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설득의 심리학(ft.재건축)

- 나의 '어쩌다 다多 주택자' 포지션

by 아로하


나는 간혹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그때 남편이 반대해서 집 못 샀잖아" 라든지,

"이번에 아무래도 집값 하락기 올 것 같아서 내가 집 사는 거 당분간 미루자고 했어" 등의

내집 마련과 관련된 부부간 의견차 사례를

접했었다. 덧붙여 상승기땐 후회와 서로에 대한 원망 섞인 한탄도...



2017년 그날

우리가 마지막으로 둘러본 집은

우리 동네에선 보기 힘든 ‘대기업 브랜드’로 싱크대와 새시(샷시), 화장실 변기, 세면대까지

고급형으로 교체된 물건이었다

이런 걸 재건축 예정 아파트에선 ‘올수리’ 매물이라고 부른다.


<사진 설명> 건물과 다리 습작 (아직도 선 그리기가 잘 안된다-_-;;) 25. 1. 16.

웬만큼 수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30년 이상 아파트는

대부분 일정한 수준에서 수리돼 매물로 나온다.

이 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돈 많이 들인’ 태가 났다.

거실은 비싸기로 소문난 강화마루로 시공되어 있었고,

베란다는 확장 후 바닥 열선 처리까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집주인의 집에 대한 애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7년 전 이사오기 전 평생 살 생각으로

수 천만 원을 들여 하나하나 직접 물건을 보고,

고심끝에 선택했다고 했다.

싱크대 대리석 강판은 매장에서 배달시켜, 직접 시공했다는 그.



그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깔끔한 인상에 정중한 자기소개. 집안 곳곳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예의 있는 태도.


<사진 설명> 리하르트 게르스틀 자화상 , 이 자화상은 화가의 전성기시절 작품으로 당당한 자세와 빛나는 눈빛이 매력적. (비엔나 분리파, 국립박물관 25.1. 13.촬영)


남편보다 두 살이 많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근처 공공기관 사회복지 분야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먼저 소개했다.

집 문만 열어주고 멀뚱멀뚱 지켜보는 일반적인 집주인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의 집 파는 태도를 그대로 학습한 나는 이후,

내놓자마자 단번에 집을 팔거나 세를 놓는 신공을 부리게 됐다.)


“저희가 7년 전 이 집 살 때 굉장히 공을 들였어요.

바닥도 전부 강화마루로 시공했죠.

아이들이 둘 다 아들이라, 단단하고 보기 좋은 마루 시공하면 아무래도 층간 소음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정말 돈 꽤 들였습니다.”


화장실과 주방 타일을 보면, 집주인 취향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는 타일 부분 부분 눈에 띄는 색상을 배치해 독특한 디자인의 타일을 사용했다.

구석구석 자신만의 취향을 담아낸 집.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동네 인테리어 가게에는 없는 (수입)제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유행을 탈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당시 보기에도 유행에 좀 뒤떨어져 보였다.

하지만 평소 워낙 깔끔하게 청소하고 관리해 두어 그 자체로 빛이 났다.

베란다 쪽은 거실과 함께 확장 시공했는데, 역시 강화마루로 연결해 교체되어 있었다.

“베란다 확장하면, 아무래도 이쪽은 춥게 마련인데요.

이 집은 워낙 난방이 잘 되는 굴뚝 옆 동이라 한겨울에도 반팔 입는 집이에요.

확장된 베란다 쪽도 따뜻하니, 추위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까지 한마디 말로 해소시켜 주었다.

비슷한 연령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어서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남편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사회인인 ‘아빠’, ‘남성’, ‘남편’이 추천하는

이 매물에 아니 집주인에 정말 매료되어 있었다.

그때 눈빛은 그랬다.

.

.

집을 다 둘러보고 나오자, 남편이 말했다.

“이 집이라면, 사도 괜찮을 것 같아.”

오래된 아파트는 다시는 절대 안 산다고 소리를 벅벅 지르던 남편은 어딜 간 거지?

“요때다!” 싶었다.


<사진 설명> 최근 세 놓으며 싱크대 수리하는 모습, 아기자기한 타일이 돋보인다 (2024. 12.촬영)
<사진 설명> 강화마루로 매끈한 느낌, 정말 물건 넘쳐나는 예전 우리집 (2020. 여름의 어느날, 이사나오기 직전)



물론, 내 마음에 드는 매물은 따로 있었다.

로열동 로열층이었는데, 이 매물 건너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다.

이 매물과 비슷한 가격대, 초등학교도 적정거리에 가까운 부동산사장님 강력추천 매물...

하지만, 남편 설득이 우선이었다.

이 매물도 도로 근처 동이라는 점만 빼면

로열층에 어린이집과 마트가 가깝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

바로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이 매물 네고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 깎아주시면 바로 계약금 쏠게요.”

200만 원 추가 네고가 가능하다는 답신을 듣자마자

계약금 오백을 입금했다.

.

.

그런데 이렇게 관리 잘 된 매물이 저렴하게 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공을 들여 전체 올수리 시공한 그 집을 말이다.

알고 보니 그는 대출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1년 동안 욕심껏 가격을 불러 내놨지만, 팔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1년 전보다 1억이 올랐지만,

7년간 받은 대출을 하나도 갚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간 이자와 원리금을 갚느라 돈을 하나도 모으지 못했다고

계약서 쓰는 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리모델링 이슈가 있으면서도 이 집보다 5천만 원 더 저렴한

25년 된 근처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했다고 했다.

“7년 동안 재건축을 기다렸고 이제 딱 30년 차가 되었는데도

조합 설립은커녕 안전진단도 통과하지 못했으니...

저는 파는 입장이지만 솔직히 재건축은 어렵다고 봐요.

앞으로는 리모델링이 대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그는 말했다.


“바로 옆 이사 갈 아파트는 30평대로 여기보다 평수도 넓고,

중학교 학군도 여기보다 나아요.

그러면서 5천만 원 정도 세이브 save 할 수 있어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이건 뭐, 니들 아파트 잘못 샀다고 초 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의

아쉬움이 느껴졌기에 그리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이사비용 형식으로 200만 원을 추가 네고해주고,

손수 단지 내 곳곳을 소개해주는 등 남다른 예의 바른 태도가

계약이 끝날 때까지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애정이 담긴 집을 떠나는 이의 작은 미련이라 여기기로 했다.


<사진 설명> 발코니 공장, 호놀룰루 미술관 (2024.10.촬영)

앞서 잠깐 밝힌 대로 이 아파트는 구입 후, 매년 상승해,

2021년 가을, 최고가 10.5~11억을 찍었다.

10억을 넘겼을 때는 매도를 고민하기도 하였으나,


1. 워낙 저렴하게 매매해 부담 없이 들고 갈 수 있음

- 매매 당시 대출금은 모두 상환한 상태로

대출 당시에도 2%대의 저리였음

- 박근혜 정부에서 "빚내서 집 사세요~" 하던 시절

취득세 따위 또한 지불하지 않는 시기/ 추가비용이 거의 없었음


2. 2017년 초반 가격대로 다시 내려올 여지는 없어 보임


3. 이후(2023년 겨울)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서

어쩌다 다주택자가 되면서, 갈아타기 계획 급 변경으로 매도 계획 취소.

(1 주택자의 청약 당첨기는 추후 게재)


4. 이걸 팔고 사고 싶은 물건이 아직은 없음.


그렇다면, 2017년 이 집을 팔고 집주인이 이사한다던 근처

1992년 건축된 고층 30평대 아파트 가격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진 설명> 차이나타운, 호놀룰루 미술관 (2024. 10. 촬영)

아이러니하게도 2017년 4월, 우리 집(지역 대장 28평형)과

약 5천만 원의 가격차를 보였던 이 아파트는

현재 2억~2.5억 가량 격차를 더 벌리며, 당시보다도 크게 오르지 못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매물 가격 분포 또한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긴 시간 리모델링 추진에 난항을 겪었고,

최근 얼어 죽어도 신축 이른바 '얼죽신' 인기로

30년 근처 되어가는 고층의 구축에 대한 관심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재건축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우리 집 역시

재건축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으로,

신축 아파트에 비하면 상승폭이 낮은 편이다.

개인의 예측, 예상이란 것이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부동산 거래를 하며 체감하곤 한다.

집에 대한 애정과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이들도

(정당, 정치적 상황에 따라) 휙휙 변경되는 정부정책과 세계 경제흐름에 따라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예산안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자 했고,

큰 욕심부리지 않되,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과 제안을 충실히 검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거래에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다.

☆☆☆☆☆


하지만, 나 스스로를 크게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말 안 듣기로는 시가 온 가족이 인정한 우리 남편 설득에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ㅎㅎㅎ

그날의 젠틀맨 집주인께 진심 감사드린다.

대출 포비아를 심각하게 앓고 있던 그는

인생 최대 주담대 원리금을 감당하게 되었지만,

충실히 기꺼이 갚아나갔다.

왜냐하면, 이사 후 반년도 되지 않아

새로 이사 간 그 집 시세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자산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사진 설명> 뭉게 구름과 나무 (습작) _하늘을 향하는 나무의 성장 (202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