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막 들어와서는 실수도 대충 귀여워해 주고 조금만 잘해도 추켜세워주는 그런 막내 시기를 꽤나 즐겼다. 우리 연구실은 그다지 인기 있는 연구실은 아니어서 막내만 3학기를 했다. 그렇다고 언니 누나 선배가 되는 것도 싫지만은 않았던 것이,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하나씩 올라가면 공부도 할만하고, 눈치 봐야 할 무서운 언니 오빠가 줄어드니 숨통이 트였던 것처럼, 연차가 쌓임에 따라 잡일도 익숙해지고 연구실 선후배들과도 친해지니 또 그것도 그것대로 좋았다.
나는 건축 재료를 공부하는 중인데, 같은 층에서 재료를 전공하려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기에 한동안은 퍽 외로웠다. 그러다 한 일 년 전인가, 여자인 것도 희귀한데, 재료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배가 들어왔다.
대단한 연구자들은 커피 타임에 수다를 떨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럴 동료가 없었던지라 막 들어온 그 친구가 너무 좋았다.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매우 적극적으로 들이댔었다. 우리 교수님은 구조 전공이시기도 하고, 주제를 던져주시기보다는 학생들이 공부하려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시는 편이셨는데, 그런 스타일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처음에 꽤나 방황했던 기억이 있어서, 내가 공부하던 주제도 알려주려고 하고, 같이 기초 공부도 하고, 논문 리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잡소리가 길었는데, 공부할 겸, 해보고 잘되면 논문으로도 써볼 겸, 그 친구랑 했던 실험을 이번에 해외 학회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그 주제는 뭐랄까, 한 오 년 전쯤에 내로라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대략 파볼 만한 곳은 다 파놓은 구덩이였는데, 우리는 그걸 탐사해보겠다고 들어갔다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나머지, 손절 타이밍을 놓친 그런 주제였다.
그 구덩이에 가보자고 한 것은 나였기에, 책임감을 느꼈다. 여기서 건져 올린 걸로 뭐라도 만들어 내야 해! 그래야 이 친구의 시간과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을 거야, 하고 알량한 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수습이 안된다. 무슨 실험을 더 해야 저 놈을 그럴듯한 저널에 투고해서 게재시킬 수 있을까? 제 새끼는 다 예뻐 보인다고, 우리는 우리의 결과물에 대한 객관성을 상실했다. 그래서 나에게 지도를 주시는 다른 교수님께 대충 수습한 학회 논문을 보내서 제발 읽어주십사 구구절절 메일을 썼다.
메일을 보낸 교수님은 능력도 지도력도 출중하신 유니콘 급 교수님이라, 편의상 유니콘 교수님이라고 하겠다. 유니콘 교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연구실로 오라 하셨고 우리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답장을 받은 당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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