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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04. 2019

도시를 숨쉬게 하는 것은...

암세포가 서서히 사람을 죽이듯 도심에도 거리를 잠식하며 그 생명을 꺼뜨리는 불가사리같은 녀석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둥지를 틀던 2000년 초반만 해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갖추고 다양한 업종으로 군락을 이루던 홍대주변이 마치, 수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다가 이 곳을 찾던 이유인 산호가 사라지며 쓰레기 쌓인 어촌이 되어버린 남태평양 어느 산호섬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홍대라는 섬에 조약돌처럼 반짝이던 독특한 개성과 문화적 다양성이 차츰 석화되어가는 산호군락처럼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오랫동안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던 저로서는 그 가시적인 현상을 새로이 들어서는 상점들의 규모와 업종에서 찾습니다.
홍대가 빛나던 시기 자그마한 반지하 배어나오는 불빛을 쫒아 들여다보면 젊은 청춘들이 악세서리같은 수공예품을 만들거나 찢어진 청바지를 박음질하고 그 또래들이 드나듬직한 작은 공방같은 카페였습니다. 물론 지층을 차지한 것도 희귀음반을 구할 수 있는 레코드숍이거나 주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또는 주방장의 그날 기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아주 소규모가게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누구는 주말에 벼룩시장 난장에 펼칠 물건을 만들거나 선별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떤이는 가게를 찾는 손님을 위해 직접 페이트칠을 하고 거듭된 실패에도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었죠. 간혹 방음도 안된 눅눅한 연습실에서 새어나오는 인디밴드의 날카로운 전자기타음이 이들을 응원하기도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별빛이 되어버렸지만…
산호가 스러져가는 홍대를 잠식했던 최초의 불가사리는 안경점과 대형프랜차이즈의 식음료,커피숍등이었습니다. 마진이 높고,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려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겁니다. 그때만해도 오랫동안 터를 잡고 홍대만의 문화를 형성했던 소위 '선수'들이 상권과 희망의 끈을 놓지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선수'들이 가깝게는 상수역으로 연남동으로…좀 멀리는 영등포로 바리바리 짐을 싸 피난민처럼 쫒기듯 떠난 지금.
홍대거리에는 독버섯처럼 사행성'오락장'과 '인형뽑기'가게가 돋아나고,화려한 무늬의 별모양을 갖춘 마지막 불가사리 '화장품가게'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두 이 산호섬의 마지막 자양분을 뽑아먹고 나면 이내 자리를 옮길 쓰레기더미에 몰린 날파리같은 것들이지요.
이제 홍대거리는 시들고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퇴근무렵 거리에 나서노라면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며 애잔한 눈빛을 보내는 반려동물을 보는 것도 같습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겁니다. 저 역시 그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지켜보다 떠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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