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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통역사 Aug 08. 2020

배정남을 키운 '할매'

몇 년 전 모델 배정남이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주었던 하숙집 할머니와 재회하여 오열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순간 시청률이 27%에 달했다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본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관련 기사를 통해 대략적인 내용을 접했다가, 달린 댓글을 보니 내용이 궁금해져 다시 보기로 방송까지 보게 되었다.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배정남에겐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고, 당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었던 이웃의 할머니가 그를 마치 친손주처럼 돌봐주었다는 이야기였고, 이후 장성한 그가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할머니와 눈물의 재회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과연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만한 내용이었다.


덩달아 나도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 키워질 때의 생각이 났다. 당시 결혼 안 한 작은 고모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으니, 정확히는 고모, 할머니와 함께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다. 그렇지만 돌이켜보건대, 배정남이 하숙집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내 할머니와 곰살맞은 추억거리는 같은 것은 그리 없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다소나마 강렬하게 남아있는 '즐거웠던' 기억이라곤, 말수 없고 조용하던 내가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효자손을 마이크 삼아 '이남이' 라는 가수의 흉내를 내며 한껏 울상을 하고 '울고 싶어라' 라는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시고 뒤로 나자빠지실 만큼 웃으셨던 기억이다. 숨까지 다시 고르셔야 할 정도로 한바탕 웃으셨던 모습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몇 해 전까지 할아버지께서 암을 앓으시다 돌아가셨고, 집에서 항암치료를 하시던 동안은 환자의 안정을 위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지내야 했기에 모두가 한동안 웃음기 없는 나날을 보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 특유의 천진함으로 무장하고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일곱 살은 너무 성숙한 나이였다. 비교적 얌전하고 조용했던 건 그 때문이다.


할머니와 고모는 결벽증이라 할 만큼 완벽한 집안 정리와 청소를 했다. 손이 닿기 어려운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라 할지라도 먼지가 나오는 것은 용납을 못하셨다. 당연하게도 그곳은 사람 사는 곳 같지 않게 늘 깨끗하고 반짝거렸다. 그 뒤에 숨은 노고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지만, 물 위를 우아하게 떠다니는 백조처럼 두 분은 그렇게 사셨다. 그런 두 분에게 '옷'이란 건 조금이라도 구겨지거나 때가 타면 안 되는 일종의 성스러운 무엇이었다.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을 탄다거나 흙장난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의 아이 둘을 맡으셨으니 일감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빨랫감이라도 덜어야 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소극적이었던 나는 그런 분위기 때문에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맘껏 어울리지 못했다. 유일한 놀이라곤 동생과 집안에서 하는 소꿉장난이 전부였다. 그 때문인지 초등학교 1학년 첫 체육시간이 나에겐 너무도 고역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유대를 가져본 적도, 뛰어놀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참 낯설고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가끔씩 집에 놀러 오던 큰 고모는 달랐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순응하기엔 자기 사업을 하는 큰 고모는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독립해서 살다 종종 우리를 찾아오곤 했다. 세심하고 꼼꼼하긴 하지만 표현은 적은 작은 고모와는 달리, 큰 고모는 감탄사나 표현도 크고 적극적이었다. 별것 아닌 일을 했어도 ‘어머 어머, 너 정말 대단하다’와 같은 감탄사를 지나칠 정도로 연발하곤 해서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린 나에게 특별한 일이었다. 큰 고모를 통해 현재 나의 아이를 마음껏 칭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웠고, 작은 고모와 할머니를 통해 가사를 어떻게 해나가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모의 자리가 빈다면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정남이 부모님의 돌봄 없는 시기를 거쳤어도 그렇게 잘 자라났 듯 말이다. 정서적인 허기까지 채워줄 수 있는 보살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런 이들이 주위에 없다고 하더라도 부족한 손길을 메꾸어 줄 좋은 사람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작은 손길 하나도 부모와 아이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올곧게 생활하려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다면,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주위의 도움과 관심을 받는 입장에서 좀 더 열심히 살아보려는 힘과 용기를 내게 된다. 작은 도움도 아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니 서로 조금이나마 주변을 살피어 돕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살아보니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는 곳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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