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2)
대자연의 근본 법칙이다. 자식이 큰 기운을 가지고 태어날수록 바르게 자라지 못하면 부모의 고통도 커진다. 그런데 부모님의 이러한 노력을 먹고 부모님이 아파하면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왜 이렇게 몸이 안 좋으신지 자식은 화두로 삼아 공부를 해야 된다. 지금 주물러 드리는 것은 아픈 부모를 돕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아픔을 자식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거보다 더 아픔이 올 것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부모님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근본적인 연구를 하지 않아서 이런 기초적인 근본의 원리조차 모른다. 기초가 나와야 그다음부터 우리는 분별을 할 수가 있어져서 그 분별한 대로 따라가게 된다. 지금 이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농경 시대의 유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는 효라는 것도 그 시대의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을 인생에 가장 큰 일로 여기는 60년을 사는 시절의 것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고 그때와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다르게 사는 지식인들인데 효에 대한 것은 무슨 경전처럼 그대로다.
마치 성인이 아이 옷을 입으려고 애쓰는 우스운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우스운 옷을 입고 절뚝거리며 스스로의 모순을 끌고 갈 것인가? 우리가 갖춘 지식은 누군가의 논리이지 진리가 아니다. 우리는 오늘의 삶을 살고 있으므로 오늘에 맞는 것을 배우고 행동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인성교육이다. 사회를 알고 사람을 알아야 상대를 위할 수 있고 우리의 삶은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열심히 하는 것이고 사람을 상대하는 시대에는 바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근데 뿌리 민족이고 인류의 지도자 민족이 이런 기초가 없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상에 어떠한 법도가 없는 것이다. 뿌리가 법도를 안 가지고 있으면, 즉 뿌리에서 백신이 안 올라가면 나무의 몸통과 가지는 자기 논리에 빠져서 진리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뿌리 민족이기 때문에 이 민족이 기초를 잡아줘야만 된다. 그래서 이 백신을 올려야만 인류는 그것이 법이 된다.
그런데 지금 뿌리의 법이 없다. 지금 우리는 유교 사상이고, 서양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쓰면서 여기서 잘못된 것들이 다 드러나고 있는데 우리가 그걸 바르게 풀 생각은 안 하고 계속 그렇게 하라고 장려한다. 이런 것들을 경험하며 공부로 삼으라고 자료를 줬는데 공부를 안 하고 그것을 믿고 따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지금의 선지식인이다. 어떠한 모순이 나와도 그대로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건 선지식인이 아니다.
책을 읽어주고 쓰여있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선지식인 될 수 있는가? 연구를 해서 그 책이 지금 바른가? 아닌가?를 분별해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내야 된다. 옛날에 그들이 사는 논리와 관습, 모순을 바르게 해서 오늘을 사는 사람한테 맞게끔 해 나가는 게 정신문화 발전인데 지금 그렇게 하질 않고 과거의 문헌만 찾아서 그 뜻을 빗대어 논문을 쓰고 정리를 해서 지금 박사가 되어 그런 걸 많이 안다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넘쳐 난다.
이런 사람들을 지금 지도자로 섬기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의 틀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하니 전부 잘못 살아버린 것이다. 우리 부모님의 아픔을 먹고 성장을 하는 것이 효라면 부모님이 자식을 바르게 키우는 것은 또 무엇인가? 자식을 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부모의 뼈를 갈아서 사람으로 바르게 키워내는 것이 근본이다. 근데 우리 부모님들이 지금 사람으로 키우는 게 뭔지, 사람이 뭔지, 동물이 뭔지, 인간이 뭔지, 그것조차도 기본을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그냥 밥 먹이고 학교 다니는데 기본 뒷바라지해 놓고 자식을 키웠다고 그러는데 자식을 키운 적이 없다. 우리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깨우치지 못해서 자식을 바르게 못 키운다면 정부는 또 무엇을 해줘야 되는가? 정부가 국민을 이끄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동물적인 삶을 살지 않고 사람으로 살 수 있게 지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근본이 돼야 된다. 일반 가정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좋은지 개발을 해 가지고 국민들이 갈 좌표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에 근본이다.
정부가 오만 것들을 간섭하는 게 근본이 아니고 국민이 어떤 길을 가야 되는지 좌표를 놓고 그 길로 이끌어줘야 되는 것이 정부가 해야 되는 일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아주 지적으로 살 수 있는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지 돈을 많이 벌게끔 만들려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닌 것인데 지금은 근본이 없어져 버렸다. 이렇게 백성들을 이끄는 방향의 주체가 없다.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주고 배 안 고프게 해 주고 잠 잘 자게 해 주면 되는 줄 안다. 이것은 동물들의 삶이다. 최고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들을 모아 놓은 집단이라면 우리가 지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길로 이끌어 주는 것만이 근본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