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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보기 Dec 10. 2024

[회귀본능]  1.  왜 다시 서울.  강동구였나.

- 나의 '어쩌다 부동산 투자'談

 

  “띠링” 오늘도 고용노동부에서 보낸 채용정보 문자가 오전시간을 알린다.




   연봉 5000만 원(협의 가능), 광고 ‧ 홍보 전문가 모집,

주 5일 근무에 9시~18시 근무, 야근 압박 없음.

 딱 내가 찾던 구인 요건.

하지만, 서울 마포구 위치란 문구에 휴대폰 오른쪽 버튼을 눌러 화면을 닫는다.

서울 안에서도 경기도와 인접한 서울 끝자락.

서울 중심부로 나가려면 1시간 전에는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이곳.

오늘도 구직사이트를 뒤적이다 허탕을 친 나는 ‘이럴 줄 알았으면,

20년 만에 고향 동네로 돌아오기로 한 결심 전에 여러모로 더 따져보고,

심사숙고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 전 남편과 결혼 십여 년 만에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 이후 하와이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신혼 때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몸을 싣자마자

8시간의 비행경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일하랴 육아하랴, 그동안 못 봤던 책도 영화도 봐야지’하며,

우연히 튼 일본영화 <굿바이>는 남자 주인공 ‘다이고’의 귀향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도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갑작스런 악단의 해체로 고향동네 ‘코바야시’로 돌아오게 된

 주인공의 상황은 어쩐지 비슷한 내 처지를 떠올리게 했다.

첼로만 연주할 줄 아는 주인공은 몇날며칠 구직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강물에 떠내려 와 죽은 연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다이고’.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며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심지어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물음을 던지며,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의 품에서 죽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대사로 주인공과 미묘하게 닮은 상황을 묘사한다.

착잡해지는 건 영화 속 주인공만은 아니다.


4년 전 나는 그때, 어째서 고향을 찾아야만 했던 걸까?


 

십여 년이 지났지만, 하와이는 놀랄 정도로 그대로였다.

해외 석학들, 노벨 경제학 수상자까지도 단기간의 경제발전에 경이를 표하는 나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빌딩에 가려진 도심의 하늘도 올려다볼 틈이 없었지….’

 급격히 변화한 나라에서 날라 온 내게 전혀 달라지지 않아 보이는

하와이의 모습은 오히려 안온함을 주었다.

파란 캔버스처럼 펼쳐진 높고 광활한 하늘, 그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가까이에서 보이는 구름,

진녹색의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와 발걸음이 닿는 곳곳, 반얀나무의 웅장함.

숙소 도착과 함께 휴식의 의무감마저 들게 했다.

자유로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어우러지는 낯선 편안함은

달콤한 휴식을 기대케 했다.


  

하와이여행을 먼저 제안한 건 남편이었다.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4년 전에 왔어야 할 하와이였다.

남편 직장업무와 관련된 국제학회가 예정되어 있었던 찰나,

결혼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신혼여행 당시 결혼 10주년에 꼭 다시 오자던 젊고 예뻤던 우리 부부의 꿈이 곧 이루어질 터였다.

하지만 세상만사,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더니.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그렇게 국제학회 무산과 함께 우리의 하와이여행도 꿈처럼 사라졌었다.




  새로운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오래 꿈꿨던 여행만을 무산시킨 게 아니었다.

모든 교육시설은 감염자가 나올 때마다 휴교에 들어갔다.

괜찮아졌다 싶으면, 다시 확진자가 나왔다.

 아이는 예측하지 못하게 갑자기 일찍 집에 오는 일이 잦아졌고,

 며칠씩 학교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직장 내에서 버티기가 가장 힘들다는 초등 1학년 육아는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돌이켜보면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들어맞는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기력, 우울감, 만성피로, 식욕부진….’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40대에 막 접어드는 나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건강하고 자유롭던 20,30대의 선택들을 곱씹는 시기여서,

 정신건강이 말이 아니었다.

직장 내 업무도 나름 열심히 잘하고 있으면서도,

언제 그만두어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지냈다.



스스로 ‘아이엄마는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기도 했다.

자신감을 잃어가며 모든 것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 퍼진, 얼마나 위험한지도 판명되지 않았지만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공포감을 확산시킨 바이러스는 마음속까지 침투해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육아휴직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해는 결혼 10주년, 하와이여행을 떠났어야할 마흔의 가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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