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연대와 공조
코로나 19가 내가 사는 곳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한 지 1년을 훌쩍 넘었다. 지난해 3월 말 일반 방문객의 병원 출입이 전격 중단됐다. 나는 이 바이러스가 어떻게 내 삶을 바꿔 놓을지 알지 못했고, 감염의 공포 또한 커져갔다.
이 두려움은 그 해 11월과 12월 초 미국 중부 지역까지 불어 닥친 3차 대유행 속에서 단순히 생각 속에 머무는 두려움이 아닌 실재적인 공포가 되었다. 미국 전역 역에서 하루 사망자가 3,4천 명을 기록할 때, 이 곳 미주리대학병원에서도 거의 매일 코로나 환자들의 주검을 보았다. 가족 없이 외롭게 죽음을 맞이 하거나, 가족 가운데 일부만이 먼발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다. 때때로, 예외적으로 마스크와 보호장구를 한 배우자나 자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병실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뉴욕이나 시애틀처럼 병원체계가 붕괴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개인이 무기력감을 느끼고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이른바, 번아웃의 상황에 처하기엔 충분했다. 우울한 마음과 그로 인한 식욕부진, 수면 장애 등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코로나 19 백신 긴급사용 승인이 났다. 나는 곧장 백신 접종에 응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선택의 의지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이미 탈진 상태였으니까.
백신 접종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힘을 얻었다. 2021년 1월 초, 2차 접종을 마친 다음부터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는 것에도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마스크와 손 씻기는 아직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더 철저하게 했다.
이윽고, 지난 3월 7일, 내가 일하는 코로나 중환자실에 처음으로 환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백신 접종이 늘어나면서 중증환자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의 두 달째, 병원 안에 코로나 중증 환자수가 0에서 1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16세 이상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제 코로나 백신을 무상으로 맞고 있다. 내 아내와 두 아이들도 백신 접종을 마쳤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어두운 터널에서 이제 서서히 서광이 비치는 느낌이다. 여름쯤에는 3차 접종으로 면역력을 더 끌어올린다는 계획까지 나왔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코로나 19에 대해 개인적인 종언을 선언했다. 물론 내가 선언한다고 코로나 19가 끝난 게 아니지만, 적어도 내 개인과 가정은 코로나 19로 인해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겠다는 결단이고 선언이다.
1 년 전을 생각하면 참 많이 변했다. 코로나 19가 몰고 온 변화를 통과하며 많이 배운 것 같다. 병원에서나 집에서나 서로서로 기대며 위로하며 참 잘 견뎠다. 특히, 백신을 개발한 과학자들과 각종 언론을 통해 조언을 아끼지 않은 많은 감염병 전문가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집단 면역에 이르면 실내에서도 이 지긋지긋한 마스크도 벗게 될 날이 곧 올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번 바이러스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에서 최선을 하다고 있지만, 역량이 모자라는 국가들은 아직도 바이러스를 퇴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이 희망을 전 지구적으로 나누기 위해서라도 먼저 집단 면역에 이른 국가가 그렇지 못한 나라들을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닫힌 하늘길이나 국경이 열리지 못할 것이고, 세계 경제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코로나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유엔 차원의 지원도 계속돼야 한다.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공동체의 분리와 단절을 연대와 공조로 이겨내는 모습이야 말로 인류가 어떤 바이러스의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희망의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