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인내 자본' 키우기
안정적인 일(직업)이란 무엇일까?
프리랜서로 10여 년 일하다가 모 기업에
스카우트 돼 들어가 처음으로 경험한 정규직은
'안정'이라기보다는 '구속'되는 기분이었다.
특별한 계약기간 없이 내가 원한다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국내에서도 안정적인 직종으로 꼽히는
제약회사 홍보실은 꽤나 힘들었다.
8시 출근, 퇴근시간 없음.
연봉은 높은 편이었고,
사내 복지도 좋았지만 퇴근시간 없이 업무가 이어졌다.
내 바로 위 선임은 보통 자정 12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출산휴가를 다녀온 옆 브랜드 팀 여직원은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꾼다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깨어있는 아이 얼굴은 잊히고 있다고 종종 푸념했다
. 이곳은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왔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쯤?
당시 호된 경험을 통해 노예 계약과도 같은 정규직보다는
나의 전문성을 키우면서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직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요즘 기업 문화는 10년 전에 비하면
꽤나 좋아진 편이라고 하니, 옛날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이후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콘텐츠 제작 업무를 이어갔지만,
아이 엄마가 되고 보니,
왜 프리랜서가 불안정한 직종이며,
이것이 얼마나 나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지 체감하게 된다.
프로젝트 성격의 업무는 일이 주는 성취감은 탁월하지만,
업무 강도나 프로젝트 이후 업무 공백은 시간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2016년 모 시청 계약직 작가로 공공기관 채용에 응시한 건
이러한 연유에서다.
계약직이었지만, 정해진 기간이 있다 보니,
프리랜서보다는 보다 안정적이라고 하겠다.
확실히 보장된 퇴근시간과 정해진 페이,
정확한 업무 분장,
여기에서 발생되는 시간적 여유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일에서의 보람이나 성취감은 떨어졌다.
당시엔 아이를 키우면서 무리 없이 경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더 중요했다.
또 사는 거주지 내 기관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저런 도움이 되는 정보와 혜택에도 접근하기 손쉬웠다.
1년 반 정도 지날 무렵, 계약 기간 최대 2년이라는 한계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보다 큰 규모의 조직 내 경력직 공무원 채용에 지원하게 된다.
경력직 공무원은 다니던 기관에서 지켜본
몇몇 특별채용 직원들과 친해지며 관심이 생겼는데,
이미 이전부터 이쪽으로 빠진 선배들이 있었기에 다양한 경로로 채용 절차나 대우를 알게 됐다.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장점은>
1. 일반 공무원과 같이 공무원연금 수급 대상자가 된다는 점 (10년 이상 재직 시)
2. 연봉은 일반행정직공무원보다 한 직급 위로 책정된다는 점 (정년 보장은 아니다 보니)
2. 복지포인트나 휴가기간 리조트 사용 혜택에 있어서 일반공무원과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
내가 실제로 6년 간 경험한 경력직공무원 대우는 위와 같았다.
심지어 나는 육아휴직 1년의 혜택도 누렸으니,
일반 기업에 다닌 것 보다도 만족감이 크기도 했다.
아무래도 남녀 연봉 격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육아 및 돌봄 노동에 대해 존중해 주는 문화는 여러모로 여성이 다니기에 좋은 조건이다.
이 때문인지 경력직 공무원(예전에는 특별채용 또는 계약직공무원으로 불림)으로 들어와,
10년 이상 ~ 20년 이상까지도 다니고 있는 분들을 꽤 만났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통번역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특수전문직이라는 점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바라보는 전문직에 대한 존중은 꽤나 신선했다.
그에 맞는 직급과 연봉, 직무 체계 역시 시스템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직무에서 성과를 내며 일하며 단계적으로 승진도 했다.
8급으로 들어와 5급까지 단 사무관 몇몇 선배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 의지도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일반행정직(이른바 늘공) 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들어온 경력직공무원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나는 공무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공무원직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같은 경력직 채용 절차를 밟아보는 것을 권유하기도 했었다.
<단점은>
1. 이전과 달리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성을 갖고 있다는 점
(5년마다 재채용 절차를 밟아야 함)
2. 일반행정직 공무원들과 허물 수 없는 일정 수준의 소통의 벽이 있다는 점
(성과를 내지 않아도 잘리지 않는 일반직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
3. 일부 작은 지방자치단체 소속일 경우에는 꼰대문화가 강력히 자리하고,
일 떠넘기기의 피해자가 되기 쉬움.
이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물론 이외의 장단점이 더 있지만,
국가직이냐 지방직이냐, 직무 계열에 따른 편차, 지역색, 부서별 케바케 조직문화 등의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공통적인 장단점은 이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난 6년 간 경력직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기관 소속 계약직 작가 경력까지 더하면 8년이라고도 볼 수 있음)
짧게 표현하자면 "시간과 돈은 벌었지만, 열정을 잃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전문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과
공공의 조직에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람된 직무를 맡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 아님을 안다.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간을 공부하고 어렵게 들어오기도 하고,
고난의 시간을 넘어 들어와서도 적응하지 못해 1~2년 차에 그만두고 나가는 일반직들을 수없이 보았다.
특히나 9~8급 공무원들의 경우에는 박봉에 시달리면서,
서울의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매일 밤낮으로 민원업무를 처리하기도 한다.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다 보면 처음 들어올 때의 '열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레거시 미디어의 프리랜서로,
모 기업 정규직 직원의 경험도 해보았지만,
일이 힘들었지, 열정이 사그라든 적은 없었다.
(물론 그땐 젊어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지, 의욕은 비워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공무원으로 전문성 있는 직무를 수행하려면,
'결정권' 즉 '권한'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보수적인 분위기의 조직에서 상하관계가 철저한
계급사회의 축소판을 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밖에서 내가 겪은 업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내 판단과 결정'이 맞는 것 같은데,
윗선에서는 반려되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았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초심 - 일에 대한 의욕과 의지는 차츰 꺾일 수 밖에 없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타의 기업 문화나 자유롭다고 소문난 조직도 다를 바 없다고들 한다.
한국사회 조직문화가 가진 취약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에서 조직 내에서 4~5년 차쯤 되었을 때는
재임용보다는 계약만료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하루 온종일 지옥 같은 순간도 있었고,
아깝고도 아까운 내 젊음이 이곳에 묻히고 있다는 기분에 침울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하게도 조금 연차가 쌓이고,
삶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내 인생에서 공무원으로 공공공의 영역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지는 거다.
내 피땀으로 누군가에게 복지혜택이 돌아가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즐거운 축체의 순간을 누리기도 했다는 사실이
가끔 너무나도 벅차오르게 뿌듯할 때가 있다.
그러한 순간순간들이 있어 많은 경력직공무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시간과 돈은 벌고,
열정은 잃었지만 분명 나는 운이 좋았다.
덧붙여서
해당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1. 아이를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고
2. 청약에 당첨되었을 때 심적 부담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며
3. 아이가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롤모델 엄마로 이미지메이킹을 할 수 있었다. ㅎㅎㅎ
물론 앞으로 나의 새로운 이미지메이킹에 대한
고민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인
'공무원' + '교사' 경험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해 본 결과
실제로 병행이 가능했다!
여성이 몸담기에 차별을 겪는 일이 크게 없다(연봉이나 처우 등)는
몇 가지를 꼽아볼 수 있겠다.
추후에 공무원으로서 겪었던 재밌고도 스펙터클한 에피소드를 나누는 챕터들을
구성해 보고 싶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딱딱한 정보 제공성 글이 아닌,
스토리텔링 스타일의 이야기를 기획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