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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27.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 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인내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고 부릅니다. 오래된 유행가 가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  사랑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해 놨는데 잘 분석해 보면 절반 이상이 참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말해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인내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부조리한 상황을 견디기만 하라는 말씀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은사 중의 은사는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의 대부분은 인내로 채워진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거겠죠. 그런 사랑의 은사로 이 못난 남편을 그리고 아들을 견디고 견딘 분들이 참 그립습니다. 아내와 부모님, 장인, 장모님이 병원 목사가 된 저를 만나시기까지 얼마나 참고 또 참으며 기도하며 간구하셨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 보신 하나님은 또 얼마나 참으신 걸까?


2019년 8월, 

어린이 병원에서 오전 업무를 마치고 대학병원 원목실로 왔습니다. 수술 중환자실(Surgical Intensive Care Unit:SICU)에서 개신교 목사님을 급히 찾는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동료 목사님들이 바빠서 제가 응답을 했습니다. 올해 79살이 된 건장한 백인 환자와 아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자는 방금 전에 호흡기 튜브를 빼내서 대화 중간중간 기침을 하며 힘들어했습니다. 호흡기 튜브를 방금 빼낸 탓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뜸 하는 말이 "당신 하나님의 사람 a man of God 이 맞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조금 당황되기도 하고 해서 시간을 좀 끌다가 "그렇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좀 방황을 하다가 돌아와서 조금 뜨끔 했습니다^^). 그리고 이 환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소리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잘 못 알아 들었는데, 핵심은 이 환자가 지옥에 다녀왔다는 겁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는데, 예수님이 자신과 자신의 아내 이름을 알고 계시더라는 겁니다. 곁에 있던 아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주여, 감사합니다 Thank you, Lord!"라고 말합니다.


저는 잠시 환자의 눈을 쳐다보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두렵다 그런데 매우 흥분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계속 되뇌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얼굴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인가 직접 보고 듣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진짜 표정 같았습니다. 왜냐면, 저도 11년 전에 꿈속에서 음성을 듣고 회심을 했기 때문에 그 상황과 표정,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제가 잡은 그의 손은 떨리지는 않았지만 힘이 느껴졌습니다. 시종일관 그의 눈은 마치 누미노제 (신의 임재 앞에서 느끼는 극도의 경외감)를 경험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두렵지만 평안해 보였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저도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온전한 순종, 온전한 기쁨 Perfect submission, perfect delight! 기도를 마치고 환자의 아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얼마나 기도하며 간구하셨습니까? 그녀는 남편이 지옥에서 만난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회심을 위해서 결혼한 날부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올해로 52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52년!!!


남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알 것 같았습니다. '죄인을 용서해 달라'는 환자의 거듭된 기도소리를 들으며 '선데이 크리스천'에서 '거듭난 크리스천"으로 회심할 당시 제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그녀의 남편은 여든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모토사이클을 끌고 다니다가 이 달 초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2주가 넘게 호흡기 튜브를 달고 사투를 벌여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날 호흡기를 빼고 잠에서 깨어나 예수를 진짜로 믿게 된 것입니다.


병실을 나오면서 조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에 관한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그의 생애에 5만 번에 이르는 기도응답을 받았는데 정작 가장 친한 친구의 회심 소식은 뮬러 목사가 죽은 다음에나 알려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일들 중에는 내가 눈 감은 뒤에 응답될 일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저 눈뜨고 있을 때 간절히 바라는 일들이 이뤄진다면 참 좋겠건만... 하늘의 때는 항상 그리 더딘가 봅니다. 오늘도 평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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