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따르던 연구실 언니가 졸업을 했을 때 언니의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이었다. 언니는 몸의 선이 날렵했고, 그래서 언니가 자주 예쁜 치마를 입었으면 했지만, 콘크리트를 다루는 공대 여자는 연구실에 출근하면서 굳이 그런 옷을 입지 않는다.
언니는 종종 나에게 연구실에 오래 앉아있으니 배와 하체에 살이 붙는다며 나이 들어 찐 살은 빠지지도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도 연구실 후배에게 언니가 했던 말을 똑같이 읊조리고 있었다. 우리는 나잇살이란 게 있긴 있는가 보다고, 몇 년간 한국 여성들의 평균 외모와 몸매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우리의 삶이 한층 팍팍하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과장이 아니고 요즘 군살이 붙는 양상이 심상치 않다. 1, 2년 전처럼 근력 운동을 강도 높게 하는 것도 아니고, 식단을 엄격히 지키지도 않으니 살이 찔 만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채소랑 단백질을 챙겨 먹고 꼬박꼬박 운동도 챙겨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4킬로가 쪄있다. 전에는 살이 찌면 가슴으로도 갔던 것 같은데 이번에 얻은 지방은 옆구리와 허벅지에 올록볼록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마음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후광 효과'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능력에 보다 후한 점수를 받기 쉽다는 읽은 기억이 난다. 인과관계를 딱 따질 수는 없지만, 연구 성과가 눈부신 유니콘 교수님들께서도 항상 깔끔한 외형과 복장을 유지하시는 것을 보면 무언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신경 쓴 옷차림과 단정한 용모는 좋은 인상을 주는 쉬운 방법 중 하나이니 말이다.
시각을 가진 동물의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나만 해도 유치원 시절부터 이미 나의 몸과 남의 몸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확인하는 체중계의 숫자와, 바지가 끼는 정도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내 하루 시작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도 여전하다. 외모로 남을 미리 재단하는 속물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체중, 보기 싫지 않은 엉덩이-허벅지-종아리의 라인이라든지, 그런 기준이 생겨버린 이후에는 그 적정선을 벗어날수록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대학원생은 연구만 잘하면 그만이지, 이건 거짓말이다.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아가려면 어느 하나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 모든 분야에서 백 점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한 영역에서 과락을 받음으로 인해 다른 영역의 삶까지 망치려 드는 사태만큼은 예방할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참 장황하게도 풀어썼다. 무튼, 예전처럼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을 하거나 닭고야(닭가슴살, 고구마, 야채)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졸업 논문을 단 한 챕터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다이어트에 드는 노력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히 추천하는 방법은, 그냥 기록을 하는 것이다. 오늘 뭘 먹었는지, 몸무게는 얼마인지, 응가를 했는지, 물을 잘 마셨는지, 무슨 운동을 했는지, 어딘가에 계속 쓰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예전 몸무게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매일매일 그 모든 것을 쓰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렇지만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다. 어쨌든 우리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앞으로 적어도 오십 년 넘도록 더 살아있을 테고, 그에 비하면 지금의 체중 변동은 아주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작은 점에 해당하는 오늘, 다시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으므로, 다시 기록을 시작해보기로, 식단에 채소를 좀 더 추가해보기로, 잘 살아내어 보기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