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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26.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 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임종 臨終 


임종이란, 사전적으로 "목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부모가 죽을 때 (사회적 통념상 돌아가(시) 다는 말을 써야 하지만, 심리적으로 죽음을 거부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에 반대해 병원 채플린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함) 그 곁을 지키는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머나먼 미국 땅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고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일하고 있어서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할까 항상 마음이 쓰입니다. 


제 주변에도 몇 분이 한국에 요양 병원에 계신 부모님의 임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평소에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는데 그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없다면 그것보다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019년 12월, 

퇴근 준비가 다 됐는데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한 여성 환자가 병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데 아무도 곁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담당 간호사를 방문해 자초지종을 물어봤습니다. 아들과 먼 친척이 있는데, 아들은 연락이 안 되고, 먼 친척은 운전을 해서 병원까지 올 사정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환자는 이미 호흡기를 모두 떼고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른 손목을 잡아 보니 아직 미세하게 맥박이 뛰고 있었습니다. 잠시 기도를 드리고 곁에 앉았습니다. 작은 체구에 아랫니가 모두 빠져서 겉모습으로는 늙은 노파의 얼굴이었습니다. 마치 깊은 잠에 든 것처럼 간헐적으로 숨을 쉬었습니다.  


'이 분은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예수는 믿는 분일까? 아니면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간호가가 잠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간호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앞서 펠리어티브 케어팀(치료가 아닌 증상을 관리해주는 의료팀)이 와서 상담할 때, 이 환자가 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미 죽을 준비가 다 됐습니다. 또, 다른 삶의 페이지로 넘어갈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일까, 이 환자는 그토록 평안하게 깊은 잠에 든 것처럼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1시간 반을 곁에서 그 환자를 지켜보았습니다. 느려져 가는 호흡에 비해 맥박은 여전히 힘차게 뛰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근무도 있고 해서 간호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병실을 나왔습니다.


환자기록 어디에도 이분의 종교를 알만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환자에게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이 저는 이 환자의 평안한 임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산소가 급격히 떨어져 유발되는 격한 호흡 air hunger을 원활하게 조절하기 위해 모르핀을 사용하지만, 환자에 따라 더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녀의 곁에 그녀의 아들이나 남자 친구조차 함께 해주지 못했지만, 그녀는 무척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에 했다는 말처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죽음 이후의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에게는 슬픔과 근심보다 새로운 삶을 향한 희망이 더 강렬했던 탓은 아닐는지... 


이튿날, 그 환자의 간호사를 다른 병동에서 만났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도 그 환자는 5시간 정도 더 있다가 죽었다고 알려줬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0 평생을 살다 간 한 여인, 우연히 그녀의 곁을 지키게 됐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더라도,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할 지라도, 믿음이 깊으 신 분들처럼 '껄껄' 웃으며 떠날 수는 없어도, 근심과 공포에 질려 마지못해 끌려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양가 부모님이 이런 평안한 마지막을 맞이 하실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잘 섬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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