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아이스크림 할인 가게가 하나 더 생겼다. 이전까지 이용하던 가게보다 거리상으로는 좀 더 먼데 길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 언제부터인가 새로 생긴 가게만 이용하게 된다.
평소 자주 이용하던 카페도 길 건너편에 있었다. 길을 안건너도 되는 상가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역시 새로운 카페를 이용하게 됐다. 길건너편 카페에 적립해놓은 포인트가 꽤 되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길을 건너지 않는 상가에 새로운 가게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길 건너편 가게들은 고객 한 사람을 잃지 않아도 됐었다.
길은 소통이자 단절이다. 윗 동네와 아랫동네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길을 경계로 행정구역이 나뉘어지고 생활권이 달라지기도 한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면 소통이고, 차가 다니면 단절이다. 도심에서 차도는 단절이다. 이 단절을 이어주는 것이 건널목이고 육교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존재한다.
나는 주로 공간을 다루지만 시간의 지배를 받고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다. 지나간 시간은 기억으로 존재하고 다가올 시간은 상상으로 가능해진다.
공간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들이 그어져 있다. 국경선이나 건축 경계선처럼 임의의 선일때도 있고 강이나 바다 산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있다. 선으로 나뉘어진 공간을 잇기도 하고 가상의 선을 긋기도 하는 일이 공간디자인이다.
인간관계 역시 작은 점에 불과한 인간과 인간사이에 선을 긋는 작업이고 그 얽히고 설킨 선들이 사회를 이루고 세상이란 면을 만드는 것이다.
높이가 다른 공간을 연결해주는 계단이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사람 사이에도 강이 흐른다.
영화 <코다 2021>은 사랑하는 가족과 세상 사이의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 루비의 이야기다. 강은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다.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루비는 농인인 가족을 세상과 이어주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착한 딸이다. 새벽부터 고기잡이를 돕고 등교해서는 졸음에 겨워하면서도 기꺼워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은 존재한다. 언제나 가족 곁에 머물 수도 없으려니와 항상 그들의 시간과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마침내 루비는 음악적 재능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가족에게는 들려줄 수 없는 음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진학을 앞두고 루비와 가족간에 패인 작은 개울을 건네게 해 준 것도 음악이다.
아빠는 딸의 노래를 감각으로 듣는다. 손짓이 아닌 눈과 입 그리고 목떨림으로 딸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는 이 작은 시도는 가족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농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 전하려 하지 않는 것도 장애다. 루비의 가족은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에 나아가고, 마을 사람들 역시 수화를 익힌다.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던 강이 실은 장애가 아니라 편견이고 사랑과 배려의 결핍이었던 것이다.
온갖 소음과 거짓말, 과장과 진심이 담기지 않은 대화에 조울증과 공황장애를 오갈 지경인 우리도 장애를 겪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다름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다수라 해서 정상이고 소수여서 터부시한다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불필요한 가상의 선을 긋고 건널 수 없는 강을 파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