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다多 주택자' 포지션
학군지, 어디까지 욕심낼까?
학군지 출신 엄마인 내가 선택한 곳은...
2016년 봄이 되자 아이는 어느덧 유치원 입학을 하게 된다.
이전까지 어린이집 -> 놀이학교 ->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가
6살이 되고, 유치원 2년 차가 되면서,
자연스레 초등학교 입학을 염두에 두게 된다.
이 시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고민하는 ‘학군’에 대한 관심이다.
내후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 동네 초등학교는 갈수록 입학생 수가 줄고 있다고 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초등학교가 선호되는 학교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강남이나 목동과 같은 학군지로의 이사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결혼 7년 차 부부에겐 엄두 못 낼 가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학군지에서 초,중,고를 보낸 나는
내가 보낸 아름답고 행복했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딸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2016년 2월, 프리랜서로 10년 넘게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공공기관으로 이직하게 되면서
삶에 여유가 생기고, 부동산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다.
당시 출퇴근하던 기관의 위치는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였다.
오전에 한바탕 원고를 작성하고 나면,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기획안 작업을 진행했다.
워낙 힘들기로 유명한 직종에서 10년을 일하다 보니
공공기관에서의 원고 작성은 금세 손에 익었다.
업무 시작 6개월이 넘어가자 쉬는 시간에 종종 주변 아파트 시세에 관심을 두게 된다.
아무래도 시청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부동산 관련 풍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같은 부서 초등학생 아빠이던 한 직원은 아예 아파트 하나를 찍어줬다.
“이번에 분양하는 OO 관심 있게 보세요,
나는 지난번에 그 근처 아파트 청약받았는데, 곧 오를 거야, 확실해~"
처음에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내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집 있는데요 뭐"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 더 사면 되지~"
그땐 나를 놀리는 줄 았았다.
하지만 정말 나를 위한 말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몇 년 뒤(내가 기관에서 나와 이직한 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음이 시세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2~3년 만에 값이 두 배가 된 것이다.
수도권 내 시청에 근무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인간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
(학군지...학군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관련 주요 부서가 건물 안에 있으면서,
매달 부동산 시세를 공유하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자료를 모두 공람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일처리 하다 보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그 동네 부동산 시세를 관찰하게 된 시점은
당시 동네 부동산 시세 그래프의 가파른 변동폭을 보이던 때였다.
이전에 수년간 직선 수준에 머무르던 동네 아파트 매매가가
2016년 가을 무렵, 몇달새 1~2억 원가량 오르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점은 내 집이 오름과 동시에
그보다 조금 비싼 아파트(역세권)는 더 큰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억 차이였는데, 갑자기 2억 차 가까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격차가 2억 5천이 넘어가면 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리는 시점이었다.
이는 내 마음에 불쏘시개가 되었다.
늘 출퇴근을 하며, 지켜보던
시청 바로 옆 대단지 30년 구축.
우리 시의 대장아파트.
항상 그곳이 좋아 보였더랬다.
약속이 있어 서울에 나갈 때면, 버스도 유용했지만
지하철 역 바로 옆 그 아파트를 지나갈 일이 많았다.
해당 단지 상가에는 학원뿐 아니라, 스포츠센터, 한 살림(유기농 식품매장) 등이 있었고,
길 하나 건너면, 시립도서관과 대형쇼핑몰도 가까이에 위치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30년 이상 된 구축이지만,
그 동네에서 가장 재건축에 유리하다는 평이 있었고 (대지지분 외),
단지 내 초등학교는 엄마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치맛바람이 유별난 지역으로 꼽혔다.
물론 그 동네 안에서 일어나는 한정적인 이야기였다.
가장 작은 평수가 28평, 가장 큰 평수는 43평으로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작은 평수가 주류인 단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1.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오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고,
2. 단지 내 초등학교 학생 수도 매년 과밀했다.
3. 이 대단지 아파트는 시청 건물과 길 건너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시청 근처라면 다들 알겠지만 상권도 나름 발달되어 있으면서도
세무서, 도서관, 스포츠센터 등 다양한 복지 편의시설들이 몰려있었다.
4. 한눈에 봐도 살기 좋은 슬세권이었다.
5. 단지는 한강까지는 아니어도 서울과 연결된 내천을 끼고 있었는데,
서울시와 인접해 있었기에 서울시의 조성사업에 맞춰 공원화되어가고 있었다.
서울과 이어지는 곳이다 보니, 상당수의 개발계획이 서울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나중에 내가 서울시로 이직해 근무하면서 더욱 체감했던 부분이다.
일부 토지의 경우에는 실제 건물은 서울시 소유인 공공시설이 꽤 있었고,
토지도 서울시 토지가를 자연스럽게 따르는 지역이 있었다.(서울과 인접할수록)
강남 대치나 목동이라는 꽤 알려지고,
실제 대학 합격률로 입증된 학군 지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지만,
아이가 7~8살이 되는 때는 결혼 10년이 채 안 되는 경우들이 많다.
당연히 서울 주요 학군지 아파트 매매는 엄두도 못 내는 게 현실이다.
나의 경우, 내가 유용할 수 있는 최대 자금에 맞춰보기로 했다.
현재 실거주하는 집을 팔고 최대로 낼 수 있는 대출금 내에서 선택의 폭을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월급의 20% 이내로 원리금 및 이사 상환을 계획했기 때문에
대출금 상한도 대략적인 예상치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욕심을 내자면, 앞으로 다른 지역보다 더 오를만한 여지가 있는 곳.
나는 재건축 예정지인 이곳을 눈여겨봤다.
아무래도 이미 신축인 아파트는 가격이 상당했고,
그곳으로 이동하자면 가장 작은 평수의 동, 형 또한 비선호 물건을 선택해야 했다.
장점은 쾌적한 신축빨을 누리는 것과 아이 학습 환경이 조금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거주하던 곳은 누구나 알아주는 학군 지는 아니었기에
신축아파트 쪽 1순위 학군과 재건축 예정의 (구) 학군의 인프라 및 학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지하철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로 나뉘는 입지 차이에 있어서
재건축 예정이던 구축 아파트는 7호선 초역세권인 반면,
신축은 지하철역에서 걸어 10~15분 정도 소요되는 단점이 있었다.
나의 선택은 초역세권 구축 아파트.
매물은 4억 5천~6억 선에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남았다.
남편이었다.
약 7년 정도를 30년 된 구축에 살았기 때문에 신축의 이사를 원하고 있었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대출금 포비아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에
대출액을 늘려서 움직이는 것에 망설이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미 앞서 아파트 매도 과정에서 이익을 봤고,
당시 거주 중이던 집도 매수했던 가격보다 1~1.5억 올라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나은 아파트로 옮기는 것에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 좋던 그날 "일단 가서 보자"라고 했다.
해당 단지 내 부동산 사장님 두 분께 전화드렸다.
종종 찾아뵙던 분들이었다.
남편을 설득할 때 나는 전문가와 함께 일단 현장으로 간다.
와이프 말에 의구심을 갖는 시점에
전문가만큼 도움이 되는 이는 없다.
이 시점에 동네 엄마, 친정 엄마, 시엄마도 도움은 안된다.
“래미안도 좋지만, 지금 보고 있는 재건축 예정단지는
나중에 재건축되면 무조건 이 지역 대장 아파트가 될 거니까요. 지금 사두면 괜찮죠.
두 분 지금 젊은데....
그리고 지금 래미안이 들어온 지 7년 정도 되어서 한창 비쌀 때고....
신축 빨은 10년 지나면 서서히 내려앉아요.”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할 남편을 위해
래미안을 비롯해 당시 인기 높던 신축 2곳을 부동산사장님과 임장 했다.
당연히 조경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깔끔하고 예뻐서 우리 부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가 보던 역세권 구축과는 5천만 원 정도 차이가 났다.
당연히 여기가 더 비쌌다.
문제는 나의 예산을 넘어서는 금액.
다음으로 역세권 구축 5~6집을 쭉 둘러봤다.
점찍어두었던 28평 외에 싸게 나온 30평 대도 고르게 비교하며 둘러봤다.
싸게 내놓은 집은 아무래도 이유가 있었다.
도로가에 있는 동이거나 층이 안 좋거나, 추운 집이었다.
아무리 같은 단지여도 역에서 더 멀거나,
아이들 학교와의 거리도 가격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던 중 남자 집주인이 맞이하는 집에 당도했다.
회사에 이야기를 해두고 잠깐 시간을 냈다고 했다.
대부분 집을 보러 가면, 여성, 엄마, 아내 분들이 나와 계셨는데,
이 집만 유일하게 아이들과 아빠가 우리를 맞이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7년을 살았다는 그 집에 애정이 많은 집주인이었다.
이 분 덕에 결국 우리는 이 단지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다.
2017년 4월의 일이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파트 가격이 끝없이 오르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벼락거지를 탄생시킨 급등기가 찾아온다.
이사 전 25평형 아파트는 2019년까지 1~2억 정도 더 올랐지만,
이사 후 28평형 대단지의 이집은 4~5억 이상 더 오르면서
결정적이었으며 탁월했던 '갈아타기' 역사를 만들어냈다.
우리 가족에게 좋은 물건을 넘기고 떠난 이전 집주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