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없는 도시
우리의 에너지가 다 크면 억압당하려 하지 않고 자유를 찾는다. 에너지가 작을 때는 스스로 자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 보호를 받으려 하기 때문에 억압을 받아들이고 따른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살면서 신들에게 무릎 꿇고 따르며 보호받기를 바랐다. 오늘날 우리는 진화를 마치고 성장을 하면 보호를 받는 게 아니고 마음껏 나래를 펼쳐야 될 때이다. 성인이 된 자식이 스스로 살려하지 않고 부모에게 기대려고 하면 보호받으면서 동시에 속박은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툼이 발생하게 된다. 보호받으면서 다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아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우리가 갖춘 것들이 머리에 기억되면 바로 나오지만 영혼으로 들어가면 기억이 안 나지만 행하고 활동할 때, 즉 필요할 때가 되면 나온다. 평생 직업이라는 것은 그 사회가 노동 집약적으로 가야만 가능하다. 백 년이 가도 그 노동을 하면서 살면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아야 평생직업이 된다. 하지만 발전하는 사회에서 지식이 갖추어지고 질량이 높아지면, 자신이 거기에 맞게 지식과 질량이 갖추어질 때 평생 직업으로 같이 갈 수 있다. 이 범주를 벗어나서 우리가 사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평생 같이 할 수 없는 것을 지금 약속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아주 느리게 변하거나 멈춘 사회라면 모를까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서 약속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 흐름의 리듬을 타지 못해 자신이 멈추면 약속은 깨진다. 이때 깨지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과거에 우리가 농사를 짓는 시대는 발전이 되더라도 아주 느려서 평생을 살아도 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평생직업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오늘 다르고 내일이 다른 환경에서는 거기에 발맞춰가지 않는 한 도태되어 버린다.
그래서 해고 없는 사회라는 말이 좋은 말 같지만 어려운 말이다. 지금 이런 말들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 사회와 인류가 한 단위로 올라가야 되는데 못 올라가고 멈춰서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에 맞는 새로운 틀이 나와야 되는데 과거의 틀로는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멈춘 상태이다. 그래서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평생직장이라고 하면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성장이 거의 없는 노예처럼 사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인들에게는 안 맞는다.
노예처럼 사는 것은 자기 생각이 별로 없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것으로 무식해야 된다. 그래야 관리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지식을 갖추고 질량이 차면 간섭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독립적이 되기 때문에 맞지 않게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모두가 지식인들이라 그런 시대가 끝나버렸다.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할 때는 몇십 년 동안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사느라 시간이 흘러왔지만, 이제는 정보화 사회이고 자신에게 오는 환경을 흡수하면 그 자체가 지식이라서 갖추어지는 지식사회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과거의 역사에 해당하지만, 현장에서 환경으로 오는 것은 오늘의 지식이다. 우리가 지금 그 깊이를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노예처럼 살라고 하면 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 안정적이고 구속도 안 받아야 하니 자꾸 비틀어 버린다. 그런데 그것은 양립이 어렵다. 우리가 지금 갖추어지지 않아서 바라보는 것이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평생직장이나 평생직업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지적으로 갖추어진 '평생 활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뭐든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 되는데 사회에 필요한 활동을 하면 경제든, 인연이든, 나머지는 다 들어온다.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이런 것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고 젊은이들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찾아내야 된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가서 30년을 그것만 하다가 정년으로 나오면 나머지 50년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우리는 사회에 활동을 하면서 교육을 받고 직장에 들어가도 활동하는 것으로 자신을 계속 갖추어 나가야 된다.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 다니면 그날부로 동물이 되어 버린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데 자신이 그만큼 발전하지 못하면 어떠한 약속도 지키기 어렵게 된다. 우리는 활동하는 속에서 환경이 오고 거기서 배우고 연구해 가면서 자신의 영혼이 성장을 하는 것이다. 사회는 돈 벌어 먹고사는 곳이 아니고 우리의 활동무대이고 교육장이며 이론이 아닌 현장 학습장이다. 그런데 지금 과거의 방식으로 '노동자'로 분류해 버린다. 노동자는 과거의 노예가 조금 화장을 현대적으로 고친 것에 불과하다.
직장도 미래에 젊은이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줘야 된다. 일하는 연구원을 만들어 내고 사회 활동가를 만들어내는 연구하고 발전하는 직장이 되어야 한다. 지금 길을 잘못 들면 국민 세금으로 엉뚱한 곳에 낭비하게 된다. 과거의 방식에다 돈을 아무리 부어도 좋아지지 않는다. 바른 교육이 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서 발전이 안 된다.
기업주는 젊은이들이 들어오면 그 회사에서 정년을 마친 분이라든지 사회의 업무 담당을 몇 명 보내줘서 젊은이들을 키워내게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기업주는 회사 내에 사람을 키워내는 것과 사회의 보호자가 되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방편이다. 기업주가 이런 의식으로 깨어나지 못하면 직원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해오다가 지금 대한민국이 어느 선에서 멈추어 있다. 직원들이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노동자를 만들어 버려서 지금 더 이상으로 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기업주는 과거로 치면 부족장이고 직원들은 자신의 가족이고 기업은 자신의 나라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해오던 것들에 의문을 품어야 하고 연구를 해서 오늘의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서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안 하고 과거의 방식으로 열심히 하기를 바라고, 돈을 많이 주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온통 사회에 모순만 드러나지 어느 쪽 편을 들어도 해결이 안 된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도 과거에 우리가 어렵고 정부가 자기 역할을 못 해 소외된 사람들이 있을 때는 위하는 것이 돕는 것이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다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아무리 해도 그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편이지 선행이 안 된다. 아무튼 지금은 과거의 방식으로 성장은 끝났고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는 때인데 지금 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문화라는 것도 옛날 것을 갖다 놓는다고 문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미래 문화를 창출해서 꽃 피워야 된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것들은 책이든 영상이든 볼만큼 다 봤다. 직접 봤냐 아니냐만 차이가 있는데 이제부터는 그런 것 말고 우리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내서 문화 산업을 이룩해야 된다. 우리는 지금부터 인류에 필요한 문화 산업을 일으켜야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인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에 영성적으로 뭔가를 찾고 있다.
그래서 지금 세계에 명상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세계 명상 센터를 열어서 바르게 가르치고 그들이 배워서 자기 나라에 가서 할 수 있고 수준이 높아지면 다시 배우러 오는 환경을 만들어야 된다. 과거에 매여있지 말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 지구촌을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앞으로 우리는 홍익지도자 교육을 해서 인성을 갖추어 사회를 볼 줄 알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들을 지금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것이 어른들이 그 역할을 하게 해 줘야 된다. 먼저 그 사회의 어른이 나오게 해야 된다.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자기 할 일을 찾아 줘서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복지 사업이다. 남들이 선호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자기 할 일을 찾아 활동하게 해주는 것이다. 앞으로 인류에게 사회 복지사업이 떠오를 것이지만 교육이 없이는 복지 사업은 안된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내지 못하면 지금 상태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대자연의 이치에 따라 이 세상의 모두가 필요 없이 존재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이 인류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