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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통역사 May 03. 2019

다문화가정 아이가 법정에 선 이유..? by 마음통역사

'특수절도, 강도상해, 보호관찰소, 탄원서, 비행유의성...'

어제 가정법원에서 통역한 단어들이다. 한 다문화가정의 아이가 열 가지도 넘는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으러 온 것이다.

국내에는 전체 인구의 5%가 넘는 다문화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총 인구가 5천만이니 이의 5%면 2백만 명이다. 일례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갔다고 했을 때 20명 중 1명은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중 러시아어를 쓰는 다문화가정의 국적 배경은 러시아를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며, 이들은 강제 이주하였던 고려인의 2,3세 재외 동포들로 국내 노동비자 취득이 가능하여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살고 있다.

이처럼 많은 다문화 가정에는 부모님을 따라 정든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한국이란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제 만났던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주하여 현재는 중학생이 된 아이였다. 내가 경험한 바로,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주하여 사는 아이들은 모국어는 대부분 많이 잊어버리고 현지에서 배운 새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어 발음이 아직까지 어눌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는 직감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놀림과 차별을 받았을까.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가 아직까지 미숙한 아이들 사이에서 유창하지 못한 발음으로 놀림 받았을 것이 뻔했다. 더구나 국내에서 외국인 거주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어 주변에는 같은 러시아어권 국가에서 와서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렇게 함께 범죄를 저지른 친구들은 같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는 또한 한부모가정의 자녀였다. 어머님이 야간까지 교대 근무를 하며 생계에 매달리다 보니 집에는 돌봐줄 어른이 없었다. 이런 환경에 방치되어 있던 외로운 아이는 친구들의 부름을 마다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죄목은 대부분 절도였다. 가정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용돈도 풍족하지 못했고, 무언가 갖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나에게 처럼 있었다. (※ 물론 환경을 탓하며 범죄를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아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찜질방, 사우나 등에서 다른 사람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엔 진짜 안 걸려.' '넌 하기 싫으면 망만 봐.'

친구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이는 망을 보는 것도 죄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어머니는 직장에 어렵게 양해를 구하고 보호자로 참석하셨다. 함께 오신 할머니도 뒤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시며 재판을 듣고 계시다 판사님의 하실 말씀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서툰 한국말로 입을 여셨다.

'우리 아이가 원래는 착합니다. 생계를 꾸리려다 보니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제 어미와 저의 잘못이 큽니다.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는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판사님도 아이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이제 보호관찰을 받아야 하고 청소년 지도 감독관과 일정 기간을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재판은 끝이 났고(추가 재판은 남았지만), 아이는 변호사님과 내게 연신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법원에 제출한 장래 계획서에 아이는 통역사를 장래희망으로 적었다고 한다. 나는 너도 통역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속으로 '너로 인해 나에게도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오늘 먼저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이 있음에도 다문화가정과 그 아이들에 대해 검색하며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다 할 이름을 붙여 말할 순 없지만, 새로운 꿈을 꾸는 중이다.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단지 그것을 이유로 나와 나의 자녀를 차별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황인종이라고 무시한다면 어떨까? 어느 날 갑자기 사별을 하게 된다거나, 이혼을 하게 되어 내 아이가 한부모가정의 자녀가 되고 그 이유로 차별당한다면.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보다 선진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나부터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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