역시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들의 블루스'도 그 중 하나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두 종류다. '그랬으면 좋겠어' 와 '그래' 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래'에 해당된다. 내 일천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세상 그림이 꼭 그렇다.
나의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몇가지 있다.
겁많은 아내 탓에 늦은 밤에는 스릴러나 공포 영화를 못본다. 그런데 볼륨을 줄여서라도 보고 싶으면 늘상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저 연기자들 맞은 편에 카메라와 스텝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봐봐"
"저거 다 연기고 분장이라니까."
내가 던진 부메랑이 나를 친다.
하필 아름답거나 극적인 장면에서 이런 잡념이 끼어들면 무척 곤란하다. 게다가 연기자들의 프로필과 걸맞지 않는 배역이거나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대사가 오가면 여지없이 몰입이 깨지곤 한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드라마. 가령 아침드라마로 대표되는 '막장드라마'나 신데렐라가 주연인 드라마는 내게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그럴 때는 밤잠을 설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썼을 작가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나의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다 갖췄다.
"노희경작가가 이번에도 윤여정을 출연시키지 않았네. 또 한소리 듣겠구만...."
"김우빈과 신민아(실제 연인이라)가 연기하기 좀 껄끄러웠겠는걸....."
"푸른 바다속 장면은 대역을 쓴 걸까 아니면 연기자가 물질을 배운 걸까"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꺽꺽거리며 울게 만들고 빙그레 웃음짓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수작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흔치않은 옴니버스 형식인데도 극 전개는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으니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이는 오랜 현장 취재는 물론이고 쪽대본을 용납하지 않는 노희경 작가의 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물론 연출과 스텝, 배우들이 보여준 각고의 노력과 개성넘치는 연기가 없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가 불학무식한 아비였다가 불손한 아들이 됐다.
으레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만나면 도지는 병이 있다.
몇 번을 다시 보고, 되돌려 보고, 멈췄다가 다시 보고.... 집요하게 파고 드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까지 했다. 편집해서 보는 것이다.
가령 특정 등장인물만 추적해서 장면을 짜집기 해서 보고, 사건 전개에 맞춰 짜집기해서 보고, 시간 흐름을 쫒아 다시 재구성해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만 골라서, 다시 보고 싶은 장면만 발췌해서 보기까지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했다.
어느 배우 한 사람을 꼭 찝어 칭찬할 수 없을만큼 백인백색의 개성과 연기를 선보인 드라마인데 아름다운 한옥에도 기둥이 있고 대들보가 있듯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고두심과 김혜자가 있다.
제주출신 고두심의 더할나위 없는 연기는 빼는게 낫겠다.
나는 김혜자를 얘기하고 싶다. 영화 필림이었다면 프레임마다 나눠서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안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뒷통수의 가마까지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스토킹하듯 몇 번을 돌려봤다. 그는 대사 없이도 말을 하고 느릿한 걸음걸이도 연기라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울었다. 옥동삼춘이 쌓는 탑에 내 소원도 빌고, 옥동삼춘이 주저앉으면 내 다리가 풀렸다. 마침내 동석이가 되어 어멍을 부등켜 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인생은 언제나 배신이 기다리고 있고 세상은 서럽기만 하다지만 그런대로 살만하다. 세상이 그랬으면 좋겠고 이 드라마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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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으로 공간을 디자인하고 직관으로 마음을 경영하고싶은 전갈좌 B형. 하기싫은 일은 하기도 전에 알러지가 일어나고, 좋은 글을 쓰고, 강의하며 배우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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