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인내 자본' 키우기
'감자'라는 별명을 웃어넘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감자밭'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혼부터 살기 시작한 경기도 OO시에서 만난
아이친구엄마들 가운데,
시가에서 가지고 있던 여분의 집을 신혼집으로
상속받아 살게 된 경우가 많았다.
주로 구축 아파트였고,
간혹 신축,
길 건너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전학 왔다는 이유로
몇 달간 '감자'란 별명으로 불린 딸아이.
그나마 '감자' 정도는 귀여운 애칭이라고,
아직 뭘 모르는 아이들의 장난이라고,
판단해 넘긴 일화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웃어넘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는 그 '감자밭'의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십여 년 사이 그 지역에는
KTX역을 비롯해 첫 이케아가 들어서고,
코스트코 대형매장, 롯데프리미엄아웃렛,
대형병원 등이 한꺼번에 물밀려오듯 세워졌다.
신혼생활 중 소소하게 소비할 수 있는 그곳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엄마들의 모임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모여있노라면 이런 말을 종종 들을 수가 있었다.
"여기 넘어서 KTX 바로 옆 쪽 있잖아요.
거기가 바로 우리 아버님이 보상받은 땅이잖아요.
그때 얼마 받으셨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진짜 갑자기 부자가 되셔서 그런가
생활하시는 건 여전히 검소하세요~"
"저희 지금 살고 있는 집, 너무 오래돼서 생활하기 불편한데,
거기가 예전부터 부모님 가지고 계시던 아파트 그대로 주신 거라
나가고 싶다는 말도 못 하겠고....
언제까지 이사 생각은 접고 지내야 할지....."
"그때 래미안 재건축되면서, 42평짜리 하나랑 25평짜리 하나를 받은 거죠.
거기가 용적률이 낮아서 사업성이 좋았대요...."
몽클은커녕 몽벨도 안 입는 수수해 보이던 그 엄마들은
대부분 상속받은 집에 살고 있었다.
물론, 서울 신축 가격만 하겠냐만은
나처럼 갈아타기에 갈아타기를 하고,
대출 받아 매달 이자 내는 상황에서 봤을 때는
여유롭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늘 큰 걱정은 없어 보였다.
특히 딸아이 초1 무렵 급격히 친해진
도연엄마를 처음 봤을 때
아이 학교 때문에 전세로 이사 왔다는 얘기만 듣고
그런가 보다... 했었다.
늦은 나이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자연스레 내 집 마련 시기도 늦어졌나 보다... 했다.
알고 지낸지 얼마 뒤,
"사실은 저희 지금 재개발 중인 시청 옆 뉴타운에 원래 집이 있는데,
아이 학교가 멀어서요....
시어머님 자주 방문하셔서 불편하기도 했었어요 사실...
아무래도 아들 물려준 집이다 보니...."
'아..... 이 집도....'
뉴타운에 집 없는 사람 없고,
재개발 재건축된 아파트 한 채 없는 사람 없고,
토지 보상받은 이들도 종종 마주치는 동네가
바로 이 동네로구나.
'재산 얘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지역에서 가까운 신O뉴타운이란 곳이
계속 공사 중이었는데,
재건축 중인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
또는 그분들의 자녀들
심심치 않게 만나 볼 수 있었다.
"신O에 하나, 요기 역세권에 하나, KTX 역 쪽에 하나"
뭐 이런 식이었다.
ㅎㅎㅎㅎ
대출이자 갚을 일 없는 이들에게
이자 얘기, 갈아타기 얘기는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아서 꺼낼 수 없었고
오직 아이 관련 정보만을 나누곤 했다.
학교 바이올린 수업과 수영센터를 같이 보낸 도연엄마는
예체능 교육에 진심이었는데,
여름엔 아이스크림을 사계절 채소를 말리거나 구운 과자를
가지고 나와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일하느라 바쁜 내게 주변 학원이나 학교 소식을
가장 발 빠르게 알려준 고마운 '아친엄'!
늘 간식 혜택을 받던 우리 모녀는
이사 나오기 직전까지도 그녀의 따뜻한 배려와 도움을 잊을 수 없을 정도다.
이사 온 이곳은
정확하지 않지만 반반의 느낌이다.
자가 반 전세 반.
(그냥 내 느낌. 내 주변부 한정판)
이미 신축밭이 된 이곳은 한창 갈아엎기 하던 감자밭과는 달리
신축이 많이 지어지면서
청약 당첨돼서 들어온 이들이 많은 듯하다.
중고등 동창들 몇몇도 다수가 신혼으로 이 주변에 세 살다가
청약(당시 미분양)으로 들어왔다고들 하고.
오래된 아파트를 물려받아 재건축까지 기다려
새집을 받았다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최근 신축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게 2017년쯤이니
전세 4바퀴(2년씩) 정도 돌면서
매매가뿐만 아니라 전세가 역시 급격히 오르고,
그 사이 오래 이곳에 세 살던 지인들은 많이들 빠져나갔다.
내가 아는 이들은 30후40초 정도 연령대가 주류로
아직은 탄탄하게 자산을 쌓아 올린 세대는 아니다 보니
아이 키우며 다른 곳으로 나간 이들도 있고,
한편 수입이 매년 꾸준히 오르고, 이래저래 잘 모은 가정은
주춤거리던 2023년 하락기 때
적절히 매매하거나,
투자에 성공해 송파 잠실 쪽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여하튼 성실히 일하고 월급 열심히 모아 이룬
내 집 마련이 다수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아니 우리의 공통점은
매달 은행에 갚아야 할 이자와 원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ㅎㅎㅎㅎ
타이밍 상 후순위로 집을 구입할수록
매달의 이자와 원금은 높아져만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딸아이가
"엄마, 애들이 경기도에서 이사 왔다고 '감자'라고 놀려!" 라며
우는 소리했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니들이 감자밭의 비밀을 잘 모르는구나...'
요즘 같은 자본주의 에너지 만땅 시대에
겉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나는 겪어 보고 들어 왔기에.
서울이라고 다 같은 서울은 아니고,
아파트라고 다 같은 아파트는 아니듯.
보이는 게 다가 아니더라.
당신이 위를 향해 보아 왔던 그 무엇이
은행에 저당잡힌 인생, 노예일 수도.
아래로 보고 있는
그 누군가가
실은 감추어진 땅부자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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