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팔지 않고 이사 나온 이유

- 나의 '어쩌다 다多 주택자' 포지션

by 아로하


“가영엄마, 아니 우리 아들이 학교만 다녀오면 가영이 얘기를 하지 뭐예요.

아무래도 가영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애~ 꺄르르르,

도대체 우리 가영이 매력이 뭐야~~”


“아, 그랬어요? 가영이 좋게 봐줘서 고맙네~ㅎㅎㅎ

요즘 주원이 키가 부쩍 큰 것 같던데, 비결이 뭐예요~

우리 가영이는 키가 늦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사진 설명> 17~20년 거주한 대장아파트 서 내려다본 앞단지 재건축 예정아파트의 철거 직전 풍경 (바로 앞건물_옥상은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옥상이다)


지역 대장 아파트에 살던 시절은

딸아이 6~9세 사이로,

유치~초등 저학년이던 시절이었다.


동네 엄마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가장 활발한 시기.

입학식날 눈인사를 나누고, 오가며 말 한두 마디씩 건네다 보면

어느덧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함께 놀리기도 하고, 친분을 만들어간다.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주로

아이 양육을 위한 정보(식단, 운동, 주말 계획 등),

지역 내 교육(학원 및 학군)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맞벌이 여성은 이와 같은 관계 맺기가 쉽진 않다.

평일낮시간을 낼 수 없는 맞벌이여성들은 이른 퇴근을 할 수 있는 날,

또는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아이친구엄마'(아친엄)들과의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

사전에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게도 꽤 친한 '아친엄' 이웃이 4~5명 정도 됐다.

모두가 소중한 이웃이고 관계였지만,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아친엄'이 있다.

보여지는 것보다 생각하게 하는 것 , 르네 마그리트

주원엄마는 나와 같은 맞벌이 여성으로

남편과 IT계열 회사에 다니고 있는

바로 옆동 거주민이었다.

주원엄마와의 첫 대화는 다른 이웃맘들과

조금 달랐다.

주원이는 반에서도 순하고 착한 아이로

친구들 사이에서

배려 있고 인기가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주원이의 엄마 역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으면서 센스도 넘쳤다.

더 자주 교류하고,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도 있었지만

그녀들과의 대화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볼 때 잠시 아름답다면,

주원엄마와의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매화향 같은 그 무엇이 있었다.


“2016년에 이 집을 3억 5천에 샀어요.

나는 지방 출신인데, 회사가 있는 마포에서 지하철 역하고 가장 가까운 아파트를 보다가

탁 찍은 거지.

지금도 최저가 거래일 거예요.”


“그땐 그냥 아무 생각 없었어요.

출퇴근 가까운 지하철역 주변 아파트를 좋은 가격에 찾아보자는 생각 외엔.”


"부동산사장님하고 안면 트고는 정말 자주 왔고,

집 맘에 들어서 바로 계약했지 뭐, 망설이지 않았어요, "


지역 내 입지가 가장 좋은 아파트를 ‘대장아파트’라고들 부른다.


<사진 설명> 건물 습작 1 (25.1.16.)

수도권에서 대장아파트라고 하면 일단 역세권이다.

요즘 신도시의 경우, 대장은 대부분 신축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른바 1기 신도시라 불리는 계획형 도시 가운데 상당수가 30년 이상 됐다.

연식이 된 신도시나 구도심의 대장아파트는 대부분 30년 이상 연차의 건축물이고,

재건축을 앞두고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살던 지역 대장아파트도 2020년 33년 차를 넘어서고 있었다.

재건축을 통해 1억에 산 소형평수 주공아파트를

40평대 신축아파트로 돌려받은 부모님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거기엔 20년 이상의 인고의 세월이 있었지만)

강동구 신축이 20억을 찍을 무렵

나 또한 생각이 많아졌다.

이곳 자가 주민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는데,

1. 이 아파트가 신축이던 시절부터 30년 이상 이 지역에 살고 있는 7080대 어르신 및 그 자녀들


2. 재건축에 대한 기대와 아이의 교육을 목적으로 건축연차 25년~30년 시기에 진입한 3040 맞벌이 부부들

다수를 구성하고 있었다.


주원엄마처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는

이전에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이 아이들 학원이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주요한 대화 소재거리였다.

평일엔 출퇴근하느라 바빴던 우린 나의 육아휴직과

그녀의 육아시간 활용으로(하루 2시간 이른 퇴근)

좀 더 자주 평일 저녁과 주말에 대화를 나눴다.

한창 아이 교육과 커리어, 재테크에 대한 고민이 깊던 내게,

마치 해결사처럼 툭툭 건네는 그녀의 말속에서 생각의 방향성을 찾았던 듯 싶다.

마침 초등학교 1학년 말 무렵, 2학년까지 이용할 수 있는 돌봄 교실을 마치면

이후 방과 후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나쁘지 않지만 그리 좋지도 않은 중학교 학군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둘 모두 고민하고 있었다.

보통 3학년부터는 학원뺑뺑이를 돌린다고들 하지만,

이 지역은 내가 자란 서울 학군지만큼의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 무렵, 지하철역에서는 조금 멀지만,

나름 지역 내에서 선호되던 중학교를 보내기 위해 몇몇 집들이 이사를 나가고 있었다.

초등아이를 둔 많은 가정의 일반적인 고민인 듯했다.

살던 집은 전세를 놓고 가거나 아예 팔고 갈아타기를 하는 집도 있었다.

마침 해당 중학교 학군의 아파트가 새로운 대장아파트인 신축 브랜드 아파트였기에,

예산만 된다면 주저하지 않았다.


주원엄마 역시 살던 집은 전세를 주고 브랜드아파트로

이사 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맞벌이에 충분히 갈아타기를 해도 되는 상황이었던 주원이네가

굳이 이 집을 팔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 집 언제 재건축될지도 모르는데, 언제까지 갖고 있을 거예요?

갈아타기 해도 될 텐데... 워낙 싸게 사서 수익도 꽤 봤고. 안 파는 이유 있어요?”

“어머, 가영엄마! 이 아파트가 재건축이 안되면 어디가 되겠어요.

여긴 무조건이야 무조건, 그런 확신도 없이 이 집을 끌고 가진 않지,

그리고 이번에 나, 사실 30평인 이 집 팔고 42평짜리 사려고 어제 계약금 입금하고 왔어요.”

“42평? 그 넓은 집을 왜요? 세주고 래미안 간다더니~”


“42평 전세 끼고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전세금으로 래미안 이사 갈 거고.

그거 알아요? 42평은 나중에 재건축되면 25평 신축 2채 받을 수 있는 거”



그녀는 다 계획이 있었다.


소유 평수에 따라 재건축 시 분담금을 낸다고만 생각했지,

돌려받는다거나 2채를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당시 그 지역은 이미 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주변 단지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조금만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주변 단지와 비교해 보면,

그녀와 같은 답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여러 부동산을 다니며, 상담을 받아온 모양이었다.


<사진 설명> 2020년 딸아이 침실


우연처럼 그 시기,

집에서 딸아이 피아노를 가르쳐주시던 피아노선생님께서

30평대에 살고 계시다 42평을 매매해 이사했다며 초대해주셔서 집구경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가 30평대와 42평대 가격차가 급격히 줄어든

하락기 진입을 알리는 하락초입이었던 듯하다.


단지 내 42평은 매물도 찾아볼 수 없는 데다가

별도의 동 하나의 단독 건물이었다. 또 다른 평수는 모두 복도식인 반면,

계단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름 가격대가 높아 젊은 부부가 사는 경우는 없었기에

단지 대형평수 집 내부를 실제로 봤다는 이들은 내 주변에 없었다.

누구 국회의원이 산다더라, 어느 연예인이 살았다더라 하는 소문만 무성했다.

42평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42평형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딸아이를 봐주신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으셨다.

어린이집 교사와 학부모 관계로 만난 우리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았다.

다른 점이라면 선생님은 아들 하나를 대학생까지 키우면서,

늘 딸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피아노 과외를 부탁드렸다.

원래 피아노 전공으로 학원 운영도 하신 경력자이셨고

아이도 워낙 오랫동안 선생님을 따라서

일반 학원비의 2배를 내고 우리 집에 모시게 됐다.

딸아이가 2학년이 되던 그해,

내가 예전 고향이자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아시곤

집에 초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진 설명> 2020년 딸아이 놀이방

“아니 42평은 매물로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매매하시게 된 거예요, 선생님?”


“친한 부동산 사장님께 매물 나오면 꼭 연락 달라고 부탁드린 게 몇 년 전이에요.

운이 좋았어요. 워낙 매물이 없는 평수라.

원래 사시던 분이 이 동네 학교 교장선생님이신데, 30년을 사신 거지.

갑자기 명예퇴직을 하고 경기도쪽으로 이사 가시게 됐대요.

정말 갑작스럽게. 사모님이 갑자기 치매가 오셨다고.....”



평소 매물로 나오지 않는 귀한 집은 다 이유가 있었다.


같은 단지 내 아파트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42평 실내 구조는

여느 신축 아파트 부럽지 않았다.

빛이 잘 드는 남향의 최고 로열동에 주변 인프라와 접근성도 가장 좋은 입지.

따뜻하고 정감 있는 실내 분위기에

오랜 시간 애정으로 관리된 구석구석의 작은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다.

요즘 어딜 가나 보는 똑같은 구조에 똑같은 인테리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구조와는 달랐다.

넓은 거실과 안방은 아늑하고 여유가 느껴졌다.


“정말 너무나 사고 싶었거든요. 근데 매물이 나와야 말이지....

오랫동안 사시던 이전 집주인 분께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덕분에 좋은 집을 구하게 돼서 요즘 너무 행복해요.”


선생님은 가족으로 아들과 남편 외에

장애인 남동생을 오랜 기간 케어하고 있어,

방 3개로는 부족하기도 하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내가 평생 안고 갈 자식 같은 존재라서.

요즘 신축도 좋다지만, 그런 동네 말도 많잖아요.

여기 장애인학교 셔틀버스도 오고, 이미 이웃들이 가족 같아서 다들 배려해 주시고,

돌아가신 모친이 강동구에 집을 하나 물려주셨는데

거긴 그냥 세주고 이 동네에 계속 살려고요.”


“강동구요? 저 이사 가려는 고향 동네가 강동구잖아요.

어디 물려받으신 거예요? 그 근처 저희 친정집도 있는데....”


“아 그랬구나? 삼성하고 현대 건설사가 같이 지은 아파트예요.

25평짜리 작은 평수 하나 물려받았어요. 남동생 하고 같이.

그 평수가 같이 살 수는 없지. 내 가족도 따로 있는데....

거기는 전세 줬어요. 친정집은 어디?”


“우왓! 바로 그 단지예요!!”


“세상에 이런 인연이,,, 근데 그 동네 나도 가봤는데, 다 신축돼서...

동생 때문에 예전에 그 동네 살았었거든요.

거기에도 유명한 장애인학교가 있잖아요.

그때부터 어머니가 거기 주공아파트를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돌아가시면서 물려받은 거고.

여기 오래 살아서 그런가 거긴 정이 안 가요, 나는. ㅎㅎㅎㅎ

그래도 우리 가영이 그 동네 가면 전부 새 아파트로 꾸며진 동네라

깨끗하고 안락해서 학교 다니기 좋겠다! 거기 학군도 좋잖아요!”

세상의 인연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사진 설명>친정 재건축 이후 신축단지 내

주원엄마는 이사 직전 전,

“그래도 여기보단 서울이지, 가영이 좋겠다. 서울 가서 ㅎㅎㅎ”

“근데 가영 엄마, 이 집은 쭈욱~ 팔지 마요, 무조건 돼 재건축”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원엄마는 나의 이사와 아이의 서울 전학을 축하해 줬다.

피아노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가영이는 어딜 가서든 잘할 거예요.

근데 이 집 안 팔고 가는 건 정말 잘한 결정 같아요.

여기 오면 언제든 연락 줘요.”


<사진 설명> 이사 후 서울에서 맞은 코로나19속에서도 잘 적응해 지냈던 딸아이(2020년)


따뜻한 이웃을 두고 멀리 이사를 나온다는 건

연인,가족과의 이별과 비할 데 없이 슬픈 감정을 남긴다.

살던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에게 살던 곳에 대한 애정이

시나브로 쌓이고 쌓였다는 방증이 아닐지.


나의 30대, 그 10년의 나를 키워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배우자도 아닌

함께 한 동네에서 만난 이웃들이었다.

아이친구엄마들!

그렇게 그들은 내 인생의 주요한 챕터 하나를 완성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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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겡끼데스까~~ 조만간 한번 놀러 갈게요!"

<사진 설명> 그때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