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다多 주택자' 포지션
대출금리 연 2%의 주담대 레버리지로 누리는 지역 대장 아파트 인프라는 꽤 만족스러웠다.
예상했던 대로, 듣던 대로 대장이었다.
(*레버리지(leverage)=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하여
자기 자본의 이익률을 높임)
결혼 7년 만에 방 3개, 28평 형, 지역 대장,
수도권 역세권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이
부지불식간 양가 집안에 퍼지고, 2년쯤 지났을 때,
수도권 집값이 불장에 들어서자
양가 부모님은 내심 흡족해들 하셨다는 후문이다.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 가운데에는
"아니 거기, OO에 대장아파트를 샀다며? 정말이야?"
"어디 OO 산다며?, 거기 맞아?"
라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마침 당시 그 지역 투기꾼들이 몰려오면서,
여기저기 언론에 오르내리던 지역이 됐다.
'금값 된 OO집값', '준 서울 입지 좋은' ,
'웬만한 서울보다 좋은 인프라', '천지개벽할 OO신도시'.... 등등
수많은 타이틀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타인의 관심은 내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쓸데 없었다.
나 살기가 바쁘고, 아이 키우기에 정신이 없었다.
여기서 초등학교 입학 준비도 해야 하다 보니, 그에 맞는 집안 배치와 방 꾸미기가 급선무였다.
먼저 아이의 공부방과 놀이방을 나누어 일상 속 다양한 몰입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방 3개가 주는 혜택. 보다 넓어진 거실은 가족 간 안전거리도 만들어줬다.
(이때 확실히 부부간 다툼도 줄었던 것 같다ㅎㅎ)
내가 쓰던 작업실(컴퓨터방)은 포기했다.
대신 주방 사이드 쪽 식탁 두는 자리에 서재용 책상을 옮겨두었다.
방이 아닌 구석 책상에 앉아서 책만 봐도 배가 불렀다.
4월 매매 계약을 하자마자 바로 앞 시립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두었었다.
다니던 유치원에 계속 다닐 수 있긴 했지만,
이사한 곳까지 유치원차량 지원이 되질 않았다.
출퇴근길에 픽드롭이 필요해졌다.
그렇게 되면 삶의 질은 화악- 떨어질 터였다.
집을 살때도 주담대 레버리지가 필요하지만, 워킹맘에겐 시간과 공간의 레버리지가 더욱 요구된다.
마침 집 앞에 국공립어린이집이 떡하니 있으니,
나와 아이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신청대기를 걸어두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하필 국공립 ‘시립’이라니....
당시로서는 맞벌이는 당연하고,
2자녀 이상이 아니면, 언감생심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사 직전이던 9월,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학비 전액 무료, 친환경 급식, 다양한 체험프로그램,
유치원과 동급의 누리과정 학습, 우리 동 바로 앞, 걸어서 2분 거리 위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네 엄마들이 나름 선망하던 시립어린이집.
사업자등록증을 가라(가짜서류)로 만들어 신청해 봤다는 전업맘을 만나기도 했다.
운 좋게도 이곳에 입소가 가능했던 내가 생각하는 3가지 이유는,
1. 프리랜서 -> 공공기관 근무자로 이직하면서
‘신뢰로운 경력증명서' 제출 가능해짐.
2. 6살이 되면, 학습에 주안점을 두고 유치원으로 옮겨가는 아이들로 생긴 공석
3. 해당 어린이집과 가장 근거리 동 거주.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등하교 사고 위험이 낮음, 차량지원 필요없음)
어린이집이라고 해도 이미 유치원 생활을 1.5년 정도 해봤기에
누리과정에 큰 차이가 없음을 알고 있었고,
기존에 유치원비용으로 지출하던 35만 원은
미술 과외, 발레 수업, 1:4 소규모 수영강습 등 예체능 교육으로 활용했다.
당시엔 어린이집이 유치원에 비해 교육보다 보육에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부분은 사교육으로 대체하면 되었다.
워킹맘에겐 교육보다 보육 지원이 필요했다.
어린이집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바이올린) 활동비와
방과 후(돌봄 교실 이용후 4시 하교)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시는 돌봄 선생님 월급도 추가됐다.
내 월급의 대부분이 아이 양육과 교육비로 사용되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경력과 다양한 관계가 중단되지 않을 수 있었기에.
나의 월급으로 얻는 레버리지 횩과라고 생각했다.
그해 계약기간 2년을 앞두고 만료 예정이던
(수도권) 시청 업무는
9월 중순 마무리하게 됐다.
더 나은 복지와 연봉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서울시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육아 때문에 선택했던 공공기관 경력은 이후 꽤 유용하게 활용됐다/
관련 이야기는 추후 올려보기로 한다)
인생의 ‘타이밍’이란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건가.
입지와 평수를 상향해 옮긴 내 집,
딸아이의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교육기관 입소,
직업적 상향 이직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체력적으로는 벅찬 하루하루가 이어졌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삶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 좀 능력잔데?’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꽤 괜찮은 엄마인 것 같다'는 뿌듯함,
육아와 커리어 관리를 동시에 잘하고 있다는 '슈퍼우먼이 된 듯한 기분',
심지어 이사하고 반년 만에 아파트 상승곡선을 지켜보며,
‘재테크도 잘하다니? 어쩜 나 왜 이렇게 멋짐?’ ㅎㅎㅎ.
긍정적 성취 경험이 늘어날 수록 온몸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몸은 피로해지고 스트레스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3년 뒤 코로나19와 함께 내 인생 최악의 번아웃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이때만 해도 초등학교를 졸업시키고,
평생 안정적인 내 집에서 걱정 없이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만약에라도 재건축이 되면,
내 나이 50에는 새 아파트에서 살아보겠구나 상상도 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법.
삶이 안정궤도를 순항하면서,
스멀스멀 꿈틀꿈들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의 발현인가?
1. 생리적 욕구, 2. 안전에 대한 욕구, 3.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
4. 자존의 욕구가 채워지자, 나에 대한 탐구욕과
내 안에 잠재된 능력을 더욱 개발하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 매슬로우는 천재다.
나이 마흔이 목전,
마지막이 될 30대의 끝을 멋지게 끝내는 것이 아닌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늘 마음속에 품어왔지만, 시도하지 못했던 것.
누군가에게는 꿈이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루지 못한 소원 같은 것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보자.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레버리지.
금리1%짜리 10년 만기 상품. 이만큼 좋은 대출상품이 또 있을까?”
나를 위한 최저금리 레버리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결정이 서자마자 서류와 면접 준비를 했다.
늘 생각했던 분야였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는 기세 있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역시 글은 기세다.
그리고 한 달 뒤 ‘합격’ 소식을 듣는다.
나이 마흔, 두 번째 스물.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낮에는 회사에서, 저녁에는 대학원에서, 주말엔 과제와 시험공부....
사이사이 육아와 집안일.
정신없이 바빴지만, 팔딱팔딱 살아있다는 느낌이
매일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입학 두 달 만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갑작스럽게 비대면 줌 수업으로 바뀌기도 하고,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가 아니면,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그때 코로나19 덕분에(?) 대학, 대학원 입학을 미루는 신입생들이 늘어나며
진학률이 떨어지자 장학재단에서는 약 2%였던 학비 대출 이자를 1%로 낮췄었다.
(2025.1월 기준 현재는 1.7%다)
1% 이자만 내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나라,
공부 잘하기로는 세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 최고의 교수진과 배움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에만 있는 최고의 레버리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2년 여의 대학원 생활은 지성의 장을 열어준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일하는 분야 - 를 넘어 삶의 구성을 조금 더 확장된 시각으로 보게 했다.
한쪽으로 편향되었던 닫힌 사고의 물길에
작은 돌멩이들이 통. 통. 통 하고 던져졌다.
좁고 얕은 자아에 파동이 일었다.
자칫 게을러질 수 있었던 두 번째 스물,
첫 번째 스물보다 더 악착같이 시간을 쪼개고 쪼개, 레버리지 극대화로 살아냈다.
(아! 아직 논문은 미완성...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