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창작 활동
소질은 영혼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을 가져와서 육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키워가는 것이다. 소질은 육신이 해야 할 프로그램이고 내 영혼의 질량을 키우는 것은 학습이다. 결국 내 영혼의 질량을 키우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학습을 70% 하고 소질은 30%를 해도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내 영혼의 질량이 성장을 하면 소질 개발은 스스로 되고 영혼 성장이 없으면 소질을 계발했는데 잘 안된다.
그래서 선천 시대의 기라성 같은 모든 예술인들이 기본을 가지고 놀다가 갑갑해하면서 죽었다. 시대적으로 70% 선에 멈춰서 그 위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는 영혼의 질량을 채우지 않으면 소질 개발이 다 되었더라도 갑갑해진다. 우리가 자연을 만지는 것도 자료를 보고 익힌 것과 자연을 아는 사람하고는 다르다.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자연의 법칙을 푸는 것은 진리이고 자료를 만지며 습득해서 사용하는 것은 지식인이다.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다가 백지 한 장의 차이로 실패를 하는데 그 이유는 예술은 직업이 될 수 없고 활동의 영역인데 직업으로 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도 사회 활동을 해야 하는데 직업으로 삼고 노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가지고 사회 활동을 하면 돈이 오든, 존중이나 존경이 오든 할 것인데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순간부터 창의력은 멈추고 직업의 창의성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한계가 생긴다. 예술은 창의력이 생명이고 활동을 해야 되는데 멈추어 버린 것이다.
우리 홍익인간들도 창의력이 높아져야 된다. 그런데 우리의 창의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활동이 아니라 직업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거기서 활동을 하지 않고 어떠한 것을 직업으로 삼아 버리면 창의성은 죽는다. 그래서 더 우수한 것을 찾지 못한다. 기업인이 활동을 해야 하는데 직업인이 되면 쟁이가 되어 창의성은 사라지고 안으로 파고들게 되므로 조직의 리더로는 적합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기업의 사장이나 회장은 직업인이 아니고 활동가이다.
모든 이 사회는 예술이 아닌 것이 없는데 단지 우리가 어떠한 규정을 지어서 스스로 사로잡힌 것이고 그것이 직업의식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직업의식을 버리고 사회 활동가로 나와야 된다. 그렇게 되면 연구가 일어나고 개발이 되고 사회 창의가 일어나서 새로운 걸 일으켜내는 이런 활동이 된다. 이것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경제는 스스로 움직이고 존중도 생겨나고 존경이 일어난다. 우리가 직업인 되어 버리면 인기는 있을 수 있지만 존경에서 멀어져 버린다. 인기는 존중이나 존경으로 가는 방편이다.
우리가 생각이 모자라면 몸이 앞서게 된다. 몸이 반응을 먼저 하는 것은 질량이 약하다는 뜻이다. 남녀가 정신적인 교제를 하면 몸이 앞서 가지 않고 서로를 아껴줄 수 있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몸이 앞서는 것은 그만큼 질량이 낮아서 동물에 가깝게 살고 있는 것이고 사람으로 갖추어 갈 때까지는 지식을 쌓아서 어느 정도 선까지 넘어가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