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환과 존중의 가치

상생의 원리

by 바루다

우리가 상생이라 하는 원칙도 남을 위해서 자신이 먼저 행할 때 상생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상생을 하라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상생은 부모가 자식한테 먼저 행하고 나면 자식이 효를 행하게 되듯이, 자신이 상대한테 행하면 상대는 저절로 일어나는 게 상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방법대로 이끌고 가려고 하거나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 상생이 아니고 이것은 사생결단이다.


우리가 조직이든 정부이든 개인들이 상생하자, 동참하자, 화합하자, 참여하자, 오픈하자, 이런 소리가 상생의 원리인데 문제는 자기 방법대로 열었다는 말이다. 상대의 방법대로 열면 자신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방법대로 상대가 들어와야만 한다는 것은 사생결단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안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자신이 용기를 가지고 상대의 방법으로 들어갈 줄 알 때 상생은 스스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진정 친구를 위하고, 진정 상대를 위해서 살 때 스스로 상대도 우러나온다. 정확하게 그렇게 해서 빚어지는 게 상생의 고리가 된다. 그러면 상생은 누가 먼저 하고 어디로 해야 되는가? 찾아오는 자에게 자기 자리에 있는 자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온다는 것은 말을 걸어오는 것도 오는 것이고 다가오는 것도 오는 것이다. 상대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다가오면 덕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자신한테 있다. 오는 사람은 있는 사람에게 절대 덕행을 하지 않는다. 오는 사람은 뭔가 덕을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상대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자신이 덕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자신이 해야만 상생은 이루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상생이 되는가? 상대에게 물질을 주는 것은 상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하는 전 단계로 상생을 하기 위해서 상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하고 상대한테 조금 자세를 낮춰주고, 듣기 좋은 소리를 해 주고, 참아주고 하는 것은 상대로부터 자신이 신뢰를 받기 위해 한 행동이고 돕기 위해서 지금 밑작업을 하는 것이지 상생이 아니다.


자신이 상대가 필요한 것을 대가 없이 주면 대가 없이 주는 것만큼 자신을 믿어 준다. 왜 자신을 믿게 만들려고 노력하는가? 자신의 평판이 좋을수록 자신이 세상에 말을 하면 잘 먹힌다. 자신이 아무리 깨달음의 경지가 높아 바른 것을 가지고 아는 게 있더라도 이것으로 남을 돕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 자신이 이걸 상대한테 줬을 때 상대가 자신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면 그때 남을 돕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바른 것을 알고 있다면 상대의 근기에 맞게 이해시킬 방법을 찾아서 줘야 상대가 받아들인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면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해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바르게 되지 않아서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 버린다. 완전히 이해를 하든가 아니면 그 말을 한 사람을 완벽하게 신뢰를 하면 최대한 그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 천하 없는 법을 가져왔어도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뢰를 얻기 위해 한 행위는 덕행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것으로 남을 도왔다고 공치사를 한다.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르게 살게끔 이끌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바르게 살게 되면 다음에는 지금 어려웠던 일은 다시 어려워지지 않게 된다. 몸이 아팠던 게 같은 것으로 다시 안 아파진다. 그러므로 바르고 정확하게 사는 길을 가르쳐주고 도와야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도 자신한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서 상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순환이 되면 서로의 기운을 먹고 힘을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만 명이 오면 그 만 명이 돕고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면 자신은 2만 명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그런데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없거나 미워하면 1명도 다스릴 힘을 갖지 못한다. 도력이라 하는 것은 상대를 이끄는 힘이다. 도력은 도술 하고 달라서 한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따르면 자신은 두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어 있다. 이렇게 배수로 그 힘이 증가하는 것이고 도술은 어느 한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다 쓰면 더 이상은 도술이 통하지 않게 된다. 도력은 누구나 이러한 방식으로 똑같이 그렇게 힘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쪽에서 주는 것은 상생이 아니고 양쪽에서 이루어질 때 상생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양쪽이 이루어지려면 찾아오는 자한테 자신이 하는 것이고 국가 간의 상생은 상대 국가에서 우리나라에게 도움을 청할 때 진정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했을 때 상생이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자신이 식당을 하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면 먼저 누가 상생의 덕행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이 먼저 할 수 있는데 주문한 밥을 주고 상대는 돈을 줬다면 이것은 상생에 포함되는가?


이것은 물질을 주고받았을 뿐이지 아직 상생한 것이 없다. 진정 상생은 이제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다. 손님이 오니까 물도 드렸고 친절하게 했고 그다음 밥도 정성껏 해드렸고 말 한마디도 부드럽게 해 드리고 또한 돈을 싸게 받거나, 안 받거나, 어떻게 했든 이것은 손님이 자신을 아주 좋아하게 만들고 가까워지는 방편이고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럼 왜 그렇게 자신이 이득을 줄이면서 좋아하게 하는가?


이제는 상대한테 덕행을 하기 위함이다. 이제 서너 번 오고 단골이 돼서 말을 섞고 자신을 믿어주면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니까 상대가 어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자신이 삶에서 깨우친 경험이나 그에게 도움이 되는 한마디를 해줘서 바른 길을 가게 도와주면 덕행이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이 마음에 와닿고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좌표가 되고 뭔가 득이 되면 덕행을 행한 것이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은 고맙다고 찾아온다.

이제는 자신에게 두 배의 힘이 된다. 손님이 이제 단골을 넘어 가족이 된다. 자신이 진짜로 상생을 행했을 때는 가족이 되어 간다. 인생의 좌표가 되는 일을 해줬을 때, 바른 길을 이끌어줘서 사람이 바르게 사는 법을 일깨워줬을 때, 이럴 때 진정 상생을 한 것이다. 바른 답을 알 때 정확하게 그 사람이 이해하게 잘 설명을 해서 그 도움으로 일을 잘 성사시켜서 좋은 일을 맞이하면 자신이 덕행을 했으니까 그분은 그런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조금씩 더 존경스럽게 다가오고 그렇게 해서 인기가 존경으로 바뀌어 간다.


상대로부터 존경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고 그 기운이 자신의 업을 소멸하게 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 덕행을 해서 존경스럽게 다가왔다면 자신은 그 사람한테 덕행 한 것이 되어 천상에 공덕이 쌓인다. 한 사람을 바르게 살도록 이끌어주면 이것이 공덕이 된다. 우리가 상생의 원리를 잘못 알아 가지고 어떤 사람이 배고프니까 밥을 주고, 쌀 없으니까 쌀을 주는 이런 물질을 주는 것은 우리가 상생을 하기 위해서 서로가 믿는 사이를 만드는 것으로 후천 시대에는 항상 방편이지 상생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천 시대에 해온 선행이 후천 시대인 이때까지 이걸 남한테 좋은 일 많이 한 줄 알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운용의 시대인 후천 시대는 이것은 좋은 일 한 게 아니고 이것만 하고 말았다면 1차적인 시도만 하다 끝나버린 것이다. 선천 시대에는 우리가 무식하고 성장을 하는 때라서 이러한 방법이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은 자꾸 그렇게 돈만 주니까 이 사람 버릇이 나빠지고, 그 버릇을 나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므로 이제는 아주 정성껏 심혈을 기울여 나태해지지 않게 노력을 해서 줘야 한다.


그런데 그걸 함부로 준다든지, 그걸 도와준 걸로 알고 있다면 몇 년 지나면 정확하게 자신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만큼 잘해줬는데 왜 저 사람이 저럴까? 그 이유를 몰라서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게 되어 있다. 물질로 주고 말아 버린 것은 정확하게 뒤통수 날아온다. 정확하게 자신을 욕하면서 돌아오든, 자신을 헐뜯으면서 돌아다니든, 자신이 그만큼 해줬는데도 그런 일이 발생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자신은 돕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상대를 나태하게 해서 더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제 이런 것들의 분별을 바로 해서 상생을 이루려고 들지 않고 자신이 상대를 생각할 때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상생이니까 자신의 주위에 오는 인연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진정 따뜻하고 바르게 해 주는 것이 상생이지 물질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된다. 우리에게 오는 환경을 풀어내지 못하면 어렵고 갑갑해져서 사람들이 화를 내며 상황에 딸려가서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걸 차분하게 받아주는 것은 상생의 근본이다. 그러니까 말이 안 통하면 절대 상생이 안 된다.


상대가 말을 할 때 말을 받아주는 연습을 하는 것이 민족의 수행법이다. 이 민족의 수행법은 상대가 자신에게 뭔가 아쉬워 왔든, 잘난 척을 하러 왔든, 뭔가를 전하러 왔든, 그 말을 무심으로 티 없이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수행법이 된다. 이것을 잘 받아주게 되면 그것이 자신 안에 들어와서 자신이 어떠한 노력을 안 해도 자신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질량과 혼합이 되어 정확하게 상대에게 필요한 답을 꺼낼 수가 있다. 이것이 이 민족의 마지막 일생을 받아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마음 에너지이다.


그러니까 윤회를 더할 수 있는 자는 마음 에너지가 아직까지 덜 성숙해서 이런 마음 에너지가 없다. 마지막 땅의 마지막 곳에 마지막 책임자로 윤회를 해왔을 때 우리가 6006혈로 들어갈 때 최고의 조물 된 마음 에너지가 나온다. 이것이 마지막 일생을 받아 지혜가 나올 수 있는 관음의 품성을 품은 사람들이다. 지혜는 마음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지혜라고 하는 것에도 질량이 있어서 생활 속의 지혜라고 하는 것도 있고 마지막 일생의 사람들이 마음의 에너지를 통해서 나오는 인류 최고의 큰 에너지로 지혜가 나오는 것이다.


이때 나오는 지혜의 힘은 바른 답을 생산한다. 상대가 어렵고 힘들어서 말을 하면 깨끗하게 잘 들어주면 그 상대에게 필요한 바른 답이 스스로 나와서 그를 돕게 되어 최고의 지적인 덕행이 된다. 우리가 지혜롭게 행동하라는 것은 생활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각에서 분별을 통해 나오는 것이고 지혜는 분별로 나오는 게 아니고 남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남의 아픔을 진심으로 사랑했을 때, 남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티 없이 받아주었을 때, 이럴 때 자신의 영혼 에너지가 스스로 작업을 해서 마음 에너지를 통해 그 사람한테 필요한 답을 내준다.


이것이 무심 속에서 지혜가 스스로 나오는 것이지 지혜는 어디서 얻을 것이 아니라서 멍하니 앉아 있으면 3천 년이 지나도 안 나온다. 지혜는 사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살고 계산을 할 때는 지혜가 절대 안 나온다. 계산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이렇게 살 때는 절대 지혜가 안 나온다. 지혜는 남을 위해서 티 없이 행 할 때 자신 안에서 스스로 나오는 것이 지혜이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 사람이 힘들고 아파할 때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하니까 자신을 믿고 상대가 본인의 마음을 말해 준다는 것은 이제 그의 영을 끌어내주는 것이다. 본인의 영은 마음을 거쳐 입을 통해서 나온다. 그러니까 탁한 영이 됐든, 맑은 영이 됐든, 자신의 에너지인 영체는 입을 통해서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상대가 말하는 영을 우리가 받아먹으려면 귀로 눈으로 모공으로 받아들인다. 티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각으로 받아들일수록 바른 답을 꺼낼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의 에너지를 통해서 자기 영혼으로 전달되면 융합을 해서 그 환경에 맞는 바른 답을 끌어내서 마음 에너지를 통해 상대에게 내어준다. 이것이 지혜로 나오는 답이다. 그러니까 지혜를 열면 뭐가 보이니 안 보이니 하는 사람들은 아직 지혜를 못 열어 본 사람들로 책을 보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에 중국의 도파들이 이리저리 해본 수많은 방법의 하나이고 각자가 지혜라고 써 놓은 것을 우리는 이걸 보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앞으로 윤회가 많이 남아 있어서 이것도 해보다 죽고 저것도 해보다 죽고 오만 것들을 해보며 찾아가다 아니면 죽어도 윤회를 하면서 깨우쳐 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민족은 마지막 일생의 30%는 그게 아니다. 이 민족은 바른 것을 분별할 줄 알고 자신의 에너지를 쓸 줄 알아야 되는 지도자의 삶을 받아온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지혜는 자신 안에서 스스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상대가 어려움을 내놓는다는 것은 독기를 내놓는 것이고 그 어려움을 무심으로 받아들였을 때 자신 안에서 중화를 해서 다시 상대에게 주는 것이 지혜이다. 상대가 자신한테 아주 잘난 척을 하든, 괴로워서 하소연을 하든, 이런 것은 전부 독기가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독 영체를 관음들은 안으로 전부 끌어안아서 품어줄 때이다. 모두 티 없이 흡수를 하면 이 마음 에너지가 작업을 스스로 한다. 티 없이 받아들여서 자신의 각이 움직이지 않을 때 최고로 정확하게 활동을 한다. 흡수해서 한마디 툭 튀어나오는 것이 상대한테 최고로 필요한 답이 스스로 나온다. 이것이 지혜이다.

작가의 이전글우리 왜 어렵고 힘들고 아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