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인내 자본' 키우기
경기 → 서울로의 이사와 육아휴직 후 복직을 동시에 진행하고 난 뒤,
사놓은 집 가격도 꽤 오르고, 아이의 학교 적응도 순조로웠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며, 나의 내적 성장을 도모했던 나의 멘털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야 번아웃, 또는 갱년기 초기 단계 진입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이
원인이었겠거니.... 했지만 당시엔 꽤나 고통스러웠다.
4년 전 서울로 이사하게 된 이유는 부동산 투자 같은 재테크 목적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서울집 매매에 전력 질주했을 터였다.
하지만 집을 갈아타는 데 있어서 이번만큼은 신중하고자 했던 이유는
이사의 목적성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고 싶다는 간절함.
내 일도 지키고 평화로운 가정,
다른 말로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남편과 중년기 이후 부부관계도
지속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는 생활.
말 그대로 이상적인 40대의 워라밸을 꿈꾸었다고나 할까.
아이를 잘 키우면서, 욕심껏 직장생활도 유지하기 위해 이사한 것인데,
어쩌다 보니 부동산 투자를 하게 된 꼴이 된 듯도 하다.
하루 앞도, 아니 한 시간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 여정에서
당장 오늘의 행복을 최대한 누리고,
내일의 불행을 미연에 방지해 보고자 고군분투한 삶은
경제적 여유는 확보했지만, 늘 시간부족에 시달리는
지금 여기 마흔넷 중년의 나를 만든 것이다.
단 하루도 어제와 같은 하루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늘 새롭고 발전된 내일의 나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나만 잘 먹고 잘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까지도 정돈되고 안정되고 풍요로워야 했다.
하루하루를 알차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계획과는 달리 내면은 헛헛하고 외로울 때가 많아졌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수없이 채찍질했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사이 나의 마음과 감정은 눌려 지낼 때가 많았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보상은 늘어갔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은 고갈되고 있었다.
"지금 이 일과 가정은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모습이었나?"
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나의 일은, 나의 직장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였으나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환경과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을 괴롭힐수록
사람들의 찬사는 이어졌다.
그리 달갑지 않은 찬사.
진정한 칭찬과 친절이 아닌 시기 질투가 뒤섞인 혼합물 형태의 가식.
경제적으로 안정될수록
나를 둘러싼 주변의 밑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비슷한 영역에 함께 머물러야 하는데, 쟤만 잘 사는 것 같아!'
라는 마음의 소리가 내 귓전까지 따라왔다.
한편으로는 20-30대 바쁘게, 치열하게 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들의 밑낯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겠구나.
나의 일이 성장할수록 당연히 가정에는 소홀해질 수 밖엔 없었다.
인간 관계도 직접적인 관계만 챙기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또 밀러난 관계에 죄책감도 들게 마련이다.
만약 가정에만 충실히 집중했다면,
취미나 문화생활도 여유롭게 즐기며,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만
나의 정체성과 나 자신의 돌봄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불행을 겪었을 것이다.
워라밸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라고 한다.
1970년대 여성들이 활발하게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일과 가정일을 한꺼번에 감당하게 되다 보니, 수많은 어려움이 발생된 것.
정부는 육아휴직과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시작했고
이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유지시키기 위해 사회 전반에 변화를 꽤 한다.
나는 어쩌면 1970년대 영국판
2020년대 한국사회 안착 직전인 워라밸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0년대 이후부터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유부녀로 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일이 주는 성취감과 만족, 가정이 선사하는 안정감과 행복
둘 다를 이미 맛본 이상,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아 진다.
워라밸을 위해 업무 강도가 낮고, 근로 시간이 적은 공공기관으로 이직하기도 했지만,
재밌는 사실은 그런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만족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둘 다를 가질 수는 있지만, 질적(가치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도 난 고군분투한다.
둘 다 가져가면서, 나를 놓지 않고 챙기며
과욕을 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좀 더 비싸고 좋은 집, 찬사가 따르는 직장과 직업.
이들을 모두 갖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고, 가치 있고 없고는 판단할 수 없다.
개개인마다 지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므로.
취향과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시작한 질문의 답은 여기서 찾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