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사랑은 섹스를 위한 도구에서 비롯되어 그 충족에 따른 책임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대개의 남성은 자신의 매력어필이나 여성편력으로 사랑을 얘기한다.
여성은 섹스에 애정을 결부시킨다. 사랑과 애정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여성의 사랑 레시피에는 친절, 호감, 배려, 보호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두는 사랑의 시작이거나 결과에 불과하다.
사랑이 뭐길래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귀기울이게 하며 탄식하게 할까?
초등생들도 어려운 수학문제에는 손든 아이의 목소리만 들리는데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에는 왁자지껄 반 전체가 시끄워진다.
모두가 전문가인양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의 사랑도 아니고 사랑 그 자체도 아니다.
"사랑에 대해 뭔가 아는 것처럼 말할 때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中에서 / 레이먼드 카버>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사랑은 실재와 부재 사이를 오간다.
해준의 친절이 무의식적인 호감이듯 서래가 느끼는 따뜻함이 사랑은 아니다.
” 한국에서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마음을 중단합니까?” "난 당신의 영원한 미제사건이 되고싶어요" 사랑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음보다는 심장이, 붕괴가 더 사랑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마음을 말할 수 없듯 사랑 또한 말할 수 없고, 범인(대상)을 지목할 수 없는(혹은 없거나) 영원한 미제사건인 것은 아닐까.
사랑은 실증적인 것이 아니다. 비트겐스타인이 분석한 세가지 세계중 '침묵 속에서 지나쳐야 하는 것'에 속한다. 존재하는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우리의 감각과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이상, 마음, 신앙, 아름다움처럼 정의할 수 없다. 우리는 모르기때문에 침묵해야 할 주제에 환상과 광기와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요동치는 심장박동, 감전된 듯한 전율, 뜨거워지는 열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충동이 사랑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느끼는 가장 고귀하고 강렬한 느낌 말이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는 것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뿐인...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라고 하면 나는 <봄날은 간다 / 2001>을 떠올리곤 한다. '마ㆍ침ㆍ내' 혼자가 된 상우가 갈대밭 소리를 채집하는 장면 말이다.
갈대를 희롱하는 바람. 그 바람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소리만 들을 뿐 바람을 알 수 없다. 소리는 바람이 아니다.
내게 있어 박찬욱의 영화는 가스로 부풀린 과자봉지 속 인스턴트 과자 같을 때가 많다. 현란한 색감의 팽팽한 봉지에 손이 가게 되고 과자는 적지만 맛있다. 가스는 봉지를 팽팽하게도 하고 과자의 바삭함도 유지시킨다. 가스가 없으면 눅눅한 과자를 먹게 되는 것이다. 과자와 봉지 둘 다 만족시키는 것은 가스다.
나는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싫어하듯 그의 영화는 썩 내켜하지도 좋아하게 되지도 않는다.
그런 나조차 그의 영화 대부분을 봤으니 대단한 감독임에 분명하다. (그의 입봉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을 개봉 당시에 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젊은 날 나는 우연히 보게 됐다.)
일부러가 아닌데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 돌아서서 '아니오'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한다. 영화를 좀 안다는 사람치고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이제 겨우 50만 관객을 넘겼는데 내 주변은 온통 '헤어질 결심'이다.
혹시 지적 허영보다 더 지독한 감상적 허영 거기에 심리적 허영까지 더해진 것은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영알못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헤어지는 결심'이 박찬욱의 대표작이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동안은 간장과 싸구려 마아가린을 비빈 밥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마아가린이 빠졌다. 간장맛이 괜찮았고 밥도 잘 지어졌다. 지독하게 섬세하고 적당히 담백했으며 무척 영리하게 만든 영화다. 물론 나는 맨밥에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는 걸 좋아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다른 무엇도 아닌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서 사랑해주세요.
'그녀의 미소와 그녀의 생김새와 다정한 말투,
이상할만큼 나와 잘 맞아서,
그리고 확실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날들이 편안해서
그녀를 사랑해.'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사랑하는 이여, 그런 것들은 그 자체로 변할 수 있고,
사랑을 위해 변할 수도 있답니다.
그렇게 생겨난 사랑은 그렇게 사라질 수도 있지요.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연민으로도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의 위로를 오래 받으면 우는 것을 잊게 되고,
우는 것을 잊으면 당신의 사랑 또한 잃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사랑만을 위해서 날 사랑해주세요.
사랑의 영원성으로 당신이 언제까지나 사랑할 수 있도록 .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나는 이 시가 영화 <헤어질 결심>을 모두 말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헤어질 결심'으로 박찬욱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초밥, 파리, 어항, 탕웨이의 피부와 블루컬러 옷, 박해일의 안약과 구두, 현기증, 안개, 파도가 스틸컷으로 저장되었다.(특히 어항이 강렬했다. 흐릿한 물, 그 안에 든 블루 베타 - 관상어가 대부분 그렇지만 수컷이 화려하다. 공격성이 강해 합사를 못하고 번식기엔 암컷을 유인해서 방란시킨 후 쫓아낸다. 공기가 부족한 탁한 물에도 잘 살며 유영을 잘 하지 않는다. 잠자코 있다. -
박찬욱은 어항을 통해 '침묵 속에서 지나쳐야 할 것'인 사랑을 '말해질 수 있는 것'의 세계로 끌어들여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실증이 가능한 감각인식의 차원으로.... )
사랑, 아무도 모른다. 감히 말하려드는 건 생식과 보살핌을 전제로 한 사람들의 허영이거나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