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삶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녀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그녀는 언제부터인지 늘 스마트폰을 붙들고 살았다. 책을 읽고, 서평 쓰고, 또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일이 어찌나 많은지. 그녀의 남편은 노트북을 선물했다. 그녀도 공부하는데 노트북이 필요했기에 기뻤고, 행복했다. 그런 기쁨도 잠시, 코로나는 그녀의 일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그녀의 노트북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차지가 된 것이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숙제를 하는 동안 그녀는 다시 스마트폰과 친해졌다. 새벽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켰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봤다.
아이들은 그녀를 스마트폰 좀비라 불렀다. 그렇게 그녀의 일상은 스마트폰 하나가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볼 때 안경을 들어 올리거나, 미간에 주름을 잡고 인상 쓰면서 안경 위로 보는 모습은 주변사람들로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어느새 그녀의 시그니처 행동처럼 되어버렸다.
눈이 나빠 쓰기 시작한 안경인데 스마트폰이나 책을 읽으려면 오히려 안경을 벗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그녀는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무시했고,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결국 눈에 이물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병원을 찾았다. 이미 그녀의 눈은 스마트폰 글씨는 안경을 벗어야만 보였고, 오랜만에 들여다본 노트북 화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의사 선생님은 별거 아니야, 이제 올 때가 된 거지.라는 느낌으로 담담히 말했다
"노안입니다. 이제 슬슬 올 나이네요. 돋보기 쓰세요"
"••••••"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노안'이라니. 내가 시력이 나빠도 노안이 올 정도는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그녀의 남편은 늘 경고했다. 어두운 데서 핸드폰 보지 말라고. 그녀는 남편 몰래 불을 끄고 핸드폰을 밤마다 했다. 아직도 그녀는 그렇다. 눈의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그 버릇을 못 고친다. 걱정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의사는 다초점렌즈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다. 눈은 나쁘지만 노안은 아닐 거라고. 거부하고 거부해 보지만 현실은 그녀를 절망에 빠뜨린다. 엎친 데 덮친다고 어지럼증이 생긴 그녀는 다초점렌즈 사용이 어렵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안경점을 찾았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만났다.
그녀는 나를 처음 만나고서는 한참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처음 안경을 쓰던 날을 떠올린 것이다. 고1 때 처음 안경을 쓰고 선명하고 밝은 세상을 만났다. 그때의 감정이 다시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안경 끼고 노트북 화면을 봐도 흐릿하던 것이 새 세상을 만난 듯 밝아진 것이다. 그녀는 내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듯 렌즈를 정성껏 닦는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와 늘 함께다. 밝고 선명한 세상을 안겨주는 나를 그녀는 사랑한다. 아쉽게도 사랑하지만 가끔은 아무렇게나 나를 방치하기도 한다. 그때 나는 너무 화가 난다.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선명한 세상을 그녀가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녀는 참 정신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경도 어디 뒀는지 몰라 찾고, 읽던 책도 어디 있는지 몰라 찾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신이 없는 거구나 이해하게 된다.
제발 나를 더 소중히 해주면 좋겠지만 정신없이 사는 것이 그녀의 매력인 걸로 인정하고 봐주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밝은 세상을 책임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