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남 탓하지 마라(1)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인이 되기 위함이다. 만일에 단순히 잘 먹고 잘 살려면 공부를 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면 훨씬 잘 해결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려면 자신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고 갖추면 스스로 대자연을 존중하고 자기 앞에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한다. 대자연을 알면 자신의 삶도 알게 된다. 그래서 자기 삶을 바르게 살아 나가는 길을 득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서 어려움을 풀어야 하는데 삶은 바르게 살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만 풀어 달라고 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갈수록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우리가 어려워서 그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면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쳐서 이끌어 줘야 하는데 바르게 사는 법을 그들도 몰라서 몇천 년 전에 경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자기들의 방식으로 알려주고 그것이 맞다고 고집을 부린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도, 부처와 예수도 잘 모르는데 무작정 믿으면 다 해준다고 배워 버렸다. 또 민속 신앙에서는 산신한테 제물을 바치면서 빌면 잘 사는 길이라고 알려준다. 사람이 어려워서 찾아왔는데 자신이 이들이 왜 어려워졌는지 모르면 그들의 말을 들으며 같이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 답을 찾아서 이제 앞으로 어렵지 않게 살려면 그 잘못하고 있는 방법을 바르게 고쳐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되는데 지금 영적지도자들이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랑해라" "원수를 사랑해라"라고 가르치면 문제가 해결될까? 왜 이게 몇천 년간 안되고 있을까? 그 가르침대로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 원리를 알아야 하고 왜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지 그 깊이와 원리를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좋은 말이 없어서 세상이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다. 또한 바르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안될까? 우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왜 안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것을 말하고 시키는 사람들의 방법이 틀렸다. 나와있는 말을 가르치고 글을 가르치고 그렇게 하라고 했지 자신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한 말을 가지고 공부를 해보자.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보면 거룩한 말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기도한데 무시할 수 없는 오묘한 뭔가가 있다.
양면을 다 지니고 있어서 대단한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가진 삶의 방식과 환경으로는 절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노력은 해볼 수 있지만 그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자연의 이치상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의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러면 원수란 누구인가? 자신의 뺨을 때리거나 가족을 죽인 사람이 원수인가? 우리가 아는 상식은 원수는 자신이나 우리 집단을 해롭게 한 사람이고 반대로 영웅은 이롭게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파괴시킨 사람이 원수인데 이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니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지금 우리가 아는 그런 말이 아니었는데 내려오는 과정에서 그렇게 변질되어 알고 있는 것이다. 원래 원수라는 의미는 자신에게 원수로 나타나는 사람은 전생에 자신과 빚쟁이 인연의 고리로 이생에 온 사람이다. 전생에 대자연에서 서로가 업을 갚지 않으면 안 될 엄청난 원수를 졌기 때문에 이번 세상에서 그 빚을 갚아야 하는 악연으로 만난다. 이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근본이다.
그러면 원수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자신의 자식으로 오고, 형제로 오고, 친구로 오고, 자신의 동료로 온다. 이렇게 옴으로써 정확하게 빚을 갚을 수 있는 환경으로 온다. 그러니까 원수는 이번 생에 살인을 하면서 온다든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다든가 하는 해롭게 하는 방식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원수는 최고 사랑스럽게 자신을 감추고 온다. 최고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사람이 자신에게 최고의 원수이다.
이런 관계가 아니면 우리에게 그런 특별한 인연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식이 말을 안 들으면 '이 원수 같은 놈'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자연은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준다. 이렇게 원수는 사랑스럽게 다가오는데 자식은 자신들의 피와 살을 섞어서 그 안에 들어오고, 부부 인연은 눈에 콩깍지를 씌워서 좋아 죽게 만들어 놓고, 친구로 만날 때는 만나면 좋아 죽겠고, 이렇게 최고의 원수일수록 이러한 모습으로 자연적으로 만날 수 있게 다가온다.
그러면 우리는 이 원수에게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것이고 빚을 갚는 것인가? 그 상대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득을 보려고 하니까 싸우게 된다. 빚을 갚으면 상대가 좋아하는데 빚은 안 갚고 더 뜯어먹으려 하니까 온 세상이 어렵고 힘들어진다. 우리가 빚을 어떻게 하면 갚는 것인가? 밥 주고 돈 주면 되는가?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해 주면 되는가? 물질은 그 기준이 시대적으로 다르고 가까이 다가가는 방편이지 주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