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3)
사업가는 자신한테 인연이 오는 것이 근본이다. 우리가 회사를 차린다면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이 일을 시작을 함으로써 인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나열이 된다. 사업의 근본은 이것이 주체이고 근본이다. 자신이 이걸 하기 때문에 여기서 인연들이 전부 모여지는 것으로 직원들도 그렇고, 거래처도 그렇고, 자신이 물건 만들어서 그것을 쓰는 소비자도 그렇고, 뭐든지 사람의 인연 고리가 연결되는 것이 주체다.
그런데 주체는 없고, 그것에 대한 연구도 없고, 돈을 벌어서 나눠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조금 많이 벌면 저쪽에 없는 사람한테 조금 주면 선행을 하는 것이 되는 이런 무엇이든지 지금 근본이 없다. 근본 주체가 있고 당위성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먹고살라고 하고 있으니까 삶은 동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누리는 것은 인권을 따진다. 그러니까 주체 근본이 똑바로 서면 먹고사는 것을 비롯한 다른 것은 덤으로 되는 것인데 돈도, 인연도, 덤으로 전부 다 자신이 나아가면 오는 것이다.
그럼 자신이 수장으로서 그 사람들을 위하는 길은 무엇인가? 수장은 그걸 깨우치고 공부를 해야만 되고, 그걸 모르는 자가 수장을 했다면 그 사람 밑에 있는 인연들은 그 수장이 동물처럼 삶으로써 모두 동물처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장과 지도자는 도를 닦아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윗사람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해야 되는 사람이다. 그들이 모르는 것을 일깨우고 깨우쳐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한테 다 같이 쓸 수 있게 공유하고 이 기운을 인연들에게 전해야 되는 것이다.
회장이고, 사장이고, 대통령이고, 이렇게 다른 사람 앞에선 지도자들은 전부 다 공인들이고 그런 것을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한테 바르게 잡아주고 이끌어줘야 되는 게 근본인데 이것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 우리가 효 하나가 나오니까 부모에 관한 것이 나오고, 사회가 나오고, 관련 것들이 전부 나오는데 뭐든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전부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걸 집안에서 깨우치지 못하면 국가에서 그런 걸 제시해 줘야 된다.
국가에서 못해주면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제시를 해줘서 국가가 그런 것을 가지고 국민한테 쓰게 해 줘야 된다. 그래서 정신적인 지도자들은 그만큼 존경을 했고 그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못하는 걸 찾아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가 우대를 하는 것이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한테는 우대할 필요가 없다. 근데 지금은 책(경經) 읽어 주고 우대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효에 대해 그 근본을 찾으니까 다른 것은 크게 말할 게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사람으로 바르게 성장을 못 하게 되면 사람이 될 때까지 그 부모님에게 책임을 물어 그 고통을 받으면서 자식 앞에 교과서 역할을 하고, 결국에는 평생 동안 벽에 똥칠할 때까지 괴로움을 당하면서 자식들한테 보여주고 가야 되는 그 역할을 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자식이 깨우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면서 성장해 줄 때만이 효의 근본이다. 부모님한테 절 안 하고 어깨 안 주물러 줘도 약 안 사줘도 그 부모의 아픔을 쳐다보고 피눈물을 삼키면서 자신이 성장을 해 줘야만 부모한테 효가 된다.
우리는 효에 관한 책을 다시 써야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부모님들도 자신이 희생하고 있는 것도 거룩한 희생임을 알고 살면서 괴로워하지 마라. 자신의 어려움은 이 세상과 이웃에게 거룩한 희생을 아직까지 하고 있음이고 그걸 깨우칠 때 자식을 볼 때도 다르게 보이고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열려서 그걸 깨우치면 비록 환경은 그대로 일지라도 그 아픔은 스스로 사라진다. 이제 자식을 바르게 키울 줄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그 아픔도 주지 않는다.
교과서로 역할을 하면서 몸으로 때우는 것은 자신이 모르니까 그 힘든 일을 해야 되지만 그것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깨우쳐서 자식을 바르게 이끌 길을 알았다면 최후의 수단인 교과서 역할을 몸으로 때우는 그런 짓은 안 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병도 안 주고, 어려움도 안 주고, 무시당할 일도 안 주고, 추한 꼴을 안 줘서 이제 자식이 부모가 필요하기 때문에 찾으면 이끌어 줄 수가 있다. 돈이 없어도 부모를 찾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부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식을 사람으로 이끌어주는데 교과서 역할은 부모님이 제일 크게 할 거니까 모르면 그 책을 쳐다보러 가야 된다. 그래도 교과서를 보고 못 깨우치고 오면 또 반복해야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 깊이를 모르고 자꾸 부모님 보러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왜 가는지 물으면 당연히 가야 한다든가, 보고 싶으니까 보러 가는데 그게 아니고 자신이 성장하려면 교과서인 부모님을 봐야 되기 때문이다. 그 삶의 아픔을 쳐다보고, 그 어려움을 쳐다보고, 거기에서 각오를 다지고, 다시 자신을 짚어보고, 이렇게 하면서 자꾸 성장할 때 최고의 교과서가 자신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부모님의 그 아픔이 자신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고 어려운 줄 진정으로 바르게 안다면 진짜로 부모님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도 마음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효에서 나오는 그 아픔을 지금 쓸어만지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만 된다면 부모님은 스스로 가슴이 녹아내릴 것이고 진정한 효를 우리 부모님한테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하는 행동은 똑같이 주물러드리는 것이지만 마음에 깨우친 바는 다를 것이다. 이 근본 하나만 찾아준다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성장을 사랑으로 했을 것인데 이것을 모르니까 그냥 부모님 아프면 약을 사주는 것이 효도이고 몇십 년을 부모님 병시중하면 효도라고 상주고 있다. 이 시대의 선지식이라 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러고 있으니까 언제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