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하려는 마음이 소중한 이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by 박재석

2020년 3월 28일, 토요일 미국 동부시간으로 오후 7시,


미국 코로나 19 환자는 12만 1천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내가 일주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지난 월요일 (3/23) 확진자 수가 4만 6천 명 수준이었는데 3배가 늘었습니다. 폭증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미 미주리대학병원에서도 첫 사망자가 나오고 그 환자를 치료했던 응급실 스태프들이 자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 병원에서도 일반 중환자실 한 병동을 비워 코로나 19 의심 환자와 확진자 가운데 위중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TV에서 본 뉴욕주나 이탈리아 같은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주리주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학교와 식당, 교회 등 대중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는 '자택 머물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생필품을 사거나, 식품 재료를 구입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관공서, 경찰서, 우체국, 병원 종사자 등은 예외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부디 뉴욕주나 이탈리아 중국 같은 폭발적인 환자 증가를 막고, 의료기관이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하게 사태가 진행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하지만, 미국 인구의 60% 정도가 감염되고서야 진정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하다 보니 두려움으로 인한 사재기도 기승을 부립니다. 평소에 물품이 넘쳐나는 월마트와 지역 식품 마켓에서 마스크와 손세정제는 물론이고, 두루마리 휴지까지 자취를 감췄습니다. 휴가를 얻어 인디애나 주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러 갔을 때, 비상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월마트와 인근 대형 마트를 여러 곳을 들렀습니다. 그러나, 마스크, 휴지와 세정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달러트리에서 겨우 작은 휴지 두통과 동네 마트에서 손세정제 두 통을 구했습니다.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한 월마트 매장


참 의아했습니다. 손세정제, 마스크가 동나는 건 이해하겠는데 왜 하필 두루마리 휴지인가?

일명 패닉 바잉 Panic buying!

언론에 나온 심리학자들의 분석을 보니, 공포를 해소하는 과정 가운데 나타는 보상적인 행동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리적 불안을 큰 경제적 손실 없이, 보관이 용이한 휴지를 사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이렇게라도 개인의 불안과 공포를 해 다루려는 절박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코로나의 공포, 혹은 불안을 겪어 보고 나니 이런 행태가 더 잘 이해됐습니다.



AUTHORIZED PERSONNEL ONLY FR COVID-19.jpeg



여러분들은 빨간색으로 코로나19 통제 구역을 알리는 사진을 보시고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2020년 3월 23일 월요일, 휴가에서 복귀한 뒤, 선임 원목으로부터 병원에서 정한 비상 대응 태세에 관한 브리핑을 듣고 마음이 얼어붙었습니다. 더욱이 제가 주로 일하는 중환자실 한쪽 병동이 코로나 19 병동으로 지정됐기 때문입니다.


이 날 하루 종일 저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사태를 파악하고, 최고 단계의 비상 대응 단계에서 원목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숙지하고 휴가 뒤 개인적인 업무를 처리한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붉은 통제 표시가 붙은 코로나 병동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이래 저래 불안하고, 딱히 제가 가서 할 일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제 몸도 따라 사무실 의자에 딱 달라붙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5시에 퇴근해 집으로 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오늘 하루 뭐 한 거지?' '앞으로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내야 하나'


온몸을 깨끗하게 씻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최근에 전미 채플린 협회의 자격심사도 통과한 명실공히 '전문 병원 원목'인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뒷짐만 지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자책의 목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다시 나의 소명을 생각하며 잠잠히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떠 오른 말씀,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Rejoice with those who rejoice, mourn with those who mourn." 내 소명의 말씀!




이튿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중환자실 아침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담당 의사, 레지던트, 간호부장, 병동 간호사, 치료사 등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제가 오후에나 나타나는 데(평소 오전에는 여성, 어린이 병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오전에 만나니 반갑다며 한 치료사가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중환자실 간호부장과 어떻게 코로나 19 환자들과 스태프들을 돌볼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음압병실이라 병실 밖에서는 굳이 개인 방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고, 아직 확진자도 있지만 검사 의뢰해서 단순 폐렴인 환자도 있으니 너무 겁먹지는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병동으로 들어갔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간호사 중 한 명이 정말 기쁘게 맞이 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순간, 두려움으로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간호사도 처음에는 긴장돼서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곧장 코로나 19 환자 간호 수칙을 숙지하고 지급된 방호장비 착용에 익숙해지고, 첫 환자를 돌본 뒤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채플린이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도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회의에 참석하고, 중환자실 코로나 19 의심환자와 확진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에게 먼저 찾아가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한 간호사가 자신이 맡고 있는 60대 환자가 코로나 19로 죽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말에 전화 방문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이날 다행히 퇴원을 하는 환자와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병원에서는 완치됐다고 했지만, 환자 스스로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전화 방문을 원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운이 좋게도 퇴원하지만 퇴원해서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지내겠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무엇보다 의료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저도 축하를 전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코로나 19 병동에서 첫 전화방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날 이후로 저는 코로나 19 환자를 만나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해방됐습니다. 물론,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합니다. 나와 내 가족, 동료를 위해서죠. 그리고, 이런 불안한 시기에 자신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유일한 길은 무엇이라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휴지를 사는 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거기에 머물지 말고, 적당한 양을 자신을 위해 샀다면, 나머지는 이웃을 위해 돌려놓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19 병동에는 매일 환자와 가족, 지역사회에서 보내오는 감사 편지와 그림들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마스크를 공동을 제작해 병원에 납품하는 일, 거동이 불편한 노인, 노숙인들에게 무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공포 앞에서 넘어지기도 하지만, 서로 격려하며 강해지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안전을 위한 일부터 시작해, 주변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 그것을 위해 서로 신뢰하고 격려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야 말로 불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가 쳐 놓은 공포의 덫에서 지혜롭게 벗어 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한 결 좋아진 상황에서 경증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를 만났습니다. 저와 같이 코로나 병동에서 일한 지 몇 주 안된 데니엘이라는 간호사도 첫 근무 날 많이 두려워했지만, 지급된 보호장구와 간호 수칙을 숙지하고 '내 가족이다'라는 생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귀띔해 줬습니다. 그리고, 내가 코로나 19 환자 대하기가 아직도 두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Get your feet wet!" (다이빙하기 전에 먼저 발에 물부터 적셔보라는 말, 작은 것부터 실행해 보라)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속에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느냐, 그 두려움을 통과하며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드느냐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병원의 정책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신뢰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환자, 가족들을 위해 뭐라도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배운 공포의 시간을 통과하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