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근본, 바른 삶으로 다시 정의하다

효(孝)(1)

by 바루다

오늘날 우리는 효의 근본이 무엇인지 논해보자. 우리가 효행을 하여 관공서에서 효행상을 받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는 병들어 누워있고 자식이 몇십 년을 병시중을 해야 효행상을 받는다. 옛날에 이렇다 하니까 그냥 넘어가서 과거처럼 하는 효자, 효녀가 되면 안 되고, 이제 우리가 지식인이니까 그 안을 한번 들여다보고 효를 이제는 바르게 풀 때이다. 그런데 우리가 효행상을 받을 정도면 아무리 못해도 이삼십 년은 굉장히 부모님한테 잘하는 모습이 보이고 소문이 나야 된다.


그러면 부모님은 오랫동안 아파서 대소변을 받아낼 만큼 아프고 어려운 환경이 되어야 된다. 이걸 우리가 분별을 해보면 부모님이 아픈 이유는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이 병시중을 들어야 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그 자식이 지금 잘못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식을 어렵게 해서 알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착한 것을 효라고 정해서 내려오고 있다. 자식이 착하니까 부모님은 어렵다고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주물러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해드리고 잠자리도 들여다봐 드리고 신경 써주며 마음을 다하니까 이것을 지금 효도를 한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 보살펴 드리는 것은 괜찮지만 3년이 지나도 그러고 있다면 이 부모님은 자식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더욱더 큰 고통을 받아 가면서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걸 전부다 수발을 들었다고 효행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 자식의 인생은 어떻게 된 것인가? 부모와 자식의 인생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부모는 계속 아프고 자식은 그 부모의 손발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보내 버렸다. 이것을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이것은 분명히 효가 아닌데 이걸 효라고 지금 명시되어 있다. 우리 민족은 아직까지 이걸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유교 사상이나 역사에서 나왔던 글들이 그런 것이 효가 맞는다고 적어 놓고 분별을 깊이 하지 않은 데에서 그대로 효라고 그냥 따라만 가고 있다. 그러면 자식이 그렇게 극진한 효행을 하는데 그 집안은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 계속 끝까지 간단 말인가? 이런 것을 분석을 해서 우리 삶을 바로 잡지를 않았다. 사회의 관점이 아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 놓고 말할 때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이 자기 병시중 들고 계속 살게 하는 것이 부모님이 바라는 것일까? 자식을 낳아 키웠는데 부모가 계속 아플 테니까 그 수발들면 이것이 최고의 자식으로 봐주려고 그렇게 이끌어가는 부모가 있는가? 자식이 빛나고 존경을 받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바르게 풀면 바르게 분별이 난다. 그런데 그걸 보고 효도한다고 말하고 자기 자식만 한 사람이 없다고 분별을 잘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을 그것이 바른 삶이라고 오늘의 세상에도 교과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랄 때까지 그 논리로 다 배워왔다. 그러니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은 없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교과서도 다시 만들어야 된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바른 분별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효의 근본을 우리가 먼저 세우면 효란 부모님을 아주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부모님을 진정 즐겁게 해 드리는 방법이 무엇인가? 자식이 동물적인 인간이 아니고 사람이 되어 주는 것, 그리고 사람이 사는 길을 바르게 살아주는 것, 이것이 부모가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조금만 안다면 자식이 거듭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을 해서 자기 인생을 아주 바르게 살아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한테 바라는 바램이다. 이것이 최고의 부자 관계이고 이게 근본이라는 말이다. 이제는 이것을 근본으로 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수억 명의 세상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물어도 어깃장으로 답변하지 않고서는 그게 아니라고 할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이것은 대자연의 법도이고 만인이 찬성하고 공감하는 이것이 법이다. 정도는 논리가 아니고 진리만 있을 뿐이다. 그러면 효의 근본은 자식이 바르게 사람으로 성장해 주는 것만이 효의 근본이다.


이러한 효의 근본을 세워 놓고 풀어보면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는 데는 아주 고통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힘도 많이 드는데도 이런 것을 한다. 그러면 자식이 부모가 어렵게 하는 것을 보고 하지 말라고 할 것인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인가? 그러면 어렵게 자식을 키우고 이끌고 하시는데 그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방법은 자신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일 때 부모님은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 부모가 밥을 굶어도 기쁘고 몸이 아파도 좋고 기쁘면 회복된다.


이렇게 부모의 고통을 삼키며 자신이 바르게 성장을 해 줄 때, 이것만이 효가 된다. 그런데 이때까지 우리는 부모님이 아프고 나면 어깨 주물러주고, 병원 데리고 가주고, 용돈 주고, 이런 것을 하면 효인 줄 알았다. 우리가 사람으로 바르게 살지 않으면 부모님이 바르게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아파지든지 어려워진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자식이 바르게 성장이 되지 않았다면 부모가 몸으로 때우더라도 어렵게 교과서 짓이라도 해서 자식이 바로 되게 만들기 위해서 부모가 그런 길로 가게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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