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대한 지성
정법의 관점에서 대자연은 단순히 물질적 공간이나 물리 법칙의 집합체가 아니다. 우리 영혼들이 원래 머물렀던 '천상(원시 반본의 세계)'과 지금 우리가 사는 '지상'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유일신으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인격신(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이라기보다, 우주 전체를 운용하는 '대자연의 법칙(Law)' 그 자체를 의미한다. 대자연은 인간처럼 감정적이고 개별적인 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우주를 질서 있게 운행하고 진화시키는 '근원적 설계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를 '대자연의 의지' 혹은 '운용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생존 기계'는 유전자들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육체를 뜻한다. 하지만 정법에서는 생존 기계를 운전하는 '운전사'가 바로 우리 *영혼(영혼신)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각자의 영혼은 대자연의 원소로서 독립적인 의식을 가진다. 이를 '소우주'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주의 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자연 (대우주)은 개별 영혼들이 자신의 모순을 닦고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곧 대자연이다. 대자연은 인간의 의식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총체적 의식'의 상태에 가깝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뇌가 발달했다고 보지만, 정법에서는 영혼이 이 물질계에서 '성장'하기 위해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간은 대자연의 법을 깨달아 스스로를 완성해야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대자연(유일신)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인간(영혼신)이 올바르게 살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환경의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이런 의미에서 대자연은 살아있는 의식체이며,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반응하는 '반응형 시스템'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대자연은 인간과 같은 '개별적 자아'를 가진 의식은 아니지만, 우주 전체를 완벽하게 운용하는 '무한한 지성적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그 대자연의 일부가 투영된 것이며, 우리가 공부를 통해 성장할수록 대자연의 의식(법칙)과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생물학적 '생존'의 차원을 넘어, 그 기계를 활용해 영혼이 어떤 '가치'를 생산하느냐가 정법에서 말하는 의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대자연의 '법칙(순리)'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부분은 인본 시대 철학의 핵심적인 대목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대자연의 원소인 '영혼신'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자유의지는 영혼의 '운전 권한'이다
도킨스의 관점에서 육체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면, 정법에서 육체는 영혼이 이 세상에서 활동하기 위해 빌려 입은 '정교한 수트'와 같다. 대자연의 원소인 영혼은 각자 독립적인 인격과 의지를 가진 '신'이다. 따라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자유의지를 부여받았다. 대자연(유일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이유는, 강제로 시켜서 하는 행동에는 영혼의 성장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딪히고 깨달으며 자신의 질량(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 지상 삶의 목적이다.
대자연의 법칙은 '가드레일' 역할을 한다
자유의지가 운전자의 권한이라면, 대자연의 법칙은 도로 위의 '교통법규'나 '가드레일'과 같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이 대자연의 순리에 맞으면(상대를 이롭게 하면) 삶이 풀리고 즐거워진다. 반대로 순리에 어긋나면(자신의 욕심만 차리면) 어려움이나 고통이라는 신호가 오는 피드백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대자연은 인간의 선택을 막지 않는다. 다만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정확하게 되돌려줌으로써 인간이 스스로 법을 깨닫게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대자연의 인과법'이다.
'법칙'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조화의 단계
자유의지와 법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흔히 '도(道)' 혹은 '순리'라고 한다.
"지혜로운 자는 대자연의 법칙을 활용하여 자신의 자유의지를 펼친다." 이는 마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양력의 원리를 이용해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같다.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법칙을 정확히 알고 그 안에서 움직일 때 진정한 자유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는 '홍익인간'의 의지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의 '이기성'은 생존을 위한 본능(법칙)다. 하지만 인간은 의식을 통해 이 본능을 제어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홍익의 의지'를 낼 수 있다.
본능(유전자): "나만 잘 살아야 한다." (생존 기계의 프로그램)
자유의지(영혼): "내가 성장하여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 (영혼신의 선택)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나'를 넘어 '사회'와 '대자연'을 위하는 선택을 할 때, 대자연은 그 영혼에게 무한한 힘과 환경을 지원해 준다. 이것이 바로 영혼신(인간)과 유일신(대자연)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최고의 조화이다.
환경의 '풀림'과 '막힘' (물리적 신호)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신호는 내 주변 환경의 변화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조화의 상태가 되면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나타나 도와주거나 필요한 정보가 제때 들어온다.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아도 일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된다. 이것을 '도움의 손길' 혹은 '문이 열린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부조화의 상태가 되어 내 고집이나 욕심으로 밀어붙일 때는 자꾸만 제동이 걸린다. 약속이 깨지거나, 믿었던 사람이 변심하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이는 대자연이 "그 길은 네 질량에 맞지 않으니 잠시 멈추고 돌아보라"라고 보내는 정지 신호이다.
마음의 '편안함'과 '불안감' (정신적 신호)
우리 영혼은 대자연의 원소이기 때문에, 법칙에 어긋나는 선택을 하면 영혼 자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조화의 상태는 선택을 내린 후 마음이 평온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과정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며,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자존감)이 올라간다. 반대로 부조화의 상태에는 겉으로 이득이 되는 선택 같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과 불안감이 남는다. 남을 의식하게 되고, 자꾸 변명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대자연의 순리보다는 나의 '이기적 욕심'이 앞섰다는 증거이다.
'사람'과의 관계 (사회적 신호)
인간은 동물의 육신과 영혼신이 결합한 인신(人神)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따라서 조화의 가장 정확한 척도는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조화의 상태일 때는 내 말과 행동이 상대방을 기쁘게 하거나 성장에 도움을 준다. 사람들이 나를 찾게 되고, 대화가 즐거워진다. 이것이 바로 '홍익의 삶'이 법칙과 맞물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조화의 상태가 되면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잦아지고, 나를 피하는 사람이 생긴다. 만약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데도 주변에서 불평이 나온다면, 그것은 내 자유의지가 대자연의 법칙(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벗어났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내 주장을 내려놓고 환경을 흡수하며, 상대를 이롭게 하려는 마음으로 선택할 때 대자연은 무조건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