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r. 다시와 위컴 vs 나영규와 김장우
‘양귀자 작가가 1998년 세 번째로 낸 소설 <모순>은
당시에도 화제에 올랐던 작품이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여류소설가
(당시엔 그렇게들 많이 불렀다. 요즘은 여성작가라는 호명 자체가 차별적 표현이기에 낯설어진 단어)들의
중·장편소설에 매료되어 있을 때 처음 접했었다.
당시 어째서 한국 여성작가들의 소설에 꽂혀있었나를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에서 성인 여성으로 인생의 선례를 찾아 헤맸던 기억이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유튜브나 블로그 검색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다.
독서만이 진실한 지식과 정보의 통로이자 자기 초월의 수단이었다.
그중에서도 양귀자 작가의 <모순>은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난 두 여성,
주인공 안진진에게는 엄마와 이모인 두 여성의 삶이 '결혼'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20대 초중반이던 내게도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한 낭만의 세계만은 아니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와 이모가 그토록이나 혼란스러웠다.
빗물 새는 단칸방에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다가 이모 집을 가면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의 이모가 비단 잠옷을 입고 침실에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누구나 다 그럴 것이었다. 울고 있던 어머니가 무대 뒤로 뛰어가 금방 비단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행복한 또 다른 사람 역할을 연기하는, 일인이역의 연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고나 할 수 있을는지. (중략) 고백하자면,
비단 잠옷 쪽이 어머니이지 않은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혼란스러워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이모의 딸이었다면, 그랬다 해도 가난하고 억센 이모와 부자이면서
부드러운 어머니를 혼동하곤 했었을까.
실제로 나와 동갑인 이모의 딸은 쌍둥이 이모에 대해서 한 번도 혼란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었다. 그 애는 새침한 표정으로 늘 이렇게 말했었다.
저기 니네 어머니 있다....” p18
양귀자의 「모순」에서 제인 오스틴이 겹쳐 보인 이유
안진진은 25세 평범한 직장여성으로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연애 중이다.
단순한 양다리라기보다는 진지하게 결혼을 전제로 두 남자를 저울질 중이다.
그녀의 저울질에는 쌍둥이 엄마&이모의 결혼생활이 양극단을 오가는 나침 바늘이 되곤 한다.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라치면, 여지없이 완전히 다른 결혼생활을 하는 두 여성을 떠올린다.
“나는 두 남자를 놓고 종종 화살표 긋기를 해본다. 먼저 조심스럽게 나영규한테 화살표를 보내본다. 그러다 움찔 놀라 화살표를 북북 지워 버린다. 김장우 대신 차선책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김장우를 향해 화살표를 주욱 긋는다. 그렇다면 김장우와 내가 비슷한 수준의 인생들이란 말인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나는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p92
“이모는 남편 복에 이어 자식복까지 넘치도록 받은 사람이었다.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수도 없이 들은 말, 남편 복 없는 여자는 자식복도 없다는 그 말은 이모 때문에 내게 진리로 각인되었었다. 어머니는 남편에 이어 자식에서까지 이모에게 밀리고 있었다. p129
물론, 이 소설은 두 여성의 결혼생활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각자의 인생을 관통하는 자녀 양육과 경제 활동, 가족관계를 아우르며,
주인공 ‘안진진’의 시선에서 바라본 '행불행, 그리고 행복과 불행의 이면,
풍요와 가난의 모순을 들춰낸다. 하지만 역시 이들 여성의 인생을 가른 결정적 계기는 '결혼'인 것이다.
때문에 완독 후, 영국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후 200년 넘도록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읽히는 이유 = <모순>이 갖는 대중성
제인 오스틴은 1780~1800년대 초 여성들의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결혼'이 주요한 인생의 목표이자 결실인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냈다.
대부분의 작품의 주요 서사는 요즘으로 말하면
'호감(썸) 관계의 남녀가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심리전, 그리고 집안(계층) 간 줄다리기 과정'이다.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연애소설이 어째서 문학사에 길이 남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고,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가 셰익스피어 다음인 최고의 작가로(BBC 설문조사) 꼽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 1811>, <오만과 편견, 1813>, <맨스필드 파크, 1814> 등
주요작을 읽어본다면, 이들 작품을 단순 연애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연인관계에서의 다양한 심리변화를 이전에는 없던 섬세한 시선으로 리얼하게 묘사했다는 점,
인간의 치명적 실수를 만들어내는 - '편견', '오만', '몰이해', '오해' , '이기심' 등을
서사적으로 풀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는 대중적 매력도 갖췄다.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스토리 전개는
역사나 전쟁을 주제로 한 당시 소설과는 확연한 차이를 갖는다.
결혼 적령기에 읽으면 낭만 로맨스로,
이후의 삶에서는 인간의 욕망과 허례, 비도덕성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로 읽힌다.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영화와 연극무대에서 리메이크되며 사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몇 안 되는 문학 작품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약 30년 전 쓰인 양귀자의 <모순> 또한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역주행 인기를 얻으며 베스트셀러에 다시 오르고,
최근 132쇄까지 찍어냈다는 소식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결혼을 앞둔 주인공인 20대 안진진,
당시로서는 결혼적령기이자 인생의 주요한 선택의 시기를 맞이한 청춘인 그녀에게
앞선 세대 여성의 삶(엄마와 이모의 삶)이란 깊이 관찰하고,
자신의 삶과 대립해 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역사다.
이모부를 떠올리게 하는 ‘열차표처럼 준비된 남자’인 나영규와
아빠와 어딘지 닮은 ‘안개처럼 떠도는 남자’ 김장우 사이에서
안진진이 갈등하는 사이,
부잣집 사모님으로 부러운 것 하나 없어 보이던 이모는
오히려 결핍이 없기에 ‘무덤 속 같은 평온’의 삶을 못 견디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한편, 야속하기만 한 세상에서 버는 족족 남편과 자식이 빼 가는
‘뺄셈에 능숙한 사람’p39인 엄마는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치매와 중풍으로 인해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치 못한 채 돌아오면서
‘모순적 이게도’ 생의 활력을 얻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어머니의 불가사의한 활력,
이것도 앞으로 내가 유심히 살펴야 할 생의 비밀이다.” p58
어째서 안진진은 이모의 마지막 인사를 뒤로하고 ‘나영규’를 택했나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더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 무엇보다 안진진의 가슴을 뛰게 하고
설레게 한 유일한 남자 ‘김장우’가 아닌
치명적 결함이 없어 그것이 문제인,
단정함을 넘어선 반듯하게 자로 잰 듯 정확하고 정답과도 같은 남자 ‘나영규’의
손을 잡고 4월의 신부가 되기로 한 것일까?
만약 내가 안진진이었다면,
이모의 죽음으로 하여금
더욱 확고하게 사랑의 마음을 굳혀 김장우의 손을 잡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 하지만 삶은 단순하지가 않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삶이 아니다. 삶은 모순과도 같다.
안진진은 소설 말미에 마지막 한 마디로 그 이유를 남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273)
안진진은 자신에게 없던 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나영규로부터 그것을 구하기로 한다.
이모는 견디지 못한 삶의 방식이지만, 이 모순과도 같은 결정을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 노라 한다.
스스로도 ‘우이독경’이라 표현한 결심이다.
이쯤에서 남들이 ‘정답’이라고들 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나의 경우를 되돌아본다.
대학 졸업 무렵 교수님이 추천한 안정적인 회사를 거절하고,
불안정하며 어쩌면 글 조각 하나
남기지 못할지도 모를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업을 택했던 걸까?
키 190cm에 잘 생기고, 연봉 높은 펀드매니저
– 여의도에 30평대 자가 아파트가 있다던 그 남자의 애프터를 거절하고,
어쩜 나는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을까?
이제 와 굳이 돌이켜보자면,
그 배경엔 ‘남들과는 다른 나’라는 자기인식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일과 사랑이라는 '기준'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실패하는 도전에
나는 성공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잘 맞는 사람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진진은
엄마와도, 이모와도 다른 존재이다.
제인 오스틴의 명작인 ‘오만과 편견’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시
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물이다.
명망 있는 가문의 젠틀한 남성이라도
오만하고 독선적이라면,
또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그렇다면 청혼을 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여성들이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결혼 뿐이었다는 걸 떠올려 볼 때,
엘리자베스의 주도적며 비판적 사고를
알아차릴 수 있으며,
여성에게도 선택권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주목해 볼 만하다.
안진진도 두 남자를 이리저리 저울질하며,
‘자신만의’ 선택하려 애썼다는 점에서 – 남자들을 비교해 보는 기준을 세울 때
‘자신의 감정 변화를 중심에 두고’ - 그녀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이모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상당히 객관적(때론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이라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기이한 일이었지만, 그래 주는(약속을 깬 여자친구에게 화난 기색을 보이는)
나영규 때문에 나는 갑자기 편안해졌다.
편안해지니까 불현듯 묻혀 있던 설움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마음 놓고 울었다. 흑흑 흐느껴 가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울었다.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김장우 앞에서는 꼿꼿하기만 했는데,
자꾸 꼿꼿해지고 싶었는데,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p241-242
자신이 가장 편안해질 수 있는 남자, 나영규.
결국 안진진 역시 사실은 다수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밑낯을 드러내도 두렵지 않은 ‘믿을만한’ 남자를 선택한 꼴이다.
그의 일관된 고백이 앞으로도 진실할 것이라 믿는 것이다.
안진진이 나영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모부와 비슷한 남자를 선택한 안진진이 결국
이모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안진진은 안진진이다.
그녀의 인생은 엄마와도 이모와도 다른 생이다.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 인생임을 알며, 실수는 반복되는 것임을 일찍 깨달은 안진진인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