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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27.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 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제 딸을 돌려주세요!



"삐삐삐"


201910 12 토요일 오후,

어린이 병원에서  동료 채플린들과 나눌 주제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어린이병원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제 몸은 이미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기도를 한 뒤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입구에서 제일 끝에 있는 외상 치료실 , Trauma bay  밖으로 10여 명의 스태프들이 응급처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치료실에는 응급실 레지던트, 영유아 담당 외과의사, 어린이 중환자실 담당 펠로우, 호흡기 치료사, 간호사 등 10여 명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아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 바로 뒤로 두 젊은 부부가 서로 껴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두 팔로 우는 아내를 감싸며 비교적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경우 부모들은 대기실이나 치료실 근처에 임시로 마련된 가족방에 대기합니다. 환자 가족들이 그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녹록지 않아서도 그렇고, 수많은 의료진들이 각자 맡은 임무에 따라 고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응급상황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순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분들은 바로 환자 가족들이니까요.


저는 일단 남편과  아내에게 병원 목사라는 사실을 알리고 그분들 뒤에 섰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다니시는 교회의 목사님 한 분과 아내  쪽 부모님들이 오셔서 병실 앞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제 신분을 그분들에게도 알리고, 진료실 앞 방에 임시로 가족 대기방을 만들어 그분들을 인도했습니다.


10 분 넘게 심폐소생술과 관련 처치가 이어지는 동안 아기의 아빠와 엄마는 두 손을 아기와 의료진들에게 향하며 기도했습니다. 저도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하늘의 자비를 구했습니다. 아기가 누워있는 침대와 두 부모 사이에 소아과 여의사 한 분이 진행상황을 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시도를 더 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손을 떼겠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순간, 그때까지 침착했던 아기 아빠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했습니다. 아내도 무릎을 꿇고 울부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 딸을 돌려주세요! 제 딸을 돌려주세요! "


저를 포함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군 간호사, 두 손을 모으고 뭔가 되뇌는 응급운송팀 요원,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고 고통의 순간을 함께 하는 스태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죽어가는 아기, 사투를 벌이는 외상 진료실 의료진, 오열하는 부모와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고통의 순간에 자신들도 고통을 참으며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5주 된 아기는 의료진의 노력과 부모의 애타는 기도에도 불구하고 허망하게 이 땅을 떠났습니다. 디브리핑 시간에 모두가 함께 고통의 순간에 침착하게 그 고통을 함께 해 준 스태프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했습니다. 특히, 급박한 응급 상황에서 침착하게 부모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아기의 엄마, 아빠가 끝까지 아기의 최후 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소아과 여의사에게도 감사를 전했습니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어느 분야보다 힘든 곳이어서 위기 상황에서 스태프들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환자를 돌보고 자신을 돌봅니다. 하지만, 이날은 부모가 그 중심에서 고통을 표현하고 진료 현장 가운데 함께 하고 있어서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돌본 한 간호사는 아기를 잃은 일도 슬프지만, 그 과정을 곁에서 보며 오열하는 부모들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깊은 호흡 속에서 아기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저의 감정을 대면했습니다. 정말 슬펐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습니다.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통상의 경우처럼 아기 부모를 그 현장에서 분리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수차례 아기 부모에게 권유했지만 그분들이 그곳에 있고 싶어 했고, 의료진도 양해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은 편치 못할까?


사실 그건 표면적인 문제였습니다. 제 마음 더 깊은 곳에는 또 다른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게, 그렇게 고통스럽게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 속에서 아기의 부모처럼 간절하게 기원했는데... 허망하게 떠나버린 , 그렇게 떠나도록 내버려 둔 존재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지만 5주 된 아이가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고 심장 박동이 멈추고 그렇게 병원에 실려와 모든 응급 처치를 다 했지만 그렇게 죽은 사실... 너무 허망하고, 그 가족과 스태프들의 간절한 기도가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기도했어야 했는데...'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나락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가 회복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에 열에 아홉은 모두 제 바람과 간구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죽음으로부터 조금 초연 해지나 싶었는데 이내 넘어져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마 전에는 태어나자마자 한 아기를 데려가시더니 이 날은 5 주된 아기를... '


그리고, 한 참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가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엘리 비젤의 실화소설, '나이트'의 한 대목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자행된 교수 형장, 형틀에 매달려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포로들, 이미 어른들은 죽었지만, 체중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그 아이는 죽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지켜보던 유대인들 사이에서 '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비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때, 엘리 비젤은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 들리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신이 어디 있냐고, 저 교수대에 있지.'

고통에 순간에 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교수대에서 살기 위해 버둥대는 그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겁니다.


순간 그 옛날 골고다 언덕의 한 십자가가  뒤로 여인들이 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멀리 서서 바라보던 여인들. 그날 예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가슴에 품어야 했던 슬픔과 고통. 자식 혹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상실감이 격발 시키는 애통함이 이런 것이 었을까?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바라보던 여인들, 먼발치에서 죽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는 수용소 사람들, 5 주된 아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료진과 죽은 아기를 않고 오열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나...



시대는 다르지만, 오늘도 자식을 잃은 사람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 이 고통을 통해 종교적인, 영적인, 세상적인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과 종교적 체험을 통해 내 안에 슬픔이 모두 치유되고 죽음에 대해 초연 해지는 심리적 상황이 오더라도, 또다시 눈 앞에 예기치 못한 죽음, 그 슬픔 앞에서는 어떤 교훈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저 함께 아파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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